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금융·기업개혁 몇점인가

봄바람이 불기 시작한다는 우수(雨水ㆍ18일)를 지나 김대중 정부가 출범 3년을 맞는 주일이다. 정치적 의미도 크지만 2월 말까지 매듭짓기로 한 4대 구조개혁의 성적표가 나오는 시점이기도 하다.

특히 김 대통령은 개혁의 성과물을 들고 25일께 '국민과의 대화'를 가질 예정이어서 정책 당국자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 긴장돼 있다.

국내외적으로 의미있는 이벤트도 줄줄이 대기해있다. 이미 19일부터 세계적 신용평가기관인 피치IBCA의 국가신용등급팀이 경제부처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연구기관과 연례협의를 진행중이며 금명간 무디스의 은행평가팀이 입국한다.

산업은행의 회사채 신속인수제도를 줄곧 비판해온 이들 기관이 금융 및 기업개혁의 진척도에 대해 어떤 코멘트를 하느냐에 따라 우리 경제의 대외신인도, 나아가 국가신용등급의 상향조정 여부가 결정된다.

21일엔 진념 재경부장관 등 금융정책 고위 당국자, 은행장, 증권ㆍ투신 사장단 등 금융시장 최고경영자 200여명이 한자리에 모인다.

분당의 삼성생명 휴먼센터에서 열리는 '금융기관 최고경영자 연찬회'는 참석자의 화려한 면면 때문에 금융 구조조정의 성과와 과제를 점검한다는 취지를 넘어 '금융 엘리트의 페스티벌'같은 인상을 풍긴다.

또 이들의 면면의 변화에서 우리 금융계가 지난 1년간 얼마나 격렬한 변화를 겪었는지도 읽을 수 있다. 23일엔 진념 장관이 경제총수로서 개혁성과를 정리하고 향후 과제를 설정하는 기자회견도 갖는다.


실업자 100만명 시대 돌입

현실적인 관심은 역시 대우차다. 1,700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정리해고도 유례없지만 해고통지서가 우편으로 가가호호 배달되는 장면은 낯설고 서늘하기 짝이 없다.

인력감축 등 구조조정이 예정대로 진척되지 않으면 자멸 밖에 없다는 회사측의 인식이나, 무작정 쫓겨나면 갈 곳도 없다는 노조측의 반발 모두 절박하다. 하지만 노조가 버텨서 될 일 같았으면 이 지경까지 왔을 리 없다.

노동개혁의 성과에 대한 외부의 의구심도 여전한 만큼 이제는 모두 차선, 그것도 안되면 차차선을 찾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마침내 '실업자 100만명 시대'에 돌입했다. 동절기라는 계절적 요인에다 각 부문의 구조조정 여파가 본격화한 탓이다. 정부는 특히 청년실업과 40~50대 실직을 심각하게 인식, 별도 대책을 마련중인데 추경예산 편성 필요성이 제기될 가능성도 높다.

한국부동산신탁과 코레트신탁 처리문제가 채권은행단의 제몫 챙기기 때문에 원점을 맴돌아 투자자의 피해가 날로 커지고 있다. 대주주(한국감정원과 자산관리공사)와 채권은행, 삼성중공업 등 시공사도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만 수십년간 모아온 쌈짓돈을 한순간에 날리게된 서민의 사정도 한번쯤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12월 결산법인의 주총이 이어진다. 하지만 회계법인이 대우사건 이후 감사기준을 대폭 강화, 기업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의견 거절', '부적정 의견'이 지난해 3%대에서 1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기업투명성 강화와 상시퇴출 시스템의 정착에 한층 가속도가 붙게 됐지만 그동안 대부분의 기업이 관행적으로 해왔던 막대한 분식회계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숙제로 등장했다.

이와 관련, 과감하게 사면을 주장했던 금감위 모 국장이 강등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해 당분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겠다고 나설 사람을 찾기는 힘들 것 같다.


바닥 다지는 주가, 매수 생각해 볼때

주식시장은 지난 주말 나스닥 시장의 폭락으로 방향성을 못잡고 있다.

광통신 장비업체인 노텔의 실적이 예상을 밑돌아 기술주에 대한 투매현상이 벌어진데다 1월중 미국 생산자 물가지수 상승률이 예상치(0.3%)의 4배 가까운 1.1%에 달해 FRB가 추가로 금리를 내리더라도 그 폭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국내에서도 1월 랠리를 이끌어온 유동성 장세의 힘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다. 620~630대를 넘어서려면 유동성이 보강돼야 하지만 여전히 돈은 무위험 자산에만 몰린다. 외국인을 제외하곤 매수주체도 뚜렷하지 않다.

하지만 바닥을 누차 다져가고 있으니 조정기간을 이용, 매수를 늘려가는 것도 생각해볼 때다.

금융시장의 관심은 국고채 금리에 쏠려있다. 지난 주 한때 4%대까지 진입했던 국고채 금리는 전철환 한은총재의 '국고채 시장 과열'경고 발언으로 5.3%대까지 폭등했지만 시장에 금리인하 요인이 이 발언만으로 기가 꺾일지는 미지수다.

자위조치를 앞세운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폭격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유혈 보복극으로 촉발된 중동의 긴장의 한층 가중시켜 국제유가 추세가 극히 불안하다. 유가가 배럴당 1달러 오르면 당장 10억 달러의 무역수지 적자요인이 발생하고 성장률도 0.1% 하락한다.

이유식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1/02/20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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