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풍향계] 개각 폭·시기 놓고 설왕설래

한미 정상회담 결과를 둘러싼 여야 공방이 주초부터 치열하다. 김대중 대통령은 3월11일 귀국보고를 통해 "미국의 새 정부와 충분히 의견을 나눴고 한미간에 긴밀한 공조를 변함없이 유지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로 △한미간 동맹적 협력관계의 확인 △햇볕정책의 성과 인정 △남북관계에 있어 한국의 주도권 인정 △미국의 2차 남북 정상회담 지지 △제네바 북미 합의 준수 등 5개항을 꼽았다.


한나라당, 대북정책 재점검 촉구

그러나 한나라당의 평가는 다르다. 이회창 총재는 12일 총재단회의의 모두발언에서 이례적으로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낭독했다.

이 총재는 한미동맹의 재확인을 긍정 평가하면서도 김 대통령과 정부의 대북인식에 대해 미국이 회의를 제기한 점을 부각시킨 뒤 북한을 보는 시각과 대북정책 전반을 재점검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여기에는 김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대한 자신과 한나라당의 문제제기가 옳았음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입증됐다는 나름의 평가가 깔려있다. 이 총재는 이와 함께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나타난 혼선을 지적하고 통일ㆍ외교ㆍ안보팀의 재정비를 요구했다.

이 총재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도 거친 표현은 배제하는 등 다른 면모를 보였다.

하지만 대변인이나 국회 통외통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김 대통령의 햇볕정책 자체가 실효성을 상실했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큰 실패"라는 등 강도높은 공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 국익을 위해 노력했는데 일방적으로 실패라고 규정하고 '대통령이 외국에 나가 혼이 나고.'라는 등의 극언을 하는데 한나라당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발끈했다.

개각설도 정가의 주된 관심사다. 김 대통령을 수행해 미국을 방문했던 청와대 박준영 공보수석은 귀국 직후 "개각에 대해 아무 것도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했지만 무성한 개각설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여권이 정국안정을 이유로 추진중인 3당 정책연합의 고리가 정치인 입각인 만큼 조만간 개각이 불가피하다는 정황론이 확산되고 있고 외교안보팀 인책론의 대두가 개각설을 부추기는 탓이다.

여권 주변에서는 3월 말에 개각이 단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우선 민국당이 23일 정책연합을 추진중인 김윤환 대표의 신임을 묻기 위한 전당대회를 잡아놓고 있어 최소한 그 이후에 개각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개각의 폭과 대상도 관심인데 외교안보팀과 경제팀 중 어느 쪽이 대폭으로 갈릴지를 놓고 설이 분분하다. 4대 개혁이 2월 말로 마무리된 만큼 경제팀의 재정비 가능성이 우선적으로 거론되지만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위해 현 경제팀의 골간이 유지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외교안보팀의 교체가능성은 여러 근거에서 거론된다. 최근의 외교혼선에 대한 책임론 외에 부시 행정부의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 대북정책 라인을 재정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2차 남북 정상회담 준비를 위해 외교안보팀을 유임시키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적지 않고 한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외교팀을 바꾸는 것은 외교전략이나 국가위신 차원에서 모양이 좋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3당 정책연합의 근거 마련을 위해 6~8자리가 필요하다고 보면 사회부처나 현재 정치인이 입각해 있는 부처가 대상이 될 개연성이 높다.

물론 민국당이 정책연합을 놓고 내부갈등이 심해 이것이 어떻게 정리되는지가 3당 정책연합의 성사 및 개각에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자금세탁방지법 여전히 뜨거운 감자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인 자금세탁방지법 제정을 둘러싼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 여야 지도부는 지난 주 정치자금도 자금세탁방지법 적용대상에 포함시키기로 전격 결정했지만 의원들의 반발이 거세다.

정치자금을 포함시키는 것에 반대하는 의원들은 신설되는 금융정보분석원(FIU)의 무소불위한 권한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출하고 있다.

FIU는 법원의 영장없이도 자금세탁의 의혹이 있는 정치자금에 대해 계좌추적을 할 수 있고 이것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일부 의원들은 FIU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과 함께 계좌추적 사전통보 등의 보완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지만 "그렇게 될 경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주말인 3월17일에는 한나라당의 부산 집회가 예정돼 있다. 'DJ정권 규탄 및 국정보고대회'라는 명칭인 이 대회가 개최지의 특수성 때문에 정치권에 긴장을 불러올 소지가 있으나 한나라당은 이회창 총재가 참석치 않기로 하는 등 수위조절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이계성 정치부차장

입력시간 2001/03/1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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