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이야기(8)] 다양한 한국개

진돗개와 풍산개 이외에도 체구가 진돗개보다는 크고 풍산개보다는 작았던 강원도 화전민들의 개, 진돗개와 비슷한 크기의 전남 완도의 완돗개, 진돗개보다 약간 크고 날씬한 모습이었던 경남 거제도의 거제개 등의 토종개가 있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이들은 멸종되고 말았다.

우리나라의 토종개는 거의 모두가 특출한 사냥능력으로 유명하였다. 옛 노인들의 전언에 의하면 강원도 화전민 개, 거제개, 완돗개 모두 귀가 서고 꼬리를 치켜 올린 모습으로 진돗개와 흡사했다고 한다.

이들중 거제개는 몸체가 훤칠한 활동적인 모습으로 노루 사냥에 대한 뛰어난 재능이 있어 그 명성이 대단했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아까운 문화유산의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다양한 우리 토종개들이 많이 멸종되었지만 그래도 지금 진돗개, 삽살개 그리고 북한의 풍산개라도 남아 우리나라 개를 대표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으로 생각하고 하루 속히 이들의 보존에 노력해야 한다.

이중 삽살개는 특이한 생김새를 가지고 있다. 귀가 서지 않고 털이 다른 토종개에 비해 매우 긴 장모(長毛)종인데 긴 털이 눈을 덮고 있어 그 모습이 매우 익살스럽다. 키는 진돗개에 비해 더 큰 편이지만 역시 중형의 크기다.

삽살개는 삼국시대의 기록에도 나오는 틀림없는 우리 토종개다. 노인들의 전언에 의하면 삽살개는 주로 남쪽 지방에 분포되어 있었으며 특히 경상도 지방에 많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페기니스 종으로 코가 납작하고 털이 길고 크기가 소형인 개가 옛날 재상가나 부잣집에서 사육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이 견종은 우리 토종개라기 보다는 중국과의 문물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전래된 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말, 갑오경장등 격변기를 거치면서 신분사회가 무너지게 되자 '솟을대문'안에서 보호받던 이 견종도 잡종화했고 급기야는 멸종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나 이 페기니스 종은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으로 전해져 '일본 칭'의 혈통 형성의 근거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속칭 '발발이'의 유전자 속에 혹시 이 견종의 흔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정착된 토종개 혈통으로 보기는 어렵다.

한반도, 특히 육지에서 우리나라의 개들이 멸종의 길을 걷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우리의 농경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개고기 선호 문화와 유난히 외적의 침입이 많았던 민족 수난의 역사다.

멀게는 원나라의 침입,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었고 가깝게는 일제침략, 6ㆍ25 동란 등을 겪었으며 그동안 또 얼마나 많은 보릿고개와 어려운 시절을 겪었는가.

이런 인고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견종이 무사히 보존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많은 견종의 멸종은 개를 잡아먹는 단순한 우리 풍습의 영향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하나의 큰 원인은 일제 침략시의 우리 개 도살이다. 조선총독부는 일본 관동군의 방한복과 방한화를 만들기 위해 도견부(屠犬部)를 설치하고 개가죽 공출령을 내렸다.

대동아전쟁 중에 연간 30만~50만 마리의 우리나라 개들이 도살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 공출령으로 인해 '죽은 개의 피가 시내를 이루었다'고 수렵비화(이상호 著)에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엄청난 수의 개가 희생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육지의 진돗개처럼 생긴 북방견 종류의 토종개는 물론이고 삽살개와 같은 우리의 토종개들이 거의 멸종 지경까지 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특이했던 일은 개를 좋아하는 일본인도 한반도로 건너올 때 귀가 크고 둥글며 밑으로 처진 서양개를 많이 데리고 와서 길렀다고 한다.

이는 자기네가 우리보다 더 개화된 사람임을 과시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 일이다. 어쨌든 이 개들도 이 땅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잡종을 만들어내었을 것이고 결국 우리 개가 멸종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하였을 것이다.

이런 아픈 역사 속에서 우리 토종개들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그래도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이 생명에게 더욱더 관심을 가지고 그 품종의 우수성을 잘 보호ㆍ육성할 때다.

윤희본 한국견협회 회장

입력시간 2001/02/06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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