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미사일 정책

한국이 '신(新)미사일 정책'을 선언했다. 군사용 미사일은 사거리 300㎞, 탄두중량 500㎏의 한도 내에서 독자적으로 개발ㆍ생산ㆍ배치하고, 민간 우주발사체는 무제한 개발하겠다는 것이 새 정책의 핵심이다.

또 300㎞/500㎏ 이상의 미사일의 경우 연구ㆍ개발은 거리와 탄두 중량에 관계없이 하되 시험발사와 시제품 생산은 국제적 비확산 기준을 지킨다는 것도 새롭게 추진되는 정책이다.

새 미사일정책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미사일 주권의 회복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우리의 미사일 개발 능력에 대한 또다른 속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가안보에 필요한 미사일 능력을 갖추게 됐다"는 정부의 자평(自評)과 "대북 억지력을 확보하는 데는 여전히 부족하다"는 비판도 섞여 있다. 과연 새 정책은 우리의 미사일 안보에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미사일 족쇄 파기

우리의 미사일 개발 역사는 미국으로부터 최소한의 기술을 제공받는 대신 미사일 주권을 포기한 굴욕의 역사였다. 정부가 1979년 사정거리를 180㎞로 제한한 한ㆍ미 지대지 미사일 각서에 서명한 것은 미국의 기술지원을 받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미사일 주권을 속박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미국은 1990년 5월 "엑스포 박람회의 일환으로 제주도에서 인공위성 발사를 검토한다"는 신문 보도를 구실로 우리의 미사일 개발을 의심, '180㎞제한' 약속을 다시 요구했다.

이에 따라 같은 해 10월 외무부의 안보정책과장이 "180㎞/500㎏을 초과하는 어떤 로켓 체계도 개발하거나 획득하지 않겠다"는 서한을 미 국무부에 발송했다. 이른바 미사일 족쇄로 불리는 '양해서한'이다.

미국은 이 서한을 정부 차원의 공식 외교문서로 간주, 우리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 노력을 원천봉쇄함으로써 민간 우주개발 사업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된 것은 물론이고 북한과의 미사일 비대칭 격차도 더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북한은 1980년 초반부터 스커드-A, 스커드-B, 스커드-C 등을 차례로 개발한 데 이어 사정거리 1,000㎞ 이상의 노동1호를 실전배치하는 등 미사일 능력을 비약적으로 향상시켜왔다.

이같은 불합리를 고치기 위해 한국과 미국은 1995년 11월부터 1998년 8월 초까지 5차례 협의회를 개최, 사거리 제한 조정 문제를 협의했으나 우리측 미사일 개발 관련 정보의 제공 범위와 시기에 대한 이견으로 결론을 내지못했다.

교착상태에 있던 협상에 진전의 계기를 마련해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시험발사였다. 북한은 1998년 8월31일 사거리 1,500~2,200㎞급의 대포동 1호를 시험발사함으로써 동북아 안보상황을 긴장국면으로 몰고갔다. 이같은 상황은 대북 억지력 차원의 미사일 사거리 연장에 대한 우리의 명분을 강화시켜 한ㆍ미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하는 쪽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안보수요 충족 가능한가.

"안보상 필요한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다른 나라를 자극하지 않는 수준이다." 한미 미사일 협상의 우리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송민순 외교부 북미국장(주 폴란드 대사 내정)이 우리나라가 개발ㆍ보유하게 되는 미사일의 사정거리에 대해 내린 정의다.

그의 언급에는 국내적 안보수요와 국제적 역학관계를 따져볼 때 500㎏짜리 탄두를 싣고 300㎞ 정도의 지점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수준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적정선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해 사거리 300㎞ㆍ탄두중량 500㎏ 이상의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은 우리의 안보상 측면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며 주변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거리 300㎞, 탄두중량 500㎏의 미사일이 우리의 안보 수요에 적당한 것인가는 의문이 생긴다. 사거리가 180㎞에서 300㎞로 연장됨에 따라 평양에도 못미치는 사정권이 신의주ㆍ강계ㆍ성진 등 후방 지역으로 확대된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북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사거리가 500㎞는 돼야 한반도 전역을 커버할 수 있다. 이런 의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트레이드 오프'(Trade Off) 방식의 사거리 조절이다. 즉, 탄두중량을 줄이면 사거리가 늘어나는 원리를 적용할 경우 한반도 전역을 사정거리로 하는 미사일을 개발ㆍ배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미사일 체계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 조합이나 응용 가능성을 종합 검토한 결과 300㎞/500㎏의 수준으로 우리가 필요한 능력을 맞출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게다가 300㎞/500㎏ 이상 수준의 미사일도 연구ㆍ개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무기화하지 않은 상태의 무기'(Unweaponized Weapon)의 개발로 인한 잠재적 방위력도 갖추게 됐다는 것이 정부측의 설명이다.

하지만 탄두중량의 감소는 곧 파괴력의 축소를 의미하는 데다 연구ㆍ개발 단계의 미사일은 유사시 실전 활용에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들어 일부에서는 정부의 주장에 이의를 달기도 한다.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

사실 우리 미사일 개발의 최대치가 300㎞/500㎏으로 설정된 데는 무엇보다 국제적 미사일 규범과 주변국의 우려 촉발 등 외부적 요소가 강하게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1987년 미국의 주도로 창설돼 32개 회원국을 두고 있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은 제3세계 국가의 핵 및 생화학무기 운송수단 개발을 막기 위해 회원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 미사일 관련 기술과 장비의 수출 및 이전을 금지하고 있는데 통제의 기준점이 300㎞/500㎏이다.

500㎞은 미국과 같은 핵 선진국이 미사일 탑재용으로 만들 수 있는 핵무기의 최소 단위이고 300㎞는 핵무기로 다른 나라를 공격할 때 자기에게 피해가 돌아오지 않는 거리를 말한다.

이는 곧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이 발사국에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공격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최소한 500㎏짜리 핵무기를 싣고 300㎞ 이상을 날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MTCR이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국가에 300㎞/500㎏ 선을 넘지 않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MTCR은 미사일 통제장치로서 기능하지만 동시에 회원국간에는 기술이전이 가능한 일종의 미사일 선진국 클럽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얻기 위해서는 MTCR에 가입해야 하고 그 전제로 MTCR의 규범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는 "우리가 MTCR에 가입한다는 것은 미사일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는다는 현실적 측면과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을 위한 국제적 노력에 동참한다는 측면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3월 말로 예정된 MTCR 회의 때 정회원으로 가입한다는 목표 아래 준비절차를 진행중이다.


향후 전망

미사일 개발의 족쇄가 풀리고 MTCR에 가입한다고 해서 당장 사거리 300㎞급 미사일의 개발과 실전배치가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거리 180㎞의 현무 미사일 개발 과정에서 상당한 기술력이 축적된 것은 사실이지만 관성유도장치(INS), 목표식별센서 등 핵심기술에서 여전히 미국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개발의 투명성 문제를 두고 미국과 마찰이 빚어질 경우 생산 및 배치가 지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주변국의 반응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북한은 물론 중국, 일본이 군비경쟁의 빌미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미사일 전문가는 "기술이전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주변 여건이 마련될 경우 향후 2-3년후 300㎞/500㎏의 미사일 개발이 이뤄지고 2006년에는 실전배치도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승일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1/01/3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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