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의문사 규명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

남아공에서는 백인정권의 철권통치가 있었고,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는 군사독재권력에 의한 비인간적인 탄압이 있었다.

이젠 세상이 바뀌었다. 남아공에서는 과거청산이 마무리 단계고,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는 청산이 한창 진행중이다. 국가란 이름 아래 폭력적 권력이 인간성을 침탈했다면 인간성을 회복시키는 것은 민주주의의 힘이다.

우리나라도 국가수호와 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빨갱이 사냥'을 벌이면서 폭력적 권력을 정당화한 시기가 있었다. 권력자들은 심지어 국가와 권력을 등치시키기까지 했다.

오만하고 견제받지 않은 권력은 민주주의 순교자를 양산했다. 이들 희생 중에는 죽음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른바 의문사도 적지 않다. 의문사에는 민주화 인사만 있는 게 아니다. 권력불가침의 분위기 아래서 진실이 조작된 경우도 있다.

독재시절 의문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의문사 진상규명위'가 본격 조사활동에 들어갔다.

법적 권능의 한계와 인원부족 등으로 실질적 성과에 대한 회의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규명위는 "더 큰 문제는 국민의 관심 부족"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국민적 관심 부족이 홍보부족 탓만은 아닐 것이다. 역사를 반성하고 기억하지 않는 민족은 또다시 같은 과오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격언을 모르지도 않으리라. 그러면 왜일까.

의문사 규명은 역사 바로세우기의 일환이라고 한다. 어쩌면 국민은 정치적 구호와 상징에 식상해하는지도 모르겠다. 걸핏하면 '역사 바로세우기'나 '국가적'아니면 '민족적'이란 거창한 수사가 등장하다보니 이젠 그런 상징에 마취됐다고나 할까.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2/06 17:04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