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화순의 쌍봉사

눈이 많이 날렸다. 도로는 최상급이었지만 미끄러웠다. 차를 돌려야 하나. 그러나 내친 걸음이었다. 산 속으로 난 지방도로를 30여 분 엉금엉금 기었을까. 암자 서너 채를 모아놓은 듯한 자그마한 절이 나타났다.

멀리서 바라보는 쌍봉사(전남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사동마을)는 그렇게 볼품이 없었다. 눈에 묻혀 여염집인지 절집인지도 구분하기 힘들었다. 실망. '화순에 가면 꼭 들러보라'던 선배의 권유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자갈이 가득 깔린 주차장에 차를 세우면서 실망은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눈을 맞으며 해탈문 안으로 들자 마음은 어느 새 환희로 바뀌고 있었다. 우연히 진귀한 보석을 발견한 기분이 이럴까. 쌍봉사는 작은 절이다. 송광사의 말사이다.

대웅전, 극락전, 요사채, 해탈문 등 달랑 4채의 절집이 고작이다. 작지만 아름답고, 소박하지만 묵직한 위엄이 절 마당에 가득했다. 무릇 절이란 이래야 한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쌍봉사는 정확한 역사를 알기 어렵다. 곡성 태안사에 있는 혜철스님 부도비에 '신라 신무왕 원년(839년)에 쌍봉사에서 여름을 보냈다'는 구절이 있어 그 이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이후 당나라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철감선사가 절을 맡았다. 철감선사 밑에서 공부한 징효대사가 강원 영월의 사자산에서 법흥사를 짓고 사자산문을 일으켰으니 철감선사는 사자산문의 개조이고 쌍봉사는 그 모태가 되는 절이다.

쌍봉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독특한 양식의 대웅전이다. 조선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3층 목조탑 양식으로 지어졌다.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과 함께 한반도에 두 개 밖에 없는 희귀한 양식이다. 1936년에 일찌감치 보물로 지정되어 관리됐다.

그런데 단청이 유난히 짙다. 주위의 건물이 고색창연한데 반해 새 건물이다. 아쉽게도 1984년 한 신도의 부주의로 불에 탔다. 지금의 건물은 1986년 문화재관리국에서 복원한 것이다. 기단 돌에 검게 그을린 자국이 있다. 아쉬움을 더한다.

대웅전을 돌아 소박한 돌계단을 오르면 극락전이 있다. 극락전은 서방 극락정토의 주재자인 아미타불을 모시는 곳.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을 올렸다. 앞에는 굵은 단풍나무 두 그루가 휘엉청 가지를 드리우고 있다. 지금은 붉은 단풍잎 대신 하얀 눈꽃을 피웠다. 선경이 따로 없다.

쌍봉사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가장 높은 것은 절 뒤에 있다. 철감선사탑과 탑비이다.

철감선사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은 국보 제 57호, 탑비는 보물 제 170호로 지정돼 있다. 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도탑과 탑비로 평가받고 있다. 부도탑은 팔각원당형이다. 사자, 연꽃, 신장, 천인 등 돌에 새겨놓은 각종 조각이 일품이다.

그 옆으로 탑비가 있다. 현재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고 비신을 유실됐다. 마을 사람들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비신을 없애 근처 땅에 묻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탑비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거북의 형상이다. 1,000년을 훨씬 넘은 돌거북이 살아 움직일 듯하다. 돌을 떡주무르듯 한 석공의 예술혼을 짐작할 수 있다.

절 마당 한쪽 언덕으로 대나무숲이 있다. 사람 키의 서너배는 됨직한 굵고 긴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긴 겨울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았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02/06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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