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신중현과 엽전들

40, 50대의 중년들은 5척 단구에 벙거지를 눌러쓰고 키 만큼이나 긴 전기기타를 휘둘러대던 신중현을 기억할 것이다. 쉰 듯한 목소리에 잘생기지못한 외모, 거기에 각설이 타령조로 불러대는 '미인'은 충격 자체였다.

생소하지만 단순반복적 노랫말과 경쾌하고 친근한 선율은 듣는 이의 혼을 빼앗아버렸다. 1964년 최초의 록밴드 '에드훠'부터 이어지는 그의 음악여정은 한국 록에 관한 한 모든 형식과 내용의 시작이자 정점이다.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음반번호JLS120891, 1974년 8월25일)은 수많은 그의 명반중 결정체라 할만 하다. 초기 '엽전들'은 5인조였지만 튜닝도 못해보고 신중현(기타), 이남이(베이스), 김호식(드럼)의 3인조 밴드로 재편성된다.

3인조 록밴드는 국내 최초의 시도였다. 마니아들 사이에 100만원 이상을 홋가하는 '엽전들'의 초판은 바로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구사했던 중기 멤버들의 녹음버전이다.

하지만 타이틀곡도 아닌 '미인'의 러닝타임이 4분30초를 넘는 등 대부분 곡이 롱버전으로 구성되자 1973년 석유파동으로 휘청대는 음반사에서 "팔리지 않을 음반은 제작할 수 없다"고 하여 1,000여장 정도의 비매판 만을 겨우 찍었다.

다시 권용남으로 드러머 교체. 이렇게 신중현, 이남이, 권용남으로 구성된 라인업이 후기 '엽전들'로 우리가 즐겨들었던 '미인'은 바로 이들의 노래가락이다.

초판과 데뷔판 모두 한국적 록사운드를 창조했다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지만 데뷔판은 하드록 풍으로 다르게 연주되었다.

또한 데뷔판은 '미인'이 타이틀곡으로 장식되어 있지만 초판 자켓엔 눈을 씻고도 찾을 수가 없고 2면의 3번째 곡으로 겨우 끼어들어있다.

3분1초로 줄여서 발매한 '미인'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100만여장의 판매기록을 세우며 수렁에 빠진 음반회사의 효자음반으로 등극한다. 데뷔판의 또다른 기록은 '미인'을 포함, 10곡의 수록곡중 7곡이 퇴폐, 저속, 방송부적합을 이유로 금지 명찰을 달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확인된 1집 음반은 초ㆍ데뷔판 이외에 금지해제후 출반한 1987년 버전, 발매이유가 아리송한 1974년 10월12일 비매품 버전, 그리고 1994년 7월1일에 디지털리마스터링된 CD까지 모두 5가지나 된다.

밤무대 출연업소였던 힐탑호텔 나이트클럽에서 6개월간의 합숙 앨범작업. 트로트 일색이던 당시 가요계에 '미인'에 대한 반응은 상상을 넘어선다. 국민학생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인층까지 계층을 초월해 사랑받는 '3,000만의 주제가'로 사랑을 받았다.

'한번 보고 두번 보고 자꾸만 보고싶네..' 각설이 타령조의 지독단순한 노랫말과 가락의 반복은 '우리 고유의 가락을 살린 독특한 스타일의 록'이란 찬사와 '각설이 타령을 흉내낸 퇴폐가요'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 찬가의 작곡 청탁을 거부해 괴씸죄에 걸린 신중현. 결정적인 빌미는 '한번 하고 두번 하고 자꾸만 하고싶네'라고 가사를 섹스행위에 빗대어 개사하여 부르는 짓궂은 사람과 정권연장의 의미로 대학가에서 널리 유행한데 있다. 결국 신중현은 '대마초 왕초'라는 주홍글씨를 달고만다.

'미인'의 대히트는 실험적인 곡들로 무장된 이 위대한 명반의 진정한 평가에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수록곡중 데뷔판에만 있는 싸이키델릭 연주곡 '떠오르는 태양'. 이남이의 베이스 기타 선율은 태양처럼 빛난다.

최대 화두는 '나는 너를 사랑해'다. 구슬픈 상여가락에 제목을 거꾸로 불러 '해랑사를 너는나', 그리고 '나는 너를 좋아해'를 거꾸로 부른 '해아좋를 너는나'를 반복하는 것이 노랫말의 전부.

세상에 만연된 거짓사랑에 넌덜머리가 나서일까? 신중현식 사랑의 표현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멜로디가 구슬퍼 차라리 '세상엔 사랑이 없다'고 질러대는 절규로 다가온다. 한번 자세히 들어보시길.

더 추천하고 싶은 곡은 전통음악과 접목한 '생각해'와 '저 여인', 그리고 싸이키델릭한 '설레임'이다. 1집 금지처분후 애국적 내용의 가요로만 출시한 2집(1975년 10월1일 출반-발매금지처분)과 경음악 1(1974년 9월), 2집(1975년 7월)을 더 발매되었다.

전통음악과 록을 접목하여 한국적 싸이키델릭 록을 꽃피웠다는 사실만으로 대중음악사에 빛나는 업적을 남긴 신중현. 만약 유신 군사정권에 의해 사지절단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빛깔의 꽃봉우리로 대중음악이 변해있을까?

최규성 가요음반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03/06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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