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유통업 봄기운에 한가닥 희망

미국 및 일본발 한파로 한국의 3월에 스산한 기운이 감돈다. 4대 구조개혁의 골격 완성, 정부의 증시부양 의지와 자금시장 안정대책 강화, 사상 초유의 저금리에 따른 부동자금 재편 가속화, 국가신용등급의 상향조정 기대감 등 우리 경제에 군불을 지필 국내의 땔감은 많지만 외풍이 워낙 강하다 보니 언 발에 오줌누기 격이다.

당장 3월 말 결산을 맞는 일본 은행의 대출금 회수와 주식환매로부터 시작될 '3월 금융대란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2월 말 다시 제로금리 정책으로 선회했지만 일본 주가는 16년전 수준으로 떨어졌고 실업률은 5%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피치IBCA 등 신용평가기관들은 "일본이 재정건전도를 향상시킬 전략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부채가 GDP의 135%에 달한다"며 장기 국가신용등급을 잇달아 낮췄다.


안팎으로 시달리는 한국경제

문제는 이같은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 국면이 우리 경제의 뒷덜미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대우증권은 이와 관련,"기업의 주가에 관한 한 미국 경제의 영향력이 크지만 실적과 수익성 등 펀더멘털은 일본 경제의 영향을 더 받고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일본의 성장둔화가 일본 기업의 수출의존도를 높이고 엔화 약세를 유발하면서 경쟁관계에 있는 한국과 동남아의 수출경쟁력을 크게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디플레이션 국면의 악순환을 타개하기 위해 조만간 경기부양대책을 발표할 예정이지만 얼어붙은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은 최근 '국민과의 대화'에서 하반기 경기회복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지만 대부분의 경제주체들은 머리만 갸우뚱할 뿐이다.

정부 주도의 구조개혁 드라이브에 의해 낡은 제도와 관행이 파괴되고 대부분의 경제주체들이 엄청난 심적ㆍ물적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과거의 틀을 대신할 창조적 수익모델과 새로운 보상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까닭이다.

앨런 그린스펀 미 FRB의장이 "20일 열리는 공개시장위원회 이전에 금리를 추가로 인하할 계획이 없다"고 밝힘에 따라 나스닥 지수는 2100대까지 추락했다. 중순께 발표될 미국 고용동향이 주가의 추이를 결정할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이나 실적악화에 대한 실망감이 워낙 팽배해 상승기대감보다 오히려 2000선 붕괴여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우리 증시도 8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의 금리 추가인하 여부에 따라 한차례 출렁이겠지만 당분간 상승모멘텀을 찾기는 힘들 것 같다. 대통령의 낙관론이 강할수록 국민이 느끼는 배신감은 크다.

정부는 고려산업개발의 최종부도에 대해 '상시퇴출 시스템'혹은 '상시 구조조정 시스템'이 적용된 첫 사례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현대건설 동아건설 한국부동산신탁 대우차 등의 '대어급 문제아'들의 처리가 답보를 거듭하며 경제의 주름살을 깊게하는 상황에서 불거진 고려산업개발 부도는 조짐이 안좋다. 맞을 매는 빨리 맞는게 분명 낫다.

그러나 문제는 누가 매를 맞느냐, 얼마나 엄격한 규율이 적용되느냐는 것이다. 건설업 전체의 부실을 이런저런 이유로 방치해온 정부가 실효성있는 대책을 내놓으리라고 기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자칫 현대건설 등 타업체로 충격이 확산될 가능성도 적지않다.


주총시즌, 재벌 시민단체 벌써부터 신경전

바야흐로 주총 시즌이다. 정부 주도 금융지주회사에 편입되는 한빛 평화 경남 광주 등 4개 은행이 5일 주총을 열어 정관개정 등 준비를 마쳤고 하나 한미 국민 조흥은행 등도 내주까지 주총을 갖는다.

하지만 어느 때보다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는 회계법인과의 마찰로 상당수 기업은 주총일정을 잡지못한 채 읍소와 협박을 병행하고 있다.

최대 관심은 9일 열리는 삼성전자 주총이다. 벌써부터 참여연대가 비상임이사로 추천한 전성철 변호사를 삼성전자가 거부하고, 참여연대는 이학수 삼성구조조정본부장의 이사제외를 요구하는 등 양측의 신경전이 날카롭다. 또 이건희 회장의 장남 재용씨의 경영일선 진출문제를 놓고도 한바탕 설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정부가 은근히 압박한 것으로 알려진 기업은행과 외환은행의 합병움직임은 양측 노조가 서로를 부실은행이라고 동네방네 떠드는 해프닝까지 초래하며 일단 물밑으로 잠복했다.

하지만 김 대통령이 은행합병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연구기관에서도 은행권이 4~5개의 대형은행으로 재편돼야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아 계기만 주어지면 언제든 합병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당초 기대됐던 김 대통령의 방미 세일즈외교는 때아니게 돌출한 NMD 논란으로 빛이 바랬다.

하지만 호르스트 쾰러 IMF총재, 제임스 울펜손 세계은행 총재 등과의 만남은 4월로 예정된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의 한국평가에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자동차와 유통업을 중심으로 그래도 봄기운이 돈다고 한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라고 하지만 희망은 언제나 아름답다.

이유식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1/03/0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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