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실에서] 소방관 참사와 그 후

개인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도 '격'이 있다. 돈 많은 사람이 반드시 인격이 높은 것은 아니듯이 나라의 격도 꼭 국력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3월4일 소방관 참사와 그 후의 일들은 한국의 격을 되돌아보게 한다.

한국의 소방환경은 중산층의 이민물결이 단지 자녀교육 환경에 대한 우려에서만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다. 이민자들은 한국에서는 희망이 없다고 말한다. 한국은 기본이 안돼 있고, 앞으로도 기본이 설 것 같지 않아서 떠난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남은 사람에게도 새삼스럽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북한에서 전몰장병의 유골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미국처럼 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치자. 화재현장에서 인명과 재산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돌보지 않는 소방관들이 어떤 대접을 받아왔는지 생각해 보자.

국가와 정부는 과연 국민과 공동체 구성원의 자발적인 협력을 이끌어낼 생각을 갖고 있기나 한지 궁금하다.

정부 뿐 아니다. 초상도 채 치르지 않은 유가족들을 불러 '눈물 반, 절규 반'의 성금모금 생방송을 하는 방송사도 마찬가지다. 많은 시청자들은 방송사의 냄비식, 인격모독식 행위에 분노했다. 이 일이 어디 성금모금으로 해결될 일인가.

시민도 119구조대를 종 부리듯 한다. 가게에 날아든 비둘기를 쫓아달라, 지붕의 눈 치워달라, 하수구에 빠진 핸드폰 건져달라.. 출동 안하면 안했다고 청와대에 인터넷 항의투서가 날아든다.

정치권은 무슨 '큰 정치'하느라 그리 바쁜지 꼭 일이 터져야 반짝 신경쓰는 척 하고, 일부 시민은 그들대로 낸 세금의 본전을 뽑겠다는 식이다.

모두가 권력과 돈, 편안함만을 쳐다보며 달려가는 세상에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을 돌아보는 것이 기본을 세우고 나라의 격을 높이는 일이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13 14:45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