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의보감] 치미는 울화…홧병

'가슴이 답답하고 가슴부터 얼굴까지 열이 치솟는 느낌이 들며 목과 가슴에 마치 덩어리가 있는 듯한 증상이 계속된다.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감정의 변화가 심하고 괜히 신경이 날카로워져 대수롭지않은 일에도 화가 폭발하며 매사가 귀찮고 도무지 의욕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 늘상 우울한 기분이 떠나지 않고 불안감을 느끼는가 하면 잘 놀라고 움츠러들기도 한다.'

최근 경제가 위기국면에 접어들고 경제활동이 극심하게 위축되면서 이러한 증상을 호소하는 남성이 늘고 있다. 대부분 사람이 혹시 하는 마음에 의료기관을 찾아 각종 검사를 받아보기도 하지만 임상소견으로는 특별한 이상을 발견할 수 없고 그래서 당사자들은 더욱 당혹스럽다.

이처럼 정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심리적 갈등과 변화를 겪게 되는 증상은 한방에서 말하는 울화(鬱火) 또는 홧병(火病)이라고 할 수 있다.

홧병은 말 그대로 억울한 감정이 쌓인 후에 불과 같은 양태로 폭발하는 질환이다. 사실 홧병은 지극히 한국적인 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와 같은 문화권에 속하는 중국이나 일본 등의 의학서적에서는 홧병이라는 용어를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홧병은 중년 이후의 여성에게서 다발하는 질환이다. 대부분의 여성이 결혼후 장기간에 걸친 고부갈등, 시댁과의 갈등, 자녀문제 등으로 억울하거나 답답한 감정을 가지면서 살아오다가 어느 순간 폭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례로 한 클리닉의 임상연구 결과에서도 여성 홧병환자가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같은 정설이 무너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과거 여성의 전유물로 치부되던 홧병을 앓고 있는 남성이 급속하게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사실 현대 남성은 홧병이 발생가능성이 높은 위험인자를 충분히 갖고 있다. 우선 가정적 측면에서 볼 때 대부분의 남성은 결혼후 가정을 이루면서부터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한다는 가장으로서의 중압감은 물론 고부갈등에서도 어느 편도 들기 어려운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된다.

또한 가정이 핵가족화하면서 집안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 회사에서는 나날이 힘들어져 가는 근무여건 속에서 상사에게 치이고 아랫사람에게 받치는 등 어려움을 겪지만 집에 와서는 부인에게 차마 말도 못하고 속으로만 끙끙대며 삭히기 십상이다.

더욱이 최근 들어 경기침체로 인해 기업의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대부분의 남성이 그야말로 가시방석에 앉아 있어 사면초가의 형국이다.

답답하고 걱정스런 마음에 술과 담배에 의존해보기도 하지만 이는 결코 근본적 해결책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건강을 해치게 되는 것은 물론 증상이 심해질 경우 우울증과 신경쇠약 등의 질환으로 이환되기 쉽다. 홧병이 결코 가벼운 질병이 아니며 조기치료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 기인한다.

이처럼 정상 생활을 어렵게 하고 심할 경우 정신을 황폐화시키는 홧병의 한방치료는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해주는데 원칙을 두고 시행한다. 곧 화는 일종의 스트레스이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기의 흐름에 문제가 생기고 기의 흐름에 문제가 생기면 질병이 발생한다는 한의학적 인식에 비롯한 것이다.

치료에는 약물요법이 이용되는데 주로 처방되는 약물은 분심기음 또는 유울탕 등이다.

이들 약물은 화를 가라앉히고 기의 흐름을 원활하게 도와주어 증상을 개선시키는데 효과가 있다. 이와 함께 침구요법 및 기공요법 등을 병행하면 치료효과를 크게 제고시킬 수 있다.

홧병은 발병시 적절한 치료도 중요하지만 평소 생활에서 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항상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고 매사에 긍적적인 사고를 갖도록 하는 것이 좋다. 또 주변 사람은 환자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고 환자 스스로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써주는 것이 필요하다.

서보경 강남동서한의원 원장

입력시간 2001/01/16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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