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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처 스타열전(48)] 이네트 박규헌사장(上)

[벤처 스타열전(48)] 이네트 박규헌사장(上)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을 하고서도 시간을 내지못해 끙끙 앓았단다. 시간을 잡았다간 다시 연기하고, 그래서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을 놓지 못할 정도로 박규헌 이네트 사장은 바빴다.

인터뷰중에도 옆방에선 "사장님이 빨리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며 기웃거리는데, 정작 당사자는 "이틀이나 잠을 못 잤더니 머리가 영."이라며 미안한 표정이다. 까다로운 질문에 시원시원하게 대답해주지 못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했으리라.

처음엔 입을 떼기가 저렇게 어려울까 싶었다. 신중하다고 하기엔 너무 더디다.

그러나 박 사장에게 그런 기질이 없었다면? 전자상거래의 초창기였던 1996년에 e비즈니스 솔루션 분야에 뛰어들어 지금의 이네트를 일궈내지 못했을 것 같다.

주변에서 이네트의 성공비결을 '한우물 파는 그의 뚝심'을 꼽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언뜻 보기엔 늦는 것 같지만 결과적으론 빠른 거북이(?)처럼 고집스런 박 사장이 있기에 이네트의 성공이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포브스'지가 인정한 솔루션 개발업체

이네트는 전자상거래용 소프트웨어 시장을 선도하는 솔루션업체다. 사무실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BtoAll'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네트는 e비즈니스의 모든 솔루션을 개발, 온라인업체에 공급한다. 언제 어디서든 사이버상에서 전방위 전자상거래(BtoAll)를 구현시켜주는 게 이네트의 강점이다.

이네트는 전자상거래의 기본틀인 인터넷 쇼핑몰(B2C) 구축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현대증권의 추정에 따르면 점유율 35,4%. 인터넷 혁명으로 불린 쇼핑몰 시장에서 오라클과 같은 막강한 다국적 솔루션업체와 경쟁하며 얻어낸 결과다. 2000년 매출 184억원에 20억원의 순이익. 그래도 미흡하다고 가슴을 치는 박 사장이다.

1998년에 출시된 이네트의 첫 야심작 '커머스21'은 인터파크, 롯데인터넷백화점, 골드뱅크, 정보통신부 우체국 전자상거래 시스템 등 100여곳 이상의 인터넷 쇼핑몰에서 기본 툴(tool)로 사용되고 있다.

B2C 솔루션으로 시작됐지만 이제는 B2B와 eCRM(고객관리)을 포괄하는 종합 솔루션으로 확장되는 중이다.

세계적인 경제주간지 포브스가 이네트의 경쟁력을 인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네트는 지난해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20대 유망 벤처에 이름이 올랐고, 지난 1월22일자엔 '어려움에 맞서'(Against the Odds)라는 특집기사로 다뤄졌다.

성공비결이 뭘까? 박 사장은 완전히 달라진 기업환경을 가장 먼저 들었다. "e비즈니스 사회에서는 새로운 기술, 새로운 경쟁력이 기업의 가치를 좌우합니다. 평가의 잣대가 바뀐 거지요. 변화의 속도도 엄청 빨라졌어요. e비즈니스의 변화에 재빨리 대응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지요."


데이콤서 인터넷에 대한 확신 얻어

박 사장은 전형적인 386세대다. 대학(서울대 상대) 시절에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운동권에서 젊음을 살랐다. 대학 2학년때 시위를 주도하다 전경차량에 실려 바로 군대로 끌려가기도 했다.

그리고 휴전선의 철책 아래서 북녘땅을 바라보며 3년을 보냈다. 정권이 바뀌면서 나온 사면조치로 1991년에 간신히 대학을 졸업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곳은 데이콤의 신규사업개발팀.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선정해 시장조사를 한뒤 인큐베이션(육성)하고,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일을 맡았다. "데이콤 근무 5년의 경험이 이네트를 창업하고 끌어가는데 큰 자산이 됐어요.

특히 IT(정보통신) 분야에서 새 프로젝트를 계속 개발하다보니까 해외출장도 잦았고, 누구보다 빨리 인터넷의 초창기에 사업 가능성을 볼 수 있었지요. 인터넷이 우리 사회에 혁명적 변화를 몰고와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게 가장 큰 소득이었어요."

창업까지는 많은 고민을 했지만 결정적으로 세상을 보는 자신의 눈을 믿었다고 했다.

"명색이 국제경제학을 전공했는데 한두가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지 않겠어요.1980년대 말까지 일본을 배워야 한다던 미국이 IT와 벤처로 그 흐름을 바꾸었는데 원리는 단순합니다.

굴뚝산업을 구조조정하면서 나온 잉여자산을 IT와 벤처로 돌렸고 경제가 선순환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거지요. 미국은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IT와 벤처를 택한 셈인데 우리도 그 길 밖에 없다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바닥을 다지면서 길목을 지키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었지요."


창업초기 어려움 낙천적 성격으로 극복

그러나 기회는 곧 올 것 같으면서도 쉽게 오지 않았다. 1996년 8월 박 사장은 우리 사주를 팔아모은 돈과 주변의 도움으로 이네트를 세웠으나 인터넷 혁명은 불씨조차 보이지 않았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앞서 가려면 당연히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 심했다. 인터넷 초기에 솔루션 개발에 나설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았고, 전자상거래 개념도 명확하지 않아 스스로 비즈니스 기획을 해야 했다.

창업한 뒤 2년간은 기술용역(인터넷 쇼핑몰 구축)으로 수익을 올리랴, 전자상거래 솔루션 개발하랴, 이중고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어려움은 뭐."라고 태연하다. 이유가 걸작이다. "원래 낙천적이라 어려움을 어려움으로 잘 인식하지 않습니다. 군대에 강제로 끌려갔을 때도 크게 절망하지 않았어요. 적응도 잘했고, 보람도 느꼈어요. 어릴 때부터 호사스럽게 자라지 않아 남들보다 어려움을 느끼는 강도가 센 것 같네요."

그러면서도 어려운 점 한가지는 들었다. "직원 월급 줄 돈 구하는 것은 의당 해야 할 일이지만 서울상대 나와서 다들 번듯한 직장생활하고 있는데 구멍가게를 하고 있으니 주변에서 얼마나 말이 많았겠어요. 그런 말과 시선이 힘들었어요. 솔직히 상대 출신 전문경영자는 많아도 사업가는 별로 없잖아요?"

더욱이 보통학생도 아니고 운동권 학생에서 벤처사업가로 변신한데 대해 박 사장은 "학교 다닐 때는 사회운동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했으나 이제는 인터넷을 그 매개로 선택했다"고 피해갔다. 그 때 고민은 인터넷의 어떤 분야를 선택할 것이냐는 점이었다고 한다.

인터넷 포탈이냐, 커뮤니티냐, 솔루션이냐를 저울질하다가 장기적으로 전자상거래가 세상을 바꾸는 중추가 될 것이라고 판단해 솔루션을 선택했다. 솔루션을 개발하는 게 산업의 인프라 구축에도 기여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1997년 말 IMF 위기는 이네트를 궁지로 몰았다. 회사를 서울시 창업보육센터로 옮기고 정부의 정보화촉진기금도 타내 연명했다. 가까스로 1998년 10월 첫 작품인 '커머스21'을 출시했다.

그리고 각 지방의 특산물과 도시 소비자를 이어주는 우체국 전자상거래 시스템에 '커머스 21'이 채택되면서 이네트는 기반을 잡기 시작했다. <계속>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jinhlee@hk.co.kr

입력시간 2001/02/13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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