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일본(43)] 오차(お茶)②

한중일 3국이 똑같이 쓰는 한자가 상당한 의미차이를 갖는 예가 더러 있다.

'공부'(工夫)는 중국에서는 쿵푸, 즉 몸을 다듬는 권법을 가리키지만 한국에서는 머리를 쓰는 학습의 뜻으로 쓰인다.

일본에서는 '구후'라고 읽고 학습보다 정신작용의 단계가 더 높은 고안ㆍ궁구(窮究)를 뜻한다. 문화 중심에서 주변으로 가면서 외래어의 격이 높아진 셈이다.

이는 외래문물에 대한 호칭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일본이 유난히 '도'(道)라는 말을 즐겨 쓰는 것도 그런 예다. 검술ㆍ검법은 어느새 검도로 바뀌었고 오키나와(沖繩)의 유술(柔術)이 본토에 전해져서는 바로 유도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예가 일반적이지만 일본에서는 으레 서도라고 하고 꽃꽂이도 한때는 '가도'(華道)라고 불렀다.

단순한 기예보다는 한차원 높음을 강조한 결과로서 무술과 예능 등을 모두 마음 다듬는 방편으로 여겼던 선사상의 영향을 엿보게 한다. 차를 대접하고 즐기는 법인 '차도ㆍ사도'(茶道)에 남은 선종의 흔적은 한결 뚜렷하다.

차도ㆍ사도에 대해 일본의 사전은 '맛차(抹茶ㆍ가루차)를 만들고 음미하며 다기를 감상하는 예의 등을 중심으로 한 예능'이라며 차카이(茶會ㆍ차모임)에서의 마음가짐을 강조하고 있다. 예능이라는 말이 낯설지만 차도ㆍ사도가 꽃꽂이나 다른 전통 예능처럼 유파의 최고 지도자인 이에모토(家元)를 통해 대대로 기능을 이어왔음을 이해하면 된다.

일본의 차도ㆍ사도는 중국식 덩어리차 마시기에서 출발, 차문화가 개화한 14세기에는 차의 맛과 빛깔로 생산지를 가리는 상류층의 도사(鬪茶)놀이로 이어졌다.

당시 상류층이 스키(數寄ㆍ연회)의 하나로 차모임을 즐겼으며 중국 도자기를 비롯한 수입 미술ㆍ공예품을 자랑하는 자리로 삼았다. 한편 서민들도 요리아이(寄合ㆍ집회)의 하나로 차모임을 즐겼으며 나름대로 상류층의 호화로운 차문화를 흉내냈다.

15세기 후반 들어 이런 차모임의 모습은 크게 바뀌었다. 차도ㆍ사도의 시조로 통하는 무라타 주코(村田珠光)는 당시 선사상의 유행에 따라 지식층 사이에 인기를 끌었던 새로운 미의식을 차에 접목, 서민적 차요리아이(茶寄合)와 귀족적 차스키(茶數寄)를 통합했다.

밝고 눈부시고 완전한 것대신 지는 나뭇잎처럼 어딘지 부족하고 쓸쓸한 데서 아름다움을 찾는 미의식이었다. 수입 도자기 대신 소박한 일본 도자기를 쓰는 등의 변화가 찾아들었다.

이런 새로운 기풍은 다케노 조오(武野紹鷗), 센노리큐(千利休) 사제를 거쳐 활짝 꽃피었다.

조오는 '와비'(侘び)라는 말을 차도ㆍ사도에 처음 적용했다. 와비는 은자의 삶처럼 한적하게 사는 모습을 가리키는 동사 '와비루'(侘びる)의 명사형으로 바쇼(芭蕉)의 하이쿠(俳句)에 담긴 '사비'(寂び)의 미의식과 통한다. '사비'의 동사원형 '사비루'는 녹슬거나 퇴락한 모습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와비ㆍ사비는 퇴락하고 한적한 데서 느끼는 멋이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사도(茶頭), 즉 차를 만들어 주는 전문가였던 센노리큐는 와비의 미의식을 극으로 끌어올린 동시에 차모임의 형식과 절차를 만들어 차도ㆍ사도를 완성했다. 그의 자손이 대를 이은 무샤노코지센케(武者小路千家), 오모테센케(表千家), 우라센케(裏千家)를 비롯한 각종 유파에 의해 오늘날까지 그 원형이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의 차도ㆍ사도는 격식이 너무 까다로워 이방인은 제대로 차를 즐기기 어려울 정도다. 차시쓰(茶室)는 은자의 집을 연상시키는 초가집으로 흙벽을 그대로 드러낸다. 실내 장식은 아주 간단한 꽃꽂이와 짧은 글귀를 담은 가케지쿠(掛軸· 족자)에 한정돼 있다.

차시쓰의 출입문인 니지리구치(躪口)는 몸을 굽히지 않고는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게 만들어져있다. 속세의 귀천을 잊고 누구나 겸손한 자세로 임하는 평등한 공간, 칼을 차고는 들어갈 수 없는 평화로운 공간을 만들기 위한 장치다.

참석하는 사람의 행동과 마음가짐, 차를 달이고 마시는 과정, 필요한 도구는 물론이고 대화 내용까지 제한해 일종의 종교 의례를 떠올리게 한다. 자유와 파격을 중시하는 선사상의 본령과는 상당한 거리감과 동시에 내용과 결과보다는 치밀한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는 일본적 의식 구조가 느껴진다. <끝>

황영식 도쿄특파원

입력시간 2001/01/30 18:48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