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길들이기 또는 내 편 만들기

가히 '언론사 세무조사 정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세무조사와 공정거래위의 언론사 조사는 야당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언론장악을 위한 현정부의 정치적 의도가 있든, 정부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조세정의 구현을 위한 통상적 조사이든, DJ정부와 언론사 간의 관계에 일대 분수령이 될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사가 갖는 정치적 함의는 매우 크다.


언론사 세무조사 정치공방 가열

한나라당은 이번 조사를 통해 정부ㆍ여당이 언론사들의 약점을 틀어쥘 경우 그렇지 않아도 불리했던 대국민 홍보전에서, 특히 앞으로 다가올 대선정국에서 더욱 불리한 상황에 처한다고 보고 조사중단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이번 주간 한나라당의 대여 공세는 바로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주말의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 이어 이번 주의 경제분야 및 사회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도 언론사 조사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대정부 질문에서 "연 매출액 100억원 이상의 일반기업 중 법인세 조사시효인 5년에 묶여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은 전체의 3%에 불과하다"면서 "23개 언론사를 일제히 조사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나며 전체 언론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의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유례 없이 국세청과 공정위 조사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것도 야당의 이같은 의구심을 부채질하고 있다.

일부 야당 인사들은 이번 조사를 여권 정권재창출 프로그램의 하나로 이해하기도 한다. 내년 말로 다가 온 대선에 앞서 정권이 '언론 길들이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내년 대선 후로 연기하자"고 요구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부ㆍ여당은 "세무조사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언론사 세무조사의 시기가 지금이 된 것은 1994년에 실시했기 때문에 5년마다 할 경우 1999년에 했어야 하나 그해 연초부터 옷로비 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엄두를 못냈다는 것이 정부측 해명이다.

또 전언론사에 대한 일제 조사도 현재 우리 언론사의 특수성 때문에 불가피하다는 설명이다. 현재 시중에서 불법 상속이나 부당 내부거래 등의 의혹을 사고 있는 주요 언론사들만 세무조사를 할 경우 표적조사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언론사를 제외하면 특혜시비나 권언유착 의혹 등 새로운 논란을 부를 우려가 높아 결국 전체 언론사를 대상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나라당이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고, 일부 언론사들이 이를 크게 보도해 간접적으로 압박을 가하고 있는데도 정부가 조사를 강행하는 데는 여론의 지지가 한몫을 하고 있다

몇몇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반 국민의 대다수가 언론사의 세무조사를 지지하고 있고 진보적인 시민단체도 지지하고 있다. 전국언론노조가 기자들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75%가 '언론개혁과 조세평등 차원에서 언론사 세무조사에 찬성한다'는 응답을 했다.

그러나 모든 조사에서 조사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할 소지를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절대다수였다.


YS. 노무현 장관 발언 파문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방일 중 도쿄 주재 언론사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1994년의 언론사 세무조사 관련 언급도 언론사 세무조사 공방에 기름을 부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94년 세무조사 당시 사주들의 비리를 대거 포착했으며 이를 공개했다면 언론사 존립 자체에 큰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즉각 성명을 내고 "지난 정권이 언론사 세무조사를 정치적으로 악용했음이 드러났다"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당시 국무총리였던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고 지금은 한나라당 언론장악저지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는 박관용 의원에게 경위설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김 전 대통령은 11일 귀국, "언론사의 저항을 촉구하기 위해 한 말이 와전됐다"고 해명했지만 그의 말은 언론사 세무조사 공방에서 야당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무현 해양수산부장관의 '언론과의 전쟁불사' 발언도 언론사 세무조사 문제를 언급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노 장관은 2월7일 출입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 자리에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화제로 얘기하는 도중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의 언론사 세무조사 중단요구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문제의 발언을 했다.

노 장관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언론이 계속 문제삼자 "발언의 진의를 왜곡하고 있다"면서 '조폭(組暴)적인 언론' 등의 용어를 구사하며 언론과의 한판 싸움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은 노 장관의 사퇴를 강력히 촉구하고 나서 파문이 쉬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이계성 정치부 차장

입력시간 2001/02/13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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