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교과서 왜곡] "역사 비트는 일본은 위험한 나라"

남북한·중국 강도높은 규탄, 외교적 긴장

동북아에 1982년에 이어 또다시 '일본의 역사교과서'라는 시한폭탄이 가동중이다. 남ㆍ북한과 중국이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표출하는 분노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는 데도 일본이 요지부동의 자세를 견지하면서 동북아 4국간에 외교적 긴장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남ㆍ북한 역사학자들이 3월2일 평양에서 강도높은 규탄성명을 발표하는 등 주변국간의 공조 대응 움직임마저 가시화하고 있다.

일본 우익세력이 만든 교과서의 실체가 드러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주변국이 발끈하는 이유는 너무도 자명하다. 일본이 자신의 역사를 왜곡할 때 주변국의 역사 또한 왜곡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왜곡된 역사교육은 결국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물리적 힘의 강화로 이어져 주변국에 '위협의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일본은 이미 역사를 통해 주변국을 침략할 수 있음을 입증했고 피해 당사국은 아직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역사왜곡은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으로 이어지는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일본 사회의 총체적 우경화, 더 나아가 군국주의 부활의 우려를 높여준다. 때문에 일본 우익진영의 최종 수정판 교과서가 주변국의 기대에 못미치는 수준으로 드러날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민족감정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됐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국가는 아무래도 한국이다. 3ㆍ1절인 1일에는 근래 보기 힘들 정도로 전국적인 일본 규탄 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일본 교과서 모형에 대한 화형식을 갖고 교과서 왜곡에 대한 특별수업과 1,000만 서명운동, 일본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기로 했다.


한국, "올바른 역사인식 가져라"

한국 정부도 강력하게 대응하는 하는 것 외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정부는 지난달 28일 1982년 이후 처음으로 일본 교과서 문제에 대한 관계장관회의를 연데 이어 이정빈 외교통상부 장관이 데라다 데루스케(寺田輝介) 주한 일본대사를 초치, 우려를 표명하는 등 단계적 대응에 나섰다.

정부의 대응 방안에는 국회에서 통과된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시정 촉구 결의안에 포함된 '왜곡 시정시까지 대중문화 추가 문호개방 일정 전면 재검토'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한국 정부는 당초 조용하게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최상용 주일대사가 지난달 내내 일본측에 유감을 표명하고 이 장관이 고노 요헤이(下野洋平) 외무장관에 전화하는 등 다각적 방법으로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극우적 교과서의 수정본이 문부과학성의 최종 검정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특히 일본 정부가 1982년 국정교과서 파동 당시 '근린제국(近隣諸國)에 대한 배려'라는 기준을 국제적으로 약속하고도 교과서의 객관적 사실만을 따져 검정 통과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미온적 태도를 견지하자 왜곡의 악순환을 끊는 행동이 필요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3?절 기념사에서 "한ㆍ일 양국은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면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자"고 말했다.

비록 우회적인 유감표명이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교과서 문제를 언급한 것은 일본에 상당한 압박이 될 전망이다.

대통령까지 이 문제에 개입하게 된 것은 한반도 화해ㆍ협력 시대를 맞은 시점에 교과서 파동으로 반일 감정이 고조될 경우 2002 월드컵 공동개최를 눈앞에 둔 한ㆍ일 관계는 물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통령이 간접적인 지적에 머문 것은 일본의 검증 절차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강하게 나설 경우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까지 나서 유감을 표명했는데 일본 정부가 스스로 매듭짓기는 커녕 무대응으로 일관할 경우 마땅한 대응책이 없다는 게 우리의 고민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일단 그런 점을 고려해 대통령이 우회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면서 "정부로선 일단 과거사를 왜곡한 교과서의 문부과학성 통과를 막는데 총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교과서가 검증을 통과할 경우에는 1982년의 전례에 따라 문제의 교과서를 자체적으로 분석, 등급으로 나눠 재수정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과거청산도 함께 하라"

북한도 교과서 왜곡에 대한 비난의 강도를 점점 높이고 있다. 북한 외무성이 지난달 여러차례 교과서 왜곡을 '정치적 협잡행위', '국제법을 위반한 범죄' 등이라며 규탄한데 이어 3월1일 평양방송은 "일본이 침략을 다시 하려 한다"고 노골적으로 비난했다.

북한의 이같은 대응은 반제국주의를 주창하고 있는 정체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지만 북ㆍ일 수교협상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포석도 포함된 것으로 해석된다.

평양방송 등 북한 언론은 최근 교과서 문제와 함께 '시간을 끌수록 과거 죄악의 빚이 커진다'는 등의 보도물을 통해 과거청산 문제를 잇달아 강조하고 있다.

북한과 일본은 지난해 10월 수교 협상을 재개했지만 식민 배상의 규모 등을 둘러싸고 난항을 거듭한 끝에 현재는 차기 협상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중국, "일본 정부가 나서라"

중국의 입장은 한마디로 "일본 정부가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스스로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는 것이다.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지난달 27일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를 통해 "양국 우호관계가 잘못되지 않게 각별한 배려를 바란다"고 말한 것도 일본 정부가 먼저 나서서 교과서 문제를 해결하라는 주문이다.

물론 중국의 관영 언론과 외교부는 교과서 문제는 물론이고 노로타 호세이(野呂田芳成)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장의 망언, 일본 항공사의 중국인 차별 등 잇단 일본과의 마찰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왔다.

주방자오(朱邦造) 외교부 대변인은 교과서 파동에 대해 "일본 우익이 추진중인 교과서의 일부 내용이 수정되더라도 이 교과서의 반동적이고 터무니없는 성격은 변할 수 없다"고 누차 열변을 토했다.

그러나 그의 논조는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가 교과서 출간을 막을 것을 촉구하는 원칙론에 대한 강조라는 게 대체적인 해석이다.

중국이 이처럼 교과서 문제에 대한 직접적 비난을 피하는 것은 전면대응의 경우 일본 극우파에 힘을 실어주는 역효과를 내고 국익에는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올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눈앞에 둔 중국은 중요한 교역 파트너인 일본이 알아서 교과서 문제를 잠재워주길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이런 원칙론의 행간에는 일본 정부가 끝까지 비협조적일 경우에는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가 숨어 있다. 중국은 지난 5일 개막된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교과서 문제를 포함한 대일 정책의 방향을 재점검했다.

이동준 국제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07 11:23


이동준 국제부 dj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