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더스 코리아] "인간다운 삶을 위해 떠난다"

1월29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O이주공사 사무실. 한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인데도 오전 8시경부터 이민 절차와 자격을 묻는 전화가 끊이질 않고 걸려온다.

이 회사 10여명의 직원들은 몰려드는 손님과 상담하랴, 쏟아지는 문의 전화를 받으랴 북새통을 이뤘다. 비단 이 회사 뿐만 아니다.

31일 오후 강남구 삼성동 하나은행 빌딩에서 열린 캐나다 이민 설명회를 주관한 H이주공사 관계자는 몰려드는 이민 희망자로 큰 곤혹을 치렀다.

예상을 훨씬 웃도는 인파가 몰려 준비한 자료가 모두 동이 났을 뿐아니라 설명회장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의 거센 항의까지 받아야 했다. 그야말로 '엑소더스 코리아' 열풍이다.

한국을 떠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 이민 인구는 보릿고개에 시달리던 1960년대 초(1962년 386명)부터 증가하기 시작해 경제개발계획이 한창이던 1976년 연간 4만6,533명을 최고점으로 찍은 이후 20여년간 매년 10% 정도씩 줄어드는 추세에 있었다.

더구나 1980년대 말부터는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오는 역이민자들이 급증해 이주대비 점유율(역이민자수/해외 이민자수)이 60%(1993년)까지 육박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이민 열기가 무서운 속도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1996년부터 1999년까지 4년간 매년 1만2,000~1만3,000여명의 수준에서 제자리 걸음을 하던 이민자수가 지난해에는 21%나 증가한 1만5,307명이나 됐다.

더구나 지난해는 우리 경제가 IMF 체제에서 벗어나 반짝 호황기를 맞았던 때라 업계 관계자들조차 놀라고 있다.


무서운 속도로 번지는 이민열기

서울 모고등학교에서 운동팀 코치를 맡고 있는 설모(46)씨는 오랜 고민 끝에 지난해초 중대 결단을 내렸다. '더이상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이 땅을 떠나겠다'고. 설씨는 5~6년 전만 해도 조국을 뜬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다.

학창시절부터 줄곧 운동선수로 커왔고 현역 생활을 마친 뒤에는 태극마크를 달고 6년간 국가 대표팀 코치 생활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 대표팀 코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마땅한 자리를 찾기 어려운데다 국내에서는 비인기 종목이라 몇개 없던 실업팀마저 거의 해체돼 노후에 대한 불안감이 들기 시작했다.

현재 임시로 고교팀 코치를 맡고 있지만 좌불안석이기는 마찬가지다. 여기다 고1인 아들의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어마어마해지면서 설씨는 과감히 결정을 내렸다.

"사실 한국에서는 그간의 사회적 위치를 무시할 수 없어, 아마 평생 이 분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외국에 나가면 몸으로 때우는 일이지만 누구 눈치보지 않고 마음놓고 할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결정했다"며 "정착금으로 30만 달러 정도 가지고 가는데 2~3년간은 무료 영어연수 프로그램인 ESL에서 배우고 저녁에 청소나 배달 같은 파트타임잡을 가질 생각이다. 해병 신병훈련을 받는 것 같은 비장한 각오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5월 캐나다로 떠날 예정인 장영혜(36)주부는 지난주 모 이민공사가 주최하는 이민자 정착 설명회에 네살배기 딸 혜민이와 4개월된 젖먹이 상민이, 그리고 친언니 일가를 대동하고 참석했다.

장씨는 처음에는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남편의 권유로 이민을 알아봤는데 지금은 오히려 남편보다 더 열성분자가 됐다. "남편은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한다. 하지만 회사 일이 바빠 주말에도 아이들과 함께하질 못합니다.

어느날 남편이 심각하게 '당신,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인간답게 살고 싶으니 한국을 떠나자'고 제의했고 나도 '딸 아이에게 부엌에서 평생을 보내지 않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보람이 아닌가'싶어 결정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입시전쟁없는 나라에서 아이 키우고 싶어

최근의 이민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은 목적과 유형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점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민 형태는 생계형 이민이나 법적ㆍ도덕적ㆍ정치적 문제로 떠나는 도피형 이민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 이민은 보다 높은 삶의 질을 영위 하고자 하는 선진형 이민이 주류를 이룬다.

국내의 불안정한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 여건 속에서는 더이상 희망을 찾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 이민자들이 탈한국을 감행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불합리한 교육제도와 불안정한 사회 분위기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대학 입시를 위해 10여년을 씨름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 거기에 정규 교육의 수배가 넘는 엄청난 사교육비. 그렇게 희생하며 공부해 취직을 해도 40대를 넘기기 힘든 불안한 직장 환경..

그에 비교해 자유로운 학교 분위기, 여유있는 교육여건과 시설, 개성을 중시하는 전인교육 시스템, 거기에 무상에 가까운 선진 외국의 교육 시스템은 입시 전쟁을 걱정하는 학부모의 마음을 돌려놓기 충분하다.

