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 장례문화] 저승길이 달라진다

유족편의가 우선, 장례식장 이용 일반화

'죽은 자'와 '산 자'의 대결에서 '산 자'가 이기고 있다. 장례문화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예로부터 장례문화가 망자(亡者)에 대한 예의에 무게를 두었다면 이젠 유족의 편의가 우선되고 있다. 생활양식이 바뀌면서 전통적 장례문화는 유지되기 어렵게 됐다. 장례문화의 변화는 저승길을 바꿔놓고 있다.

대구의 H씨는 최근 모친상을 치르면서 한바탕 난리를 겪었다. 노환으로 모친의 별세가 멀지 않았음을 짐작하고 사전에 준비를 착실히 했지만 막상 일이 닥치자 앞뒤가 꽉 막혔다.

전통양식으로 장례를 치르다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이 일을 처리해야 했다. 밤새 문상객을 받으면서 또한편으로는 산소 조성, 영구차 임대까지 자신이 나서야 했다.

발인 전까지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는 H씨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계속 비가 오면 산소를 만들고 운구하는 데 낭패를 볼 판이었다. H씨는 선산 기슭까지는 영구차로, 산기슭에서 500여m 떨어진 산소까지는 상여를 이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상여를 맬 상두꾼을 모으는 것도 간단치 않았다. 상두꾼 대표에게는 운구 중의 '저승길 노자'시비를 없애기 위해 아예 가욋돈을 집어 주었다.


'원스톱서비스' 장례식장 각광

H씨처럼 집에서 장례를 치르는 사람은 이제 소수가 됐다. 당연시됐던 가정장례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장례문화에 자리를 내주고 있다. 새로운 장례문화 양태는 장례식장 이용, 화장의 확산, 그리고 경조문화의 변화 등 3가지로 요약된다.

서울보건대학 장례지도학과의 이필도 교수는 "장례문화가 유족의 편의 위주로 바뀌고 있다"며 앞으로 이 추세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 장례식장이 각광받는 것은 도시화와 주거공간의 협소화 때문이다. 아파트 생활이 일반화하면서 많은 문상객을 받기가 어려워졌다. 장례식장은 1995년부터 속속 등장한 종합병원 장례식장(영안실)이 대표적이다. 전국의 병원 장례식장은 173개에 달한다.

또한 병원과 무관한 전문장례식장도 급증하고 있다. 서울 1곳(구로구 서울장례식장)을 비롯해 지방에도 30여곳에 이른다.

이필도 교수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대도시권에서는 80% 이상이 전문 장례식장을 이용해 장례를 치렀다. 이용률이 급증한 것은 1998년부터. 전문 장례식장은 원스톱(ONE-STOP) 서비스로 유족의 편의를 최대화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의 한 관계자는 "사망에서 매장에 이르는 토털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신과 유족만 오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이야기다.

전문장례식장 이용률이 늘면서 죽음을 맞는 장소도 달라졌다. 과거에는 사망이 임박한 환자를 병원에서 가정으로 옮기는 것이 상례였다. 객사를 막기 위한 유족의 뜻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젠 반대로 가정에서 병원으로 옮기는 것이 일반화했다. 이 추세에 따라 장례지도학과를 개설하는 대학까지 등장했다.

장례식의 풍경도 대폭 달라졌다. 과거처럼 굴건제복을 하고 자지러지게 우는 유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관계자의 이야기다. 추모방식도 정보화하고 있다.

추모 사이트는 서울시 '사이버 추모의 집'(www.memorial-zone.or.kr)과 장묘전문업체 효손흥손의 '하늘나라'(www.hanulnara.co.kr) 등이다. 가입자는 인터넷상에 올려진 고인의 사진과 동화상, 육성을 접할 수 있다. 세계 어디서든 추모글을 올리고 헌화할 수 있다. 인터넷이 망자와 산 자를 연결하고 있는 셈이다.

경조문화 역시 뚜렷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상호부조나 품앗이 형태였던 과거의 경조풍습이 부의금 전달로 변했다. 상가에서 밤샘하며 술을 마시고 고스톱을 치는 모습이 크게 줄었다. 이필도 교수는 이같은 변화는 긍적적인 측면과 동시에 금전 위주로 흐른다는 점에서는 부정적인 면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 부산 등 대도시 화장률 50% 넘어

장례문화의 가장 큰 변화는 시신처리 방식이다. 500여년간 이어져왔던 매장문화가 화장으로 급격히 바뀌고 있다. 화장은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서 두드러진다. 지난해 서울과 부산은 화장률이 50%를 넘어 전국 평균 30.3% 보다 월등히 높았다.

물론 화장이 늘어나는 데는 묘지난과 성묘의 불편함, 그리고 젊은 세대의 편의주의가 한몫을 했다.

그러나 화장이 늘어난 더 큰 이유는 화장시설의 현대화와 일반인의 인식변화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의 장묘사업소(벽제 화장장)는 과거의 음침하게 느껴지던 이미지를 일신했다.

컴퓨터로 통제되는 23기의 화장로를 갖춘 화장장은 선진국에 손색없는 최신시설을 도입해 유족의 거부감을 없앴다. 벽제 화장장의 지난해 실적은 2만5,000여구(사산ㆍ개장유골 제외).

하루 평균 70구를 처리했지만 올해는 평균 75건으로 늘고 있다. 서울과 동급의 시설을 갖춘 부산시를 비롯해 대전, 광주, 대구, 군산, 제천 등도 시설을 현대화하고 있다.

화장이 급증하면서 유골을 봉안하는 납골시설의 이용률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화장유골 처리방법으로는 납골당 안치가 55%로 가장 많았다.

이밖에 강산살포가 19%였고 매장은 3.3%에 불과했다. 납골시설은 무덤형 납골묘와 왕릉식 납골묘, 수납형 납골당 등이 있다.

서울시가 특허를 얻은 '한국형 납골묘'는 무덤형태로 부부 합장할 경우 24구까지 봉안할 수 있다. 공원묘지 1기(600만원 이상)에 못미치는 540만원으로 24구까지 모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서울시가 무상분양하는 수납형 납골당인 용미리 '추모의 집'은 '망자의 아파트'로 불린다. 가로 세로 24cm의 봉안함을 쌓은 형태다. 유골은 도자기에 담긴 채 봉안함 속에 보관된다.

추모의 집 봉안용량은 3만7,000기. 서울시는 당초 3년간 사용계획을 세웠지만 1년만에 47%가 '입주'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국토의 1%가 묘지면적, 포화상태

화장은 1998년 수해로 묘지가 대거 유실돼 관리상의 문제점이 대두되면서 활성화했다.

아울러 그해 타계한 최종현 SK회장이 화장해달라고 유언을 남긴 것이 기폭제가 됐다. 지난해 연말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민의 83%가 화장에 찬성했다.

화장은 이미 당위성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 전국의 묘지수는 약 2,000만기. 이중 800만기가 방치된 무연고 묘다. 전국의 묘지면적은 국토면적의 1%에 달한다. 기존 묘의 평균면적(7~8평)은 살아있는 사람의 평균 주거면적(4평)보다 넓다.

2001년 1월13일부터 새로 시행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은 개인ㆍ집단묘지의 면적을 대폭 줄이고 시한부 매장제를 도입했다. 매장 중심의 장묘문화를 화장ㆍ납골 위주로 바꾸는 게 법개정의 취지다. 죽은 자를 위해 산 자의 공간을 더이상 양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서울보건대 장례지도학과의 이필도 교수는 "매장문화가 여전히 뿌리깊다"며 "개정법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묘지면적과 사용기간 제한을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06 19:26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