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고스톱 폭발적 인기, 중독자 속출

전북 임실에 사는 박정모(40ㆍ가명)씨는 요즘 식구들로부터 '올빼미 아빠'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이유는 인터넷 고스톱 때문이다. 박씨는 어린 시절, 어른들의 어깨 너머로 배운 고스톱에 흥미를 붙여 주변에서는 그런대로 알아주는 실력자로 여져졌었다.

그러다 지난해 여름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사이버 고스톱을 시작하면서 순식간에 마니아가 돼버렸다.

박씨는 출근과 동시에 컴퓨터를 켠다. 간단히 메일만 확인한 뒤 어김없이 들어가는 곳은 고스톱 사이트. 여기서 1시간 가량 몸을 푼 뒤 일상 업무에 들어간다.

하루 운세를 고스톱으로 점쳐보는 것이다. 점심시간 이후 서너 시간 고스톱과 씨름하는 것은 기본이다. 박씨는 제조업체 공장장이라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 하루동안 회사에서 4~5시간을 고스톱으로 보낸다.


한번 '붙으면' 20시간 이상 격전

집에 와서도 그칠 줄을 모른다. 한번은 휴일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무려 20여시간을 고스톱과 격전을 치른 적도 있었다.

세끼 식사는 아내가 책상 옆에다 차려다주는 것을 먹었고 화장실 가는 것을 제외하고 의자에서 일어서질 않았다. 한 경기를 하는데 채 5분이 안되니 하루 약 300게임을 한 것이다. 박씨 스스로도 자신이 심한 고스톱 중독증에 걸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저히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어 고민이다.

어차피 내 돈이 아니라 잃어도 부담이 없고, 모르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이 박씨를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 박씨는 올해 들어 하루 10시간 고스톱에 매달리던 것을 절반 이내로 줄이겠다고 마음 먹었다. 하지만 아직 실천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도박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일반 직장인은 물론이고 주부, 대학생, 자영업자, 공무원, 유흥업소 종사원, 심지어는 교사나 의사, 연구직 같은 전문직 종사자에게 무섭게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사무실이나 집, PC방 등 컴퓨터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든, 상대를 가리지 않고 사이버 도박에 몰두한다. 직장 사무실에서 몰래 인터넷 도박을 하다 적발돼 인사조치를 당하는 회사원이 있는가 하면, 가장이 사이버 도박에 빠져 가정이 파탄나는 웃지 못할 경우도 생기고 있다.

이들 사이버 도박 중독자들은 한결같이 스스로 그 폐해를 느끼면서도 정작 발을 빼지는 못하고 있다.

더구나 인터넷 도박 사이트들이 사이버 머니를 적립, 랭킹 시스템과 경매제 도입, 현금 제공 등 각종 유인책을 쓰고 있어 한번 시작하면 나오기가 매우 힘들다.

지난해 11월 온라인 고스톱게임사인 프로고스톱닷컴(www.progostop.com)이 총 1,000만원의 상금을 걸고 개최한 '프로고스톱닷컴배 사이버 도신(賭神)전'에는 전국에서 무려 1만8,000여명의 꾼이 운집하는 일대 성황을 이뤘다.

한국통신 하이텔 등이 후원한 이 대회에는 주부, 자영업자, 인테리어업자, 디자이너, 설계사, 공무원, PC방 사장, 의사, 카이스트 대학원생을 비롯해 애인 커플, 모녀 커플 등 '고스톱의 지존'들이 출전해 온라인상에서 기량을 겨뤘다.

대회 출전자중에는 고스톱을 제2의 직업으로 삼고 있는 투잡스(Two Jobs)족도 있었다. 30대 후반의 개인사업가인 김모씨는 이 대회 27강전에서 탈락했지만 고스톱 경력이 2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그는 인터넷 도박이 국내에 처음 도입되던 1997년경부터 사이버쪽으로 눈을 돌려 지금은 인터넷 고스톱 동호회 시숍까지 맡는 등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됐다. 김씨는 고스톱 게임으로 적립한 사이버 머니로 가족 선물을 비롯해 컴퓨터, TV, 냉장고 같은 가전제품을 마련했을 정도다. 인터넷으로 녹화 중계되는 이번 대회에서도 해설을 맡았다.


고스톱지존들 온라인에 총출동, 기량 겨뤄

이 대회에는 모 의대 레지던트 4년차인 황모(24)씨도 의사고시 시험을 며칠 앞두고 출전하는 열의를 보였다. 황씨는 오프라인에서 친구들과 자주 고스톱을 즐겼는데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회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하루 4~5시간을 연습해 9강까지 올랐다.

또 상당수 선수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제주도 등 지방에서 올라오는 등 대회 열기가 의외로 뜨거웠다. 이 대회는 케이블TV와 인터넷을 통해 녹화 방영될 예정이었으나 방송위원회가 방송중지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현재 최종 결승전을 남겨두고 중단된 상태다.

현재 국내에 럭키포유(www.l4u.co.kr), 조이포유(www.joy4you.com), 프로고스톱(www.progostop.com), 조이돔(www.joydom.com), 비주얼소프트(www.visualames.co.kr) 등 수십개의 인터넷 게임 전문 사이트들이 운영되고 있다.

여기에 네이버가 운영하는 한게임(hangame.naver.com)을 비롯해 거의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나 엔터테인먼트 업체들이 예외없이 게임코너를 따로 운영하고 있어 이것까지 합치면 그 숫자는 그야말로 수백개에 달한다.

