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의보감] 봄철 무기력증

예년에 비해 유난히 추웠던 겨울도 물러가고 계절은 어느덧 봄의 초입인 3월이다. 개구리가 놀라 겨울잠에서 깨어 나온다는 경칩을 지난 이맘 때부터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면 공연히 맥이 빠지고 피곤해하는 사람을 주위에서 흔히 보게 된다.

질병이 의심될만한 특별한 증상이 없는데도 "온몸이 무기력하고 피곤하다"든지 또는 "몸이 무겁고 매사에 권태로움을 느낀다"는 등의 증상을 호소하며 때때로 기억력과 집중력이 저하되고 불면증에 시달리며 심할 경우 두통이나 현기증까지 동반하기도 한다.

흔히 춘곤증으로 일컬어지는 이러한 현상은 봄이 되면 거의 모든 사람이 경험하게 되는 증상으로 특히 추위를 많이 타거나 위장이 약한 사람, 지난 겨울에 피로가 누적된 사람의 경우 그 정도가 더욱 심하다.

춘곤증은 딱히 질병으로 간주하기는 어렵지만 그대로 방치할 경우 여타의 질환으로 발전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봄철에 빈발하는 여타의 질병과 혼동,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지나칠 경우 뜻밖의 불행을 겪을 수도 있다.

매년 봄이면 마치 통과의례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경험하게 되는 춘곤증의 가장 큰 발생원인은 기의 소모가 심한데 따른 것이다. 한의학에서 봄은 한해의 건강을 결정하는 계절로 보고 있다.

즉, 자연의 섭리에 따라 겨우내 추위에 움츠렸던 몸과 마음이 따스한 햇볕에 녹으면서 몸에서 생성된 기의 순환이 시작되는 시점이 바로 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외기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인체가 불균형을 야기하게 될 경우 에너지의 소모가 늘어나게 되고 자연 기의 소모 또한 늘어나게 되면서 춘곤증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춘곤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부족한 기를 보충하고 기의 소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면역기능을 높이고 원기를 보충해주는 약물을 복용하는 것이 좋은데 대표적인 처방으로 보중익기탕을 들 수 있다.

이와 함께 신체의 보온을 유지하고 기름진 음식의 과식, 음주 등을 피하고 녹황색 야채를 충분히 섭취하는 것이 춘곤증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된다. 또 봄은 한의학에서 화가 많은 계절로 보는 만큼 평소 생활에서 즐거운 마음을 갖도록 노력하고 적당한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이 좋다.

하지만 이러한 섭생과 약물복용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지속되거나 심해질 경우 건강에 이상이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는데 이는 한의학에서 말하는 허증(虛症)이라 할 수 있다.

허증은 건강한 상태와 질병에 걸린 상태의 중간단계로 반(半)건강상태라고 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기와 혈의 균형이 이루어졌을 때 비로소 건강이 유지되는 것으로 보는데 허증은 기와 혈, 어느 한쪽이 균형을 상실, 오장육부의 기능이 저하되어 대사가 원활하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허증은 질병의 발생을 사전에 예고해주는 위험신호로 볼 수 있으며 허증을 치료하는 것은 질병의 발생 전에 미리 치료를 시행하는 예방의학의 한 갈래로 생각할 수 있다.

허증 발생의 원인이 되는 기혈의 불균형은 매우 추상적 성격을 띠고 있어 진단이 쉽지 않다.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 각종 진단장비를 이용한 검사에서도 허증의 진단이 용이하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현재 허증의 진단을 가능케 해주는 검사법으로는 생혈액 검사를 들 수 있다. 생혈액 검사는 환자의 손가락 끝에서 소량의 혈액을 채취, 특수현미경을 이용해 혈액의 상태를 통해 적혈구의 모양이나 형태, 백혈구의 활동능력, 혈중 콜레스테롤, 지방, 플라그 등 혈액불순물의 정도로 혈액의 맑고 탁한 정도를 파악, 허증의 진단을 가능케 해준다.

일단 검사를 통해 각종 스트레스와 신경과민, 두뇌활동 과다 등으로 인체의 기가 부족한 상태인 기허증으로 진단되면 익기보혈탕을 처방하고 절대 영양소의 부족으로 피를 만드는 조혈기능이 저하된 혈허증일 경우에는 온궁탕을 처방한다.

또 기허증과 혈허증의 증상이 동반해서 나타나는 기혈구허증의 경우 음양쌍보탕을 처방하면 치료에 뛰어난 효과가 있다.

서보경 강남동서한의원 원장

입력시간 2001/03/0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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