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흑인문화에 대한 백인들의 어설픈 심취

▣ 블랙 앤 화이트

제임스 토바크 감독은 1998년 작 <투 걸즈>로 싱싱한 재능을 과시한 바 있다. 바람둥이 연예인과 그에게 감쪽같이 속아온 두 여성이 싸우고, 대화하고, 노래하고, 춤추고, 섹스하고, 헤어지며 현대인의 이기적인 사랑과 불안 심리를 드러내는 연극 분위기의 소품이었다.

동서양의 장점만을 모은 모던한 실내 디자인, 집안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확장시키는 카메라의 움직임, 재키 윌슨의 'You don't know me'와 같은 분위기 넘치는 음악. 그리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나타샤 그렉슨 와그너, 헤더 그래함의 연기 앙상블로 기억되는 영화다.

토바크 감독의 1999년 작 <블랙 앤 화이트:Black and White>(18세, 콜럼비아)도 저예산의 아이디어 돋보이는 영화.

백인 청소년의 흑인 문화에 대한 동경과 모방을 취재하는 다큐멘터리를 찍는 한편, 형사와 판사까지 끼어들면서 서로 얽힌 관계 속에 문화 정체성과 성 성체성을 찾아가는가 하면, 부자간의 반목과 화해까지 분방하게 담아내고 있다.

누가 누구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등장인물에다가 흔들리는 카메라 때문에 초반 몰입이 쉽지 않으나 곧 토바크 감독이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가 분명해진다.

뉴욕의 공원 한 구석에서 흑인 건달에게 몸을 주는 두 백인 여학생. 여학생 중 한명인 찰리(비쥬 필립스)는 투자은행 간부의 딸로 "흑인이 되고프다. 흑인 사회를 숭배한다. 인종에서 오는 선입견은 없다. 남자는 오랫동안 원하는 걸 얻었으니 이젠 여자가 요구할 때다.

우릴 귀찮게 하는 것들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흑인 문화에 심취하고 있다"라며 자신을 변명한다. 흑인 구역의 젊은 두목격인 리치는 "부자백인 딸이 내게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 백인들은 왜 우릴 따라하지? 옷 차림에 랩 송에 몸까지 내던지며. 흑인은 탈색하고 백인은 염색하느라 난리"라고 불평한다.

"미국 전역에서 발생하는 문화 현상을 찍고 있다"는 다큐멘터리 작가 샘(부룩 쉴즈)과 테리(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부부는 찰리와 리치, 그리고 둘의 주변 친구에게 접근하여 이들의 생각을 담으려한다. 그 과정에서 테리는 "아닌 척하는 것 지겨워. 난 호모야"라며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내고 아내에게 결별을 선언한다.

한편 백인 형사 마크(벤 스틸러)는 라이더 농구 팀의 흑인 선수 딘에게 5만불을 제안하며 경기에 져달라고 유혹한다. 딘은 이 계략에 넘어가고, 마크는 자신을 버리고 딘을 택했던 옛 애인 그레타(클라우디아 쉬퍼)에게 복수하는 기분을 맛본다.

그러나 딘은 살해되고, 그레타는 마크 타이슨(마크 타이슨)을 새로운 애인으로 유혹한다.

흑인 문화를 흉내내는 수준을 넘어서 기성세대에 대한 반항을 흑인 문화 탐닉으로 대신하는 백인 부유층 자제들. 백인 아이들의 배부른 투항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이를 악용하고 즐기는 밑바닥 흑인 청년들.

자식의 방황에 적대감으로 반응하는 부유한 백인 부모들. 부부 사이를 가르는 동성에 대한 자각. 물건 큰 흑인에게 가버린 애인을 되돌리기위해 야비한 방법을 썼다가 다시 외톨이가 되는 왜소한 백인 경찰.

숱한 등장인물이 빚어내는 사연을 종횡무진하다가 영화는 6개월 뒤의 근황을 모자이크식으로 화면 분할하며 끝을 맺는다. 그들은 또다른 파트너를 찾아내 사랑을 이어가고 있다고 믿고 싶어하는 것 같다.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02/1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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