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미래가치에 대한 지나친 믿음

벤처업계 인사들에게 존경하는 벤처인을 꼽으라면 놀랄만큼 똑같은 답변이 나온다. 정문술(미래산업), 이민화(메디슨),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 염진섭(야후코리아)의 틀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네 사람은 각기 나름의 특색이 있다. 그중에서도 정문술 전 사장과 이민화 회장은 한국 벤처의 두 거목답게 입신과정과 성공비결, 경영 및 벤처관에서 서로 각을 세우는 편이다. 또 따르는 후배 벤처인도 다르다.

정 전 사장은 40대에 시작해 고생 끝에 낙을 찾은 늦깎이 벤처인이었으나 이 회장은 KAIST에 몸담고 있으면서 사업을 구상했고 순탄한 길을 달려왔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의 경영 및 벤처관은 판이하다.

정 전 사장은 끊임없는 기술개발과 인화, 열린 마음을 강조한다. 누구에게든지 "나를 만나고 싶다면 언제든지 오라"는 수더분한 스타일이다.

이에 반해 이 회장은 화려한 귀족형이다. 벤처의 전도사로 항상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기 때문인지 '바쁘다'는 말 한마디로 '주간한국'에 연재중인 벤처스타열전 취재마저 뿌리쳤다.

벤처를 이야기할 때도 현실에 뿌리를 둔 비전보다는 미래가치에 바탕을 둔 꿈을, 환상을 제시하곤 한다. 지난해 한 TV에서 개최한 토론회에서 그는 벤처측 패널리스트로 나와 "21세기는 미래가치를 창조하는 벤처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큰소리쳤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정 전 사장은 "아름다운 퇴장"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 회장도 곧 물러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메디슨의 유동성 위기가 직접적인 계기다.

"벤처열풍 당시 유가증권의 평가차익만을 믿고 차입금 규모를 과소평가해 유동성 문제를 일으키고 주주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게 사의표명의 변이다. 화려한 벤처관에 따라 투자한 벤처기업에 대한 지나친 환상이 가져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메디슨은 올해에도 기업어음을 포함, 600억원 이상의 부채를 갚아야 하니 유동성 문제는 아직 내연중이다.

미래가치에 대한 지나친 믿음과 그에 따른 투자, 자금 흐름에 대한 판단미스 등 겉만 화려한 이민화식 경영법은 그를 따랐던 후발 벤처주자에게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2/20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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