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사무소 M&A '대형 로펌 시대'

세종-열린합동 첫 합병, 규모ㆍ전문화 박차

합병(M&A)을 통한 덩치 키우기는 세계화시대를 맞은 기업의 화두. 로펌(Law Firmㆍ법률회사)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국내 굴지의 로펌인 '세종'과 '열린합동법률사무소'가 1월8일 합병을 선언했다. 국내 4대 로펌에 속했던 양 회사는 이번 합병으로 '김&장 법률사무소'에 이어 업계 2위의 종합법률회사로 부상하게 됐다.

세종은 1983년 3월 판사 출신의 신영무 변호사 등에 의해 설립된 종합법률회사. 국제거래, 증권, 금융분야 및 기업법무와 기업소송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열린합동법률사무소는 판사 출신의 중견 변호사들을 중심으로 송무 분야에서 수위를 달려온 합동법률사무소.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역임한 이건웅 변호사와 황상현 변호사, 서울지법 부장판사를 지낸 하철용 변호사 등이 1996년 9월 설립했다.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 기대

양사의 합병은 중복이 적고 상호보완적이란 점에서 합병에 따른 시너지 효과가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세종이 갖고 있는 기업ㆍ금융 분야에서의 노하우와 열린합동법률사무소의 송무경험이 융합된다는 이야기다. 양사의 합병이 규모화와 전문화를 모두 충족시키게 된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합병한 양사는 회사 이름을 '법무법인 세종'으로 하고 열린합동법률사무소는 '법무법인 세종 서초(열린) 분사무소'로 당분간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양사의 소속 변호사들은 하나의 체제 아래 운영된다.

열린합동법률사무소(서초구 서초동 중산빌딩)에 소속됐던 변호사들은 앞으로 세종 본사무소(중구 순화동 삼도빌딩)로 사무실을 옮기게 된다. 회사는 대외적으로 세종의 신영무ㆍ오성환 변호사와 열린합동의 이건웅ㆍ황상현 변호사 등 4명이 공동으로 대표를 맡게 된다.

이번 합병으로 법무법인 세종은 100여명의 소속 변호사(한국 변호사 80여명, 외국 변호사 20여명)와 12명의 변리사, 공인회계사를 거느리게 됐다.

아울러 합병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소속 변호사의 전문분야를 고려해 18개 팀을 편성했다. 증권발행팀, 은행ㆍ증권ㆍ투신팀, 회사정리ㆍ파산팀, 합작ㆍ국제거래팀, 조세팀, 환경ㆍ언론팀, 일반 민형사소송 및 중재팀 등이다.

세종의 신영무 변호사는 "앞으로 5년간 매년 20여명의 국내외 변호사를 고용해 2005년이면 변호사 200여명을 갖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중 30~40명은 외국 변호사로 충원할 계획이다. 주로 영미권 출신이 될 외국 변호사들은 주로 국제거래에 관계하게 된다.

신 변호사는 "국제간 상거래가 영미법 중심으로 이뤄지는 데다 각종 소송관련 문서를 영어로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양질의 법률서비스 위해 대형화 필연적

양사의 합병은 1990년대 이래 국내 법률시장의 형태변화와 조만간 닥칠 법률시장의 해외개방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복잡ㆍ다양화로 요약되는 국내 법률시장의 추세는 크게 두 가지.

우선 개인 소송사건에서 기업 법무 위주의 종합적 법률서비스를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둘째, 기업이 합리적 경영 마인드를 갖게 됨에 따라 다양한 전문분야에서 깊이있고 신속한 법률서비스를 요구하게 됐다. 이에 따라 양질의 전문적, 종합적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대형 로펌의 활성화는 필연적인 해법으로 등장했다.

법률시장 개방도 대형화와 전문화를 부채질하고 있다. 한국 법률시장 개방을 요구하고 있는 국가는 영국과 미국. 현재 법무부는 이같은 압력에 따라 세계무역기구(WTO)와 시장개방 협상을 벌이고 있다.

법률시장 개방도 이젠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시장이 개방될 경우 외국 변호사들은 한국서 법률자문은 할 수 있지만, 한국 법정에서 소송은 맡지 못할 전망이다. 하지만 외국 로펌이 한국에 분(지)사를 개설해 한국 변호사를 고용하면 소송을 대리할 수 있다. 한국 로펌과 외국 로펌이 국내 법률시장을 놓고 경쟁을 벌이게 되는 것이다.

로펌간 합병은 선진국에서는 일반적 현상이다. 미국에서는 합병을 통해 3,000명 이상의 변호사를 거느린 '공룡 로펌'도 적지 않다.

미국과 유럽 지역의 대형 로펌간에 이뤄지는 대륙간 합병, 영국과 독일 로펌간의 다국적 합병 사례도 많다. 다국적 기업이 늘고, 기업의 국제거래가 일반화하면서 일국의 법만으로는 법적 자문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세종과 열린합동의 합병에 대해 법조계는 당연한 추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다국적 기업을 비롯한 대기업이나 정부관련 중요 사건에 대한 소송과 자문은 대형 로펌의 몫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덩치 키우기를 통한 경쟁력 강화는 필연적인 수순이란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한 로펌의 변호사는 "국내 로펌이 선진국에 비하면 여전히 구멍가게 수준"이라며 전문화를 위한 대형화가 계속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4대 메이저간 경쟁 본격화 전망

법무법인 세종의 출범에 따라 국내 로펌은 메이저로 분류되는 4개 종합법률회사간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4대 메이저의 반열에는 세종을 비롯해 김&장, 태평양, 한미가 올라있다. 소형 로펌을 합치면 15개 정도가 된다.

이중 최대 로펌은 변호사 160여명(한국 변호사 130명, 외국 변호사 30명)과 회계사 등 총 200여명을 거느린 김&장 법률사무소. 세종의 신영무 변호사는 "4대 종합법률회사의 경쟁에 따라 소비자(의뢰인)들은 보다 양질의 서비스를 합리적 가격으로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로펌의 대형화가 법률시장의 독과점을 부를 가능성은 없을까. '김영생 변호사사무실'의 김영생 변호사는 독과점의 우려는 없다고 말했다. 국내 법률시장이 메이저 시장과 개인변호사 시장으로 양분돼 있고 의뢰인의 특성도 달라 영역 침해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

아울러 외국기업 국내지사의 경우 소송과 자문은 모두 메이저, 특히 외국 로펌을 통하기 때문에 일반 개업 변호사에게 타격은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 로펌의 규모와 질 뿐 아니라 한국 기업의 법의식(legal mind) 수준도 선진국에 비해 크게 낮다. 신영무 변호사의 이야기.

"국제간 거래분쟁에 따른 소송이 느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은 선진국에 비해 법적 대응이 늦고 단편적이다. 외국기업은 사업계획 수립에서 계약체결 단계까지 변호사가 관여한다.

반면 한국기업은 합의나 계약체결 후 검토를 요청하는게 대부분이고, 분쟁이 생긴 뒤 찾는 경우도 있다. 법률 자문비를 아끼다 더 큰 손실을 보는 예가 많다. 정부나 국영기업체는 더 심하다. 법률자문비가 예산에 책정되지 않거나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17 09:39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