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인간 갈릴레이의 내면 들여다보기

■ 갈릴레오의 딸(GALILEO'S DAUGHTER)

서로마의 멸망 이후 천년간 이어진 유럽의 중세 시기를 역사가들은 흔히 '암흑의 시대'라고 말한다.

'십자군', '흑사병' 등 잦은 전쟁과 질병으로 삶 보다 죽음이 더 일상화했던 그 시절, 인류에게는 평화와 안식을 구하는 것만이 최고 선이었다. 그 중심에는 신과 자연만이 있을 뿐이었다. '신성'은 있으되 '인간'은 없었던 시기였다.

아인슈타인이 '현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칭했던 갈릴레오 갈릴레이가(1564~ 1642년) 활동하던 16,17세기는 '우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라는 발견을 둘러싸고 가톨릭과 과학이 한창 갈등하던 시기다.

당시 유럽은 야만의 시대를 벗어나 존재론으로부터 인식론으로 세계관의 대회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관과 성경 말씀이 초자아로 작동했으며 금기가 지식의 범위를 한정짓고, 관념이 지식의 방법이 됐다.

오류의 지적은 권위에 대한 훼손이요 도전으로 간주됐고, 실험을 통해 증명된 사실에 대한 신뢰는 불온한 태도로 치부됐었다. 이것은 우주 중심론에 대한 향수 또는 불안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런 어둠의 시대에 갈릴레오는 이단자요 해체주의자일 수 밖에 없었다.

전 뉴욕타임스 과학부 기자인 데이바 소벨이 쓴 '갈릴레오의 딸(GALILEO'S DAUGHTER)'<생각의 나무 펴냄>은 격조 높은 한 편의 역사서이다. 맹목적인 종교적 권위와 고정 관념에 매여 있는 중세 유럽의 견고한 틀에 맞선 한 천재 과학자 갈릴레이의 역경과 업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 가난한 귀족 출신인 갈릴레이가 그 숨막히는 시대에서 어떻게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켜갈 수 있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이 책이 관심을 끄는 이유는 갈릴레이가 가장 신뢰했으며, 가장 심적으로 의지했던 큰 딸 마리아 첼레스테와의 교감을 담은 124통의 편지를 처음 소개했다는 점이다. 이 편지를 통해 우리는 '인간 갈릴레이'의 감추진 면모도 함께 살펴 볼 수 있다.

이 책은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갈릴레이가 종교의 권위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갈릴레이는 '낙하 물체의 등가속운동'을 주장하는 등 당시의 절대적 신념 중 하나였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반기를 들었지만, 변함없는 가톨릭 신자였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또한 그가 궁정 수학자로 임명되기 위해 기하 컴파스에 관한 소책자를 어린 돈 코시모에게 보내 환심을 샀던 일화도 들어 있다.

또한 갈릴레이가 베네치아 출신의 14세 연하 여인 마리아 감바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낳았으면서도 당시의 사회적 위치를 고려해 끝까지 혼인신고를 안 했던 내용도 공개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무엇보다 독자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사생아로 태어나 수녀원에서 34년의 짧은 생애를 마쳐야 했던 갈릴레이의 큰딸 마리아 첼레스테와 갈릴레이가 나눈 부녀간의 진솔한 서신 대화 내용이다.

수녀와 이단 과학자, 겉으로 보면 화해할 수 없는 극단적인 관계였던 이들은 서로에 대한 믿음과 존경, 사랑으로 400년의 세월을 뛰어 넘는 따뜻한 정감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06 15:30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