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미국으로의 탈출

워싱턴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보면 모르는 사람들로부터도 연락을 자주 받는다. 한국에서도 변호사를 하다가 왔다고 하니 여러 경로를 통해서 많은 한국 사람으로부터 이런저런 법률적 내용에 대하여 질문을 받는다.

질문도 천차만별로 다양하다. 미국에 이민온지 몇 십년이 지났는데 친지에게 명의신탁하여 놓았던 부동산에 얽힌 분쟁에서부터 시작하여 이혼, 국내 기업의 해외지사 설치 및 세금처리 문제, "미국에 특허를 출원하거나 상표를 등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이르기까지 모든 법률 분야에 걸쳐있다.

오죽 답답했으면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사정까지 이야기할까 싶어 아는 대로 최대한 답변을 하려고 하지만 때때로 필자의 능력이 부족함을 통감할 뿐이다.

요사이 특히 많이 접하는 질문내용을 보면, 대부분 어떻게 하면 미국에 올 수 있는가에 관한 것이 많다. 미국의 법과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상담을 구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아마도 세계화가 진전됨에 따라 외국에서 생활하는 것에 대한 거리낌이 없어지고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워짐에 따라 좁은 한반도를 벗어나 보다 넓은 대륙에서 힘껏 자신의 꿈을 펼쳐보려는 희망에서일 것이다.

최근 들어 새로이 미국에 오는 이민자가 대폭 늘어나고 있다. 인터넷을 기폭제로 한 새로운 경제가 시작되면서 이를 뒷받침할 고급 기술인력을 미국 내에서 충당할 수 없게 되자 해외에서 이러한 기술자를 수입해 쓰자는 것이다.

지난 1년간 10여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이러한 명목으로 미국에 들어왔다. 소위 H1B 비자로, 고학력을 가진 외국인을 기업이 임시로 고용할 수 있는 임시 취업비자다. 취업기간은 3년인데 1회에 걸쳐 연장할 수 있어 총 6년간 일할 수 있다.

대부분 그 기간 내에 영주권을 신청하여 미국에 영주하게 된다. 영주권을 취득하지 않으면 다른 직장으로 옮기기 어려워서 일정 기간 동안은 H1B 비자를 발급받도록 도와준 회사에 매여있게 되기 때문에 '신종 노예제도'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비자를 신청할 때 노동부에서 노동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때 해당 업종의 평균임금 이상을 지급한다는 것을 고용주가 밝혀야 한다.

임시 취업비자를 받아 입국한 외국인을 출신지별로 보면, 인도가 단연 수위를 차지하여 전체의 50% 가까이를 차지한다. 미국 컴퓨터 및 통신산업에서 인도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여실히 나타내주는 대목이다. 그 다음이 중국, 필리핀 등의 순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10위권 내에 들지못한다. 인터넷 경제가 구호로만 그치지 않고 한반도의 테두리를 벗어나려면 우수한 기업과 인력이 활발히 해외로 진출할 것을 모색하여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한다.

그밖에 투자이민 등의 방법으로 미국에 오는 경우도 있다. 원칙적으로 1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하여 일정 숫자 이상의 현지인을 고용하면 영주권을 발급하여 주는 것이다. 실업률이 높은 지역으로 오는 경우에는 투자액 하한선이 50만 달러로 줄어든다. 그밖에 종교, 학술이나 예체능 관계자에게 특별히 이민의 문호가 열려져 있는 경우도 있다.

고국의 경제가 나빠지면서 많은 사람이 이민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소위 잘 나간다는 30-40대의 대기업 중견간부조차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보도되면서 한국 사회의 대들보를 이루며 한참 일할 사람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왜 이민을 가려고 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대답은 한국의 지나친 경쟁과 사회적 스트레스, 그리고 자녀의 교육문제 등이다. 좀더 인간답게 살아보기 위해서 미국에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받는 경쟁과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미국에 온다고 생각한다면 커다란 오산이다. 미국 직장에서의 노동 강도와 스트레스는 한국보다 훨씬 더하다. 게다가 미국에서 자라지 않은 이상 극복할 수 없는 언어의 장벽도 있다.

미국에서 일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스트레스가 적을 것이라는 것은 잘못된 환상일 뿐이다.

이러한 환상을 실현하려 한다면 자신의 직업 수준을 낮추는 수 밖에 없다. 미국행이 '지옥에서의 탈출'이 아니라 '승천을 위해 더 뜨거운 지옥불로 연마하러 간다'는 마음가짐이 아니면 성공적인 미국 생활은 어렵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1/01/30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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