이중 대부분은 그야말로 단순한 게임 수준에 머물고 있다. 대개 회원에 가입하거나 광고를 보면 게임에 필요한 사이버 머니를 주는데 이것을 종자돈으로 네트워크 게임을 한다.

게임에서 이기면 상대방의 사이버 머니를 받게 되고, 반대로 지면 뺏기는 방식이다.

각 사이트마다 성적에 따라 등급과 순위를 매긴다. 베팅 게임의 경우에는 실제 오프라인상에서 벌어지는 경기를 선정해 이길 팀과 베팅 액수를 정한다.

자신이 선택한 팀이 이기면 베팅 비율에 따라 사이버 머니를 받는다. 예를 들어 한ㆍ일 축구전에서 한국쪽에 건 사람은 한국이 이길 경우 일본쪽에 건 사람의 사이버 머니를 비율에 따라 나눠갖는다.

이렇게 해서 일정 수준의 사이버 머니를 적립하면 사이트마다 실시하는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경매에는 항공권이나 PC주변제품, 가전제품 등이 올라오는데 자신이 모은 사이버 머니로 구입할 수 있다.

대개 상당한 사이버 머니를 적립해야 경매 물건을 구입할 수 있어 상당한 마니아들이 아니고선 물건 구입이 어렵다. 일부 사이트에서는 이런 단점을 보완해 사이버 머니를 아예 현금으로 환산해서 주는 곳도 있다. 모 게임 사이트의 경우 1만 사이버 머니당 현금 1,000원을 계좌에 입금시켜준다.


오락수준 넘는 카지노사이트 속속 등장

최근 들어서는 오락 수준을 넘어 실제 도박에 준하는 베팅을 하는 인터넷 카지노 사이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사이트에서는 포커, 슬롯머신, 바카라, 룰렛, 블랙잭, 도리짓고땡 등의 도박 게임을 개설해놓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런 사이버 도박이 불법이기 때문에 주로 코스타리카나 카리브해 등 해외에 사이트를 경유해 운영된다.

또 상당수 해외 사이트도 한글 버전으로 들어와 국내의 꾼들을 유혹하고 있다. 모 사이트의 경우 한글 일본어 중국어 등 무려 13개 다국적 언어로 꾸며져있다.

현재 외국에는 약 500여개에 달하는 도박 사이트가 성행하고 있는데 이것들은 인터넷 도박이 합법화된 버뮤다나 지브롤터에 서버를 두고 운영한다. 사이버 도박의 경우 게임비는 모두 신용카드로 정산된다.

미국의 '카지노 판타지'라는 업체는 지난해 1,000달러의 경품을 걸고 게임자를 모집했다. 이 업체는 최저 도박비용 5달러를 구입할 경우 30달러를 보너스로 지불한다며 선전했다.

또 '카지노 온넷'이라는 업체도 "최초 게임비의 20%를 보너스로 지급한다"며 국내외 네티즌에게 메일을 보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국내에서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도박을 해본 네티즌은 20만명을 넘는다. 국내에서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통해 해외로 흘러가는 돈만도 연간 약 1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접근 쉬워 쉽게 중독, 관리·감독 시급

정부는 인터넷 도박 사이트가 문제가 되자 경찰청 관세청 인터넷서비스업체(ISP) 정보통신윤리위원회와 함께 대책 마련에 나서 도박사이트를 발견하는 즉시 폐쇄하고 관계자를 고발키로 했다.

그리고 인터넷 도박사이트를 개설한 자는 물론 상습적으로 이용한 도박꾼에 대해서도 외국환거래법을 적용, 3년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할 방침이다.

하지만 도박 사이트들이 해외를 거점으로 우회적으로 운영하고 있어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연세대 유석춘(사회학)교수는 "인터넷 도박은 초기 자본이 필요없고 접근성이 용이해 일반인이 실제 도박보다 더 쉽게 빠질 수 있다"며 "더구나 우리 주변에 한탕주의가 만연하면서 도박으로라도 이것을 보상받고자 하는 잠재심리까지 퍼져 앞으로 더욱 문제가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사행심과 한탕주의라는 숙주를 발판으로 사이버상에서 무한 확대되고 있는 인터넷 도박이 건전한 엔터테인먼트의 장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정부 당국의 철저한 관리ㆍ감독이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새벽녘 '고스톱 미녀들'을 조심하라

인터넷 도박 중 최고 인기 종목은 단연 고스톱이다. 하지만 새벽 시간 고스톱에 빠졌다간 자칫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고스톱 여자 삐끼가 있기 때문이다.

자정이 넘은 새벽시간 인터넷 고스톱을 가장 즐기는 계층은 뜻밖에도 유흥업소 여종업원이다.

룸싸롱이나 단란주점 등이 문을 닫는 새벽 2시 이후 도심의 PC방을 가보면 미모의 젊은 여성들이 게임기에 앉아 고스톱에 열중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30~40대의 남자 중에는 일부러 이 시간대에 맞춰 고스톱을 하는 이들이 꽤 있다.

고스톱을 하면서 대개 채팅으로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젊은 여성과의 교제를 원하는 일부 남성이 이를 알고 접근한다는 것. 하지만 최근 경기가 냉각되면서 일부 여자 종업원들이 일부러 이를 이용해 손님을 유혹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대구 수성구에서 PC방을 운영하는 여모(28)씨는 "오전 2시 이후 손님 주류는 영업을 마친 인근 유흥업소 여자 종업원이다. 이들은 아침 해가 밝아질 때까지 2~3명씩 짝을 지어 고스톱 게임을 즐긴다"며 "이중 일부가 게임을 하던 사람과 채팅을 통해 만나는 경우를 종종 봤다"고 말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1/30 19:01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