이민 여부를 최종 결정하기 위해 방학 때 부모님과 함께 캐나다에 다녀왔다는 김나래(13ㆍ중3)양은 "외국에 가보니 맑은 공기와 드넓게 펼치진 도시, 그 속에서 한가롭게 지나는 사람의 모습이 너무 부럽고 좋아보였다"며 "특히 그곳의 학교는 우리나라처럼 공부에만 매달려야 하는 부담도 없고 자기가 관심 있는 분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줘 너무 부러웠다"고 말했다.

1년 전부터 이민을 준비해왔다는 서모(41ㆍ여)씨는 "학교를 마치고 귀가해서 주요 과목의 보충 과외와 미술, 음악 학원을 갔다 밤늦게 파김치가 되어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보면 서글픈 생각마저 든다"며 "이처럼 꿈많은 청소년 시절을 희생하면 배운 공부를 과연 커서 얼마나 사회에서 써먹을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한심한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소중한 어린 시절을 돌려주고 싶어 이민을 간다"고 털어 놓았다.


고학력 고소득 젊은층 이민 증가

이민희망자중 상당수는 부도덕한 우리 사회에 대한 실망 때문에 떠나는 경우도 있다.

비리로 얼룩져 있는 정치권,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 불안정한 경제 등이 이들을 외국으로 몰아놓고 있다. 정모(52ㆍ여)씨 가정이 바로 그런 케이스다. 정씨는 종합무역상사를 운영하는 남편과의 사이에 대졸 장남과 대학생 딸아이를 두고 있다.

나이 쉰을 넘긴 정씨가 이민을 가려는 이유는 그간 개인사업을 하면서 경험한 온갖 비리와 편법에 신물을 느껴서다.

"남편이 20여년간 회사를 운영하며 겪어야 했던 세무관련 일이나 공무원 비리를 말로 표현하면 끝이 없다. 이제는 이런 것을 아이들에게 되물림해주고 싶지 않다. 조금 덜 벌더라도 맑고 투명한 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이민의 새로운 추세는 30대 초반의 젊은 층이면서 고학력, 고소득층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주공사에 따르면 요즘 이민자들은 거의 대부분 대졸 이상의 학력자이며 대기업이나 공사의 중간 간부 또는 의사, 회계사, 금융 애널리스트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류를 이룬다.

이들은 현재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쾌적한 자연 환경과 안정된 노후를 위해 이를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IMF체제 이후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지면서 고용 불안정이 심화된 것도 이민 증가와 관계가 있다.

외국계 회사 지사장인 박모(37)씨는 아내 조모(37)씨와 맞벌이 부부다. 슬하에 5살 난 딸 하나를 둔 이들 부부의 연봉은 가외 수입을 빼고도 합쳐 1억원을 넘는다. 국내에서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걱정이 없는 고소득층이다.

하지만 이들은 3년전부터 이민을 준비해왔다. 박씨는 이민을 가려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들었다.

"첫번째는 쾌적한 자연과 안락한 생활환경에 대한 동경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리 경제적 여유가 있어도 매연과 교통지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주말이면 가족들과 공원에서 바베큐 파티를 하고 낚시도 즐기며 자연과 호흡하는 생활을 하고 싶어 이민을 간다. 더구나 인터넷망이 잘돼 있어 아이의 한국어 교육도 문제될 게 없다."


전문기술·영어구사능력 갖춰야

하지만 이민이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 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민자중 일부는 현지 적응에 실패해 가져간 돈만 낭비하는 경우도 있다.

국내에서 전문기술을 익혔다 하더라도 현지 언어에 능통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여유 재산이 있다면 사업을 해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몸으로 때우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최근에는 상당한 국내 자본가들이 현지에서 큰 사업을 벌이기도 하지만 대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같은 선진국으로 이민간 한국 동포들은 대부분 식료품 가게나 세탁소, 슈퍼마켓, 비디오숍, 잡화점 같은 소자영업을 한다. 실패 위험이 적고 언어가 부족해도 어느 정도 운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부 이민 가정의 경우 영주권을 받아 외국으로 나간 뒤 남편만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예전 직장에 취직, 외국에 있는 가족에게 생활비를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미국 캐나다의 이민법상 영주권자의 경우 그 나라에서 일년중 6개월 이상을 거주해야 하나 워낙 현지에서 취업이 어렵다 보니 이런 편법이 횡행하고 있다.

온누리 이주개발공사의 안영운 사장은 "1980년대 말 이후 하류층의 생계형 이민은 사라지고 요즘에는 엘리트 전문직 종사자의 기술이민과 상류층의 투자 이민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현재 이민을 진행중인 사람 중에는 100억원이 넘는 재산가들과 '공개되면 세상이 떠들썩해질 고위층'도 끼어있다"며 "이들 모두 '인간답고 질 높은 사회'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외국으로 떠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내의 유태인, 동남아 국가에서의 화교 이민자의 예에서 보듯 이민은 장기적으로 한 국가나 민족의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는 큰 역할을 한다.

또한 이민은 한 개인의 선택의 문제지, 그것이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우리가 살고 숨쉬는 이 나라가 사회환경이나 자연환경 면에서 최소한 '사람이 살 만한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막연히 이 땅이 싫어 떠나는 충동적 이민자도 더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2/06 17:19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