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군만세] '빨간 마후라'에 도전하는 여생도

공사 4학년 7명, 전투조종사 향해 첫발

한국 공군의 주력 전투기는 F16 팰컨, 비무장 상태의 F16 한대 값은 약 500억원, 체공중인 F16의 값은 여기에 '+알파(조종사)'를 해 600억원에 달한다.

소령급의 숙련된 전투조종사 한명을 길러내는데 약 100억원의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100억원에 달하는 '인간병기' 전투조종사의 자존심과 엘리트의식은 대단하다. 이들의 상징은 빨간 마후라.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의 한결같은 꿈의 전투조종사인 것도 당연하다.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빨간 마후라에 여성이 마침내 도전장을 던졌다. 금녀(錦女)의 영역을 노크한 여성은 올 2월 임관예정자인 공사 49기 4학년 여생도 7명. 박지연, 한정원, 박경애, 박지원, 정소윤, 편보라, 장세진 생도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2000년 1월8일 동료 남생도들과 나란히 전투조종사의 첫 관문인 초등비행훈련 과정에 입과했다. 여성이 초등비행훈련과정에 입과한 것은 건국 이래 처음이다.

공사 49기 임관 예정자는 모두 201명. 이중 여성은 18명이다. 이번에 입과한 7명은 비행훈련 입과 신체검사와 비행적성훈련을 통과한 생도. 나머지 11명중 6명은 올 5월 초등비행훈련에 입과할 예정이다. 입과를 못하는 생도는 공사 입교 후 시력이 나빠지는 등의 문제로 자격에 미달됐기 때문이다.


21개월간의 고강도 훈련 마쳐야

꿩잡는 게 매. 전투기를 몰고 효과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만 있다면 남녀를 구별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하지만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은 만큼 여생도 본인들과 훈련을 담당한 공사 212훈련비행대대의 결의와 준비는 대단하다. 박지연(23) 생도는 "부담이 많이 가지만 무사히 훈련을 끝내 파일럿이 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공수훈련과 이젝션(전투기 피격·고장시의 탈출) 훈련을 받아보니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는 게 그녀의 말.

212 훈련비행대대측도 처음으로 받아들인 여생도들을 위해 단단히 준비를 갖췄다. 생도대장 장석원 준장(공사 23기)은 "훈련은 남녀구별없이 똑같이 시키겠지만 여성을 위해 특별공간을 준비했다"고 밝혔다.

샤워장, 체력단력 헬스장, 숙소, 화장대 등을 별도로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조종복은 여성 신체조건에 맞게 개인별 맞춤복으로 준비했고 헬멧도 미국에서 소형을 구입해 내부는 개인별로 몰딩을 했다.

장 준장은 "여생도들이 사관학교 과정에서도 기대 이상으로 잘 적응했다"며 초등비행훈련도 잘 해낼 것으로 전망했다.

여생도들의 이번 입과는 출발에 불과하다. 앞으로 21개월간 초등, 중등, 고등비행훈련을 거쳐야 한다. 적지에 추락했을 겨우에 대비한 생환훈련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이 사상 첫 여성 전부비행사로 탄생하는 것은 2002년 10월. 7명 중 몇명이 빨간 마후라를 맬지는 알 수 없다.

훈련도 갈수록 힘들어진다. 초등과정에서는 프로펠러기인 T-41 세스나를 이용한 기본 비행능력 배양이 위주. 중등과정에서는 국산 제트프롭기인 KT-1와 제트기인 T-37을 탄다. 공중조작과 편대비행, 계기비행등 기본 비행기량을 숙달하게 된다.

고등과정은 일반 비행임무 수행능력을 갖추고 전술임무의 기본개념을 배우는 단계. 제트기인 T-38과 T-39를 몰고 전천후, 특수, 편대비행을 숙달하게 된다. 이 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비로소 실제 전투기를 탈 자격이 주어진다.


섬세함과 치밀함이 오히려 득될 수도

교육을 담당할 212훈련비행대대장 강주윤 중령(공사 30기)은 여성의 비행적응에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행의 필수요건으로 요구되는 섬세함과 치밀성에서 여성이 두드러져 비행기량의 빠른 발전이 기대된다는 것. 강 중령은 여성에게 부족한 기계 적응력과 하체근력, 심폐기능 강화를 위해 특별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매일 훈련 뒤 신체와 심리검사를 실시해 여성 비행에 간한 연구를 축적하겠다고 말했다.

여성 전투조종사는 소수이긴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 등에서 이미 작전중이다. 이들 국가의 그동안 연구결과에 따르면 여성이 비행에 불리하다는 증거는 없다.

전투기 조종에는 대단한 체력이 요구된다. 고속기동시 중력가속도로 인해 조종사 신체의 피가 하체로 몰리는 'G 포스' 현상이 나타나면 다리로 페달을 조작하거나 머리를 움직이는 것이 극도로 어려워진다. 생리 등 여성 특유의 신체현상도 여기에 문제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비행훈련에서 처음으로 여성 입과생으로 낸 공사 49기는 3군 사관학교 중 처음으로 여성이 입교한 기수이기도 하다. 선배들과 달리 남녀공학으로 4년을 지낸 이들 기수의 경험은 어땠을까.

한 여생도는 여성이 소수인데서 오는 불편함이 많았다고 말했다. 소수가 겪는 불이익도 그렇지만 다수인 남성이 받는 역차별에도 부담을 느꼈다는 것. 남생도의 생각은 다소 달랐다.

초등비행훈련에 함께 입과한 이승민 생도는 "입교 때부터 여생도 동기와 함께 생활해 자연스러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배들은 다소 불만을 갖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이젠 원산폭격 시키면 잠자요"

한 여생도는 "4년간의 생활에서 가장 인상깊은 추억은 선배에게 얼차려받고 깨지던 것"이라고 말했다.

"팔굽혀펴기는 기본 중의 기본이고 원산폭격을 시키면 잠자죠. 덕분에 앞머리카락이 좀 빠졌어요." 한 생도는 4년간 화장을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새벽 6시30분에 기상해 7시 30분 식사시간 때까지 모든 정리와 화장을 끝냈다는 것. 하지만 앞으로 비행훈련을 받게 되면 색조화장은 할 수 없다.

남녀공학 사관학교의 남녀관계는 교칙에 따른 몇가지만 제외하면 일반 대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다.한여생도에 따르면 동기간, 선후배간 커플도 있다. 손을 잡거나 머리를 쓰다듬는 등의 신체적 접촉을 통한 애정표현은 안된다.

학교밖에 애인이 있는 여생도도 역시 있다. 동기끼리 리포트를 참고로 빌려보기도 한다. 리포트를 베끼는 것은 스스로의 명예를 떨어뜨리는 행위라 하지 않는다. 시험시간 커닝은 퇴교사유다.

한 형생도는 매주 주말휴가 때는 서울의 부모님을 찾아뵙고 애인가 데이트를 즐기곤 한다. 부모님은 "전투조종사는 위험하다"며 걱정하지만 애써 말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애인도 마찬가지.

전투조종사를 꿈꾸는 이들에게 장군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다. "별은 열심히 하다보면 다는 것이죠. 전투조종사가 돼 빨간 마후라를 매는 것이 당연 목표입니다."

입력시간 2001/01/17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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