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대통령과 역사

어느 대통령이건 역사와 언론의 굴레속에 산다. 또한 많은 대통령들이 역사 자체요, 역사가다. 때로는 역사를, 언론을 들먹이며 자신을 방어 한다. 이용하기도 한다.

3월1일 열린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 시청률은 지금까지 있었던 세 차례중에서 가장 낮았다. 평균 26.6%였고, 광주 37%, 부산 20.3% 대전 18.5%였다. 왜 그랬을까.

김 대통령은 대화 중간에 나온 "언론사 세무조사가 언론 길들이기 아니냐"는 질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나는 수십년 동안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고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임기가 2년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역사에서 평가 받고자하는 입장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분명 대통령이란 자리가 역사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자리임을 알고 있다. 그래선지 그가 쓴 '옥중 서신'에 차입을 부탁한 책에는 역사 책이 대부분이다.

어느 역사 책에 건전 언론,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세무조사가 관계가 있다고 써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 전대통령이 퇴임 1개월이 지난 지금 사면문제 때문에 의회 청문회에 시달리고 있다.

'가장 쭈그러진 전직 대통령'이란 별명이 더 보태진 클린턴은 미국의 대통령 연구 역사가들로부터 역대 대통령에 관해 가장 많이 알고 책을 읽는 대통령으로 평가받았다.

퇴임후 사면의혹과 백악관 집기 및 기념품 챙기기 스캔들에 휩싸인 그는 퇴임 1개월 동안 뉴욕 타임스 1면에 18번이나 올랐다. 새 대통령 조지 부시 대통령이 14번 오른 것에 비하면 그가 더 인기(?)를 누린 셈이다.

이에 대해 미국의 대통령 역사 연구가인 마이클 베스로스(존슨 백악관 테이프 1963~64년, '케네디와 루즈벨트'의 저자)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클린턴은 미국 대통령 역사에서 무엇을 읽었냐는 것이다. 베스로스는 클린턴이 르윈스키 스캔들에서 헤어난 것처럼 이번 사면 스캔들에서 곧 빠져나올 것이라 생각하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르윈스키 스캔들은 침체된 경제를 회복시킨 업적으로 헤어났을지라도 이번 사면과 집기 챙기기는 다르다는 주장이다.

미국에는 대통령 취임 20년 후에는 그가 쓴 일기, 편지, 공문서, 대화록, 녹음 등을 공개한다. 역사가들의 심판을 받기 위한 것이다. 문서 공개를 계기로 그동안 무능한 대통령으로 평가받았던 아이젠하워 전대통령은 지적이고 날카로운 대통령이었음이 1970년대에 밝혀지기도 했다.

그는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에도 불구하고 국방비를 줄이고, 균형 예산의 기틀을 잡고 인플레를 억제했다는 것이다.

트루먼 전 대통령이 1951년 맥아더를 해임했을 때 많은 의원들이 "술에 취해 내린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이 해임 결정으로 민주당이 대선에서 공화당에 졌다는 것.

그러나 역사는 트루먼의 문민우위 정책과 대소 봉쇄정책이 결국 냉전을 해소시킬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는 게 베스로스의 분석이다. 그는 클린턴이 스스로 일군 경제회복의 업적이 스캔들을 지워버릴 것으로 오산하지 말기를 바랬다.

닉슨 전대통령이 중국과의 수교 업적을 워터게이트 사건을 덮으려 했지만 그럴 수 없듯이 클린턴의 스캔들은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42대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가장 비도덕적 정부를 만들었음을 시인해야 한다"고 했다. 역사를 멋대로 해석해 이용 말라는 충고다.

우리 나라의 대통령들도 역사를 무척 좋아한다. 그건 많이 이용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장을 쓰기도 했다.

그는 "일제시대의 역사 바로 세우기가 민족적 정통성을 회복하고, 민족적 자존심을 찾기 위한 것이라면 해방이후의 민주화 및 반 민주적 사건에 대한 재구성은 한국 현대사를 민주화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작업이라고 썼다. 그리고 두 전대통령을 구속했다.

구속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바뀐 정권의 역사적 시각에서 과거 정권의 정통성을 시비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역사를 평가의 대상이지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법정 최후 진술에서 밝혔다. 역사를 만들어가려는 대통령이라면 제발 역사를 악용 하거나 오용하지 말아야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3/0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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