유엔총회 의장국 한국이 맡는다

대륙별 순환원칙, 이변 없는 한 우리나라서 의장배출

'세계의 국회의장.' 국제 외교가에서 유엔 총회의장을 두고 부르는 별칭이다. 유엔의 189개 회원국이 참석하는 총회가 '세계의 국회'에 해당한다면 이 총회를 주재하는 의장은 '세계의 국회의장'에 비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2001년 제56차 유엔 총회의 의장국을 맡을 것이 기정사실화하면서 총회 의장의 역할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유엔분담금 10위 규모, 위상 찾는 셈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대륙별 순환 원칙에 따라 차기 총회 의장은 아시아 국가의 차례"라며 "우리나라 외에는 아직까지 의장 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아시아 국가가 없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51개 아시아 국가 중 중국, 일본 등 대다수 나라들이 한국의 의장 진출을 지지하고 있고, 다른 나라가 입후보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며 "이변이 없는 한 우리나라에서 의장이 나올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국제무대 진출사상 최고위직이 될 유엔 총회의장을 배출하기위해 1998년 11월 의장국 입후보 사실을 공시한 이후 외교적 노력을 다해왔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해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 기간중 각국 정상과 만나 우리나라의 총회 의장국 진출을 위한 지지기반을 다졌다.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해 55차 총회기간 중 북한의 이형철 대사를 포함해 아시아 그룹 51개 회원국 주 유엔대사를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며 총회 의장국 진출에 대한 지지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처럼 외교적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것은 남북한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한 지 10년째 되는 올해가 총회 의장을 배출할 절호의 기회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회원국이 매년 1년씩 돌아가며 맡는 총회 의장은 지난해까지 모두 55명이 배출돼 중요 국가들은 대부분은 총회 의장국을 지냈다. 또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은 총회의장을 맡을 수 없다. 우리나라와 견줄 만한 상대국이 별로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총회 의장국은 '서유럽-아시아-동유럽-중남미-아프리카'의 차례로 순환되는데 2001년은 아시아 지역에서 의장을 맡게 돼 있다. 따라서 지역그룹에서 추천되면 사실상 선출이 결정되는 등 우리에게 유리한 조건이 많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가 추천한 후보는 4월께 열릴 유엔 아주그룹 회의에서 단독후보로 추인받아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총회의장에 추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 관계자는 "올해 우리나라의 유엔 분담금이 대폭 증대돼 회원국 중 10위 규모의 분담금을 내는 나라가 됐다"며 "올해 총회 의장국으로 선출되면 그에 걸맞는 위상을 찾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이토록 정부가 유엔 총회의장을 맡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총회 의장의 권한과 역할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훨씬 막강하기 때문이다. 총회 의장은 사무총장, 안보리 의장과 함께 유엔의 3대 핵심 요직이다. 서열로 보면 사무총장보다 위로, 유엔의 최고위직이라 할 수 있다.


유엔 3대 핵심요적 중 최고위직

유엔 총회는 전 회원국 대표로 구성되는 유엔의 최고기관이다. 국제평화와 안전의 유지, 국제협력의 촉진, 신탁통치 등 헌장의 범위 내에 있는 모든 문제와 사항에 관해 심의 또는 권고를 한다.

또 △10개 안보리 비상임 이사국 선출 △54개 경제사회이사회 이사국 선출 △국제사법재판소 판사 선출 등 주요 산하기관의 이사국 선출이 유엔 총회에서 이뤄진다.

안보리의 권고를 형식적으로 처리하는 것이지만 유엔 사무총장도 총회의 임명절차를 밟는다. 유엔 예산의 심의 및 승인, 회원국간 경비할당, 전문기구의 행정 예산 심의 등 유엔의 재정을 통제하는 권한도 지니고 있다.

총회 의장은 바로 이같은 총회의 권한을 행사하고 회의를 주재하기 때문에 총회에서 처리되는 거의 대부분의 사안에 그의 입김이 미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유엔의 주요 안건은 국가간의 조정을 거치는 것이어서 총회의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총회의장은 각국간에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 사무총장, 안보리 의장과 함께 협의, 조정역할을 담당하는 등 국제 외교무대에서의 비중이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189개 유엔 회원국 대표자격으로 주요 국가를 순방하는 것도 그의 중요한 임무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같은 역할 때문에 유엔 총회 기간이면 모든 국가의 대표들이 사무총장과 함께 유엔 총회의장을 만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며 "총회 의장 접견실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각국 대표단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비회기 중에는 각국으로부터 방문 요청이 쇄도, 스케줄을 조정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외교관들의 전언이다.

의장으로 뽑히면 유엔으로부터 연 20만 달러 (2억5,000만원)와 고급 승용차를 제공받고 비서관, 보좌관 등 보좌진 5∼6명을 거느린다. 경호원도 1, 2명이 따라 다닌다.

유엔 총회의장엔 특별한 자격 제한은 없다. 그러나 역대 총회의장들의 면면을 보면 전직 총리, 전ㆍ현직 외무장관과 유엔 대사 등이 대부분이다. 최근엔 현직 외무장관이 맡고 있는 추세다. 자국의 외교적 이득을 극대화하려는 국가적 외교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지난해 9월 선출된 해리 홀케리 제55차 총회 의장은 핀란드 총리 출신.

1997년부터 3년간은 우크라이나, 우루과이, 나미비아의 현직 외무장관이 각각 1년씩 총회 의장을 맡았다.

과연 누가 향후 100년 내에는 다시 우리나라에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유엔의 최고위직을 차지하게 될까. 현재까지 유엔 총회 의장 후보 추천과 관련한 정부의 공식적 움직임은 없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는 우리가 의장국으로 추천받는데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4월께 아시아지역 회의가 열리기 직전 '자연인' 후보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직 외무장관 등이 후보 물망에 올라

정부의 이같은 방침은 개각과 맞물려 있다. 이번 개각에 따라 외교팀의 유임 또는 교체가 결정되고 난 후에야 총회 의장 후보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전망된다.

외교가에서는 총회의장이 되면 회기 중 2개월과 비회기 중 1개월 등 최소한 3-4개월을 뉴욕 유엔본부에 상주해야 하고 수시로 5개 대륙의 주요 국가를 순방해야 하는 일정상 외교현안이 많은 우리나라의 현직 외무장관이 총회 의장을 맡기는 곤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전직 외무장관이나 전 현직 유엔 대사들이 후보 물망에 오르고 있다. 가장 유력한 후보로는 한승주(고려대 교수) 전 외무장관이 꼽힌다. 1994년 북한 핵위기 때 외무장관을 지낸 한 전 장관은 국제적 감각이 탁월한 데다 영어 구사력도 뛰어나다는 평이다.

박수길, 이시영 전 유엔대사도 유력한 후보. 고려대 석좌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박 전 대사는 유엔참사관, 조약국장, 유엔 공사, 캐나다ㆍ제네바 대사, 외교안보연구원장, 유엔대사를 지내는 등 유엔과 인연이 많다.

이 전 대사는 유엔 3등서기관, 국제연합과장, 유엔참사관, 국제기구국장, 조약국장, 유엔 공사 등 세네갈 대사로 부임하기 직전까지의 경력 전부가 유엔 업무라 할 만큼 정통 '유엔맨'이다.

현직으로는 외교부내의 대표적 통상전문가로, 차관을 지낸 선준영 유엔 대사가 거론되고 있다. 주미 대사를 역임한 민국당 한승수 의원도 여당과의 관계 설정에 따라 후보가 될 가능성이 있다.

김승일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1/01/16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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