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사] 그들의 죽음의 진실은 무엇일까?

진상규명위, 민주화 관련 인물
75명 대상 본격 조사

당신의 부모 형제 자녀가 죽어갔다고 생각해보라. 그들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어갔는지 모른다고 생각해보라.

더구나 가해자가 권력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든다고 생각해보라. 이렇게 그들을 보낸 유가족에게 민주주의란 어떤 의미를 가질까. 과거를 극복하고, 과거와 화해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죽음의 진실을 규명하지 못한 상태에서 민주화를 논할 수 있을까. 의문사의 진실을 반드시 규명하고 넘어가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특별법에 따라 대통령 직속기구로

민주화 운동과 관련한 의문사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출범한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www.truthfinder.go.kr)가 본격적인 조사활동에 들어갔다.

규명위는 1월20일 접수된 의문사 규명 진정서에 대한 선별작업을 마쳤다. 진정서 접수시한인 1월2일까지 접수된 사건은 모두 80건. 규명위는 이중 75건에 대해 조사결정을 내렸다. 나머지 5건은 민주화 운동과 직접 관련이 없거나 규명위의 조사취지에 맞지않아 각하됐다.

규명위는 앞서 지난해 1월15일 공포된 '의문사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대통령 직속으로 성립돼 10월17일 현판식을 가졌다. 가톨릭대 대우교수인 양승규 위원장(장관급) 및 제1, 2상임위원 등 민간인 위원 9명과 정부 각 기관의 파견조사관으로 구성돼 있다.

의문사 규명의 실무를 담당할 조사관은 대검찰청과 경찰청, 국가정보원, 기무사, 헌병대 등 7개 기관에서 파견된 30여명과 민간인 20여명.

이들 조사관은 조사1, 2, 3과와 특별조사과에 편성돼 사건을 나눠맡고 있다. 조사1과는 국정원, 2과는 경찰, 3과는 보안사(현 기무사) 등 군 관련 의문사 사건을 맡고 있다. 특별조사과는 위원장이 특별히 명령하는 사건을 조사한다. 이들 조사과는 민간인 위원의 지휘감독을 받게 돼 있다.

규명위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의 입법청원(1994년 9월)을 받아들여 설립됐지만 그 목적이 유가족의 한풀이에 그치지는 않는다.

진상규명을 통해 국민의 인권을 신장하고 국민화합과 민주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다. 모든 의문사가 규명위의 조사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화 운동 및 위법한 공권력의 직ㆍ간접적인 행사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5공정권 20대가 접수 가장 많아

접수된 사건은 성별로 남자 79명, 여자 1명이다. 연령은 20대가 50명으로 가장 많고 이어 30대 8명, 10대 7명 등이다. 사망연대는 1970년대 13명, 1980년대 53명, 1990년대 14명으로 5공 정권 때의 사건이 가장 많았다.

직업은 군인 25명, 학생 17명, 회사원 8명, 비전향 장기수 5명, 교수ㆍ조교 2명 등이다. 사망원인(기존 수사결과)은 총기사 11명, 목매달아 죽은 경우 9명, 추락사 8명, 옥중 사망ㆍ음독사ㆍ폭행치사가 각각 6명, 익사ㆍ교통사고ㆍ실종이 각각 5명 등이다.

진정인이 의문사 책임기관으로 지목한 피진정 기관은 국방부가 28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경찰 15건, 국가(정부) 10건, 국가정보원 8건, 교도소 5건, 미군 1건, 기타 불특정 기관 13건이었다.

국방부 관련 사건이 많은 것은 5공 시절 운동권 학생을 강제로 군입대시켜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실시된 녹화사업의 추정 피해자가 많기 때문이다.

규명위는 이밖에 삼청교육대 희생자에 대해서도 직권조사를 고려중이다. 비록 규명을 위한 진정은 없었지만 교육중 사망한 54명 중 일부가 민주화 운동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규명위는 조사가 결정된 75건에 대해 사건당 6개월 이내에 조사를 완료해야 한다. 조사가 미진할 경우 1회에 한해 3개월 연장할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조사가 올해 안에 종료된다. 규명위의 활동은 남아공과 과테말라 등 유사한 역사적 경험을 겪은 17개국의 선례를 참조했다. 가해자가 과오를 밝히고 뉘우칠 경우 모든 죄는 사면된다. 타살로 판정될 경우 사망자에게는 명예회복, 유가족에게는 보상조치가 취해진다.


관련자료 유실등 규명활동에 한계

하지만 규명위 활동의 한계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다. 규명위가 독자적 수사권을 갖고 있지 않아 법률상 사법기구인 검찰과 군 사법기관에 고발하거나 수사의뢰를 해야 한다는 것이 대표적인 것이다. 오래된 사건이라 관련자료의 유실이 많다는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규명위는 진실규명에 유익한 정보나 증거, 자료의 제공자에게는 5,000만원 이내의 보상금을 지급해 제보를 권장하고 있다.

양승규 위원장은 "규명위의 성패는 진실규명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국민의 인식과 협조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특히 가해당사자 등에게 결자해지의 자세를 촉구했다. 양 위원장은 "양심선언자는 단순히 과거의 무거운 짐을 벗는데 그치지 않고 국민화합을 위한 영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2/06 18:57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