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41)] 항공기 결항의 조건

비행기는 무척 요긴한 교통수단이다. 하지만 어떤 기술에 대하여 그 의지하는 정도가 클수록 문제발생시 상대적인 불편이 더 크기 마련이다. 최근 폭설로 인한 항공편 결항 사태에서 이를 뼈저리게 느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도대체 어떤 경우에 항공기가 결항되는지 상당히 모호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당연히 결항의 최종결정에는 기본 원칙이 있다.

항공기 결항을 초래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항공기 자체의 결함을 제외한다면 폭설, 폭우, 짙은 안개, 천둥과 번개 등 날씨가 주범이다. 드물게는 황사와 철새의 이동도 원인이 된다.

지난해 봄에 고비사막에서 발생한 대규모 황사가 중국 베이징 시내를 뒤덮으면서 항공기 결항사태가 발생한 적이 있다. 또 특별한 경우이긴 하지만 철새의 이동시기에 철새와 항공기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비행기 운항을 금지하거나 항로를 변경하는 경우도 있다.

봄은 안개로 인한 결항이 가장 많다. 안개만큼 가시거리를 좁히는 요인은 없기 때문이다.

여름 장마는 극심한 폭우가 아닌 이상 문제될 것이 없다. 활주로 자체가 경사지게 만들어져 있어서 빗물이 활주로에 고이지는 않는다. 빗물로 인한 활주로의 미끄러움도 진공청소기와 같은 장비를 이용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초가을 태풍도 항공기 결항의 핵심 요인이다. 지난해 추석을 전후해 프라피룬과 사오마이 태풍으로 일어난 결항사태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겨울의 폭설, 우박, 강한 북서풍도 결항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 눈과 얼음은 활주로를 미끄럽게 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항공기 동체에 눈, 서리, 얼음이 언 상태로 이륙하는 것은 안전운항에 치명적이다.

항공기에 눈이 쌓이면 이륙시 무게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보조날개에 얼음이 얼면 항공기가 아무리 활주로를 빨리 달려도 충분한 양력(비행기가 뜨는 힘)을 얻지 못해 이륙이 불가능해진다. 최근의 항공기 결항/지연사태도 바로 이 항공기 동체의 제빙작업이 지연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상조건에서 비행기를 이착륙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를 최종 결정하는 중요한 3가지 요소가 있다. 활주로의 마찰 계수, 바람의 속도, 활주로의 시정(또는 가시거리)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비행기 바퀴와 활주로 표면 사이의 마찰력(마찰계수)은 미끄러움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이륙 시에는 비행기가 양력을 받아서 뜰 수 있는 최대 지상속도를 내는데 필요하고, 착륙 시에는 비행기가 안전한 거리 내에서 멈출 수 있도록 하는 힘이다. 마찰계수는 SFT라는 장비로 측정하는데, 마찰계수가 0.40 이상이면 안전한 이착륙이 가능하다.

마찰계수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는 비행기의 무게, 착륙속도, 눈의 높이, 비의 유막 정도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특히 400톤 중량의 항공기가 시속 350Km의 속도로 착륙하기 때문에 눈으로 미끄럽거나 결빙된 경우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진다. 제빙, 제설, 제수작업도 이 마찰계수를 높이는 작업이다.

강한 바람이 불 동안에는 비행기가 날 수 없다. 10분간 평균풍속이 초당 12.5m, 최대순간풍속이 초당 17.5m 이상이면 주의보가 내려진다. 지난해 프라피룬 태풍의 경우 순간 최대풍속이 초당 40m였기 때문에 결항될 수밖에 없었다.

활주의 시정은 600m이하면 주의보가 내려진다. 시정 350m 이하에서 항공기 착륙이 금지되며, 200m 미만이면 이륙도 금지되는 사실상 공항폐쇄상태가 된다.

김포공항의 경우 시정 550m까지를 안전한 이착륙이 가능하며, 시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안개다. 이 안개를 제거하는 '안개소산 기술'이 러시아의 인공비연구소(IAR)에서 개발돼 실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안개소산 기술이란 드라이아이스나 요오드화, 액화 질소 등을 뿌려 안개를 물방울로 떨어지게 하거나, 공기에 열을 가해서 안개를 수증기로 증발시키는 기술이다. 우리나라도 이 기술을 곧 도입해 수년내에 실용화 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 모든 요소의 가장 위에 있어야 할 것이 바로 승객의 안전이라는 사실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원근 과학케뮤니케이션연구소장 www.kisco.re.kr

입력시간 2001/01/1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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