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들여다보기] 의사당에서의 대통령

"미국은 지금 평화를 즐기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쉬고 있는 나라는 아닙니다. 주어진 역할도 많고 다른 나라의 기대도 무척 큽니다."

취임한지 38일 만에 부시 미 대통령이 상ㆍ하원 합동회의에서 처음으로 행한 연설을 마무리하면서 한 말이다. 대외정책에 있어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이 집약된 표현이다.

자신의 국정수행 목표 중에서 선거 당시에 주장하였던 강한 군사력을 가진 미국,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국가방어 미사일체계에 대한 의회의 지지를 얻기 위한 호소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대통령은 연초에 'State of Union'이라는 연설을 한다. 상ㆍ하 양원이 모인 합동회의에서 행하는 연설인데,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이 자신의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면서 국민에게 알리는 것으로서, 헌법상 요구되는 일종의 의식이다.

일반적으로 'State of Union' 연설은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수행 목표 및 방향을 국민에게 홍보하는 무대로 많이 쓰인다.

다만,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한다는 형식을 통하는 것일 뿐이다. 모든 국가 활동에는 예산이 소요되며, 미국은 매년 그해의 예산을 법률로 정하기 때문에 정책의 방향과 우선 순위를 놓고 의회와 행정부는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전쟁을 벌이는데, 그 선전포고의 장(場)이 바로 의회연설 석상이다.

특히 행정부와 의회를 서로 다른 정당이 차지하고 있을 때는 대통령의 연설이 끝난 후에 이어지는 반대당 대표의 반론을 들어보면 과연 같은 주제를 놓고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정반대의 논조를 편다.

대부분의 대통령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높이거나 정치적으로 곤경에 처했을 때 이를 반전시키는 계기로 사용했다. 백악관 인턴 여직원과의 성추문으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날 뻔 했던 클린턴 대통령이 여론의 반전의 계기로 삼은 것도 바로 이 연설을 통해서였다.

클린턴 개인은 싫었지만 그가 내세우는 정책에 동조한 많은 국민의 지지에 힘입어 탄핵당할 궁지에 몰린 클린턴은 결국 막판 뒤집기를 성공함으로써 대중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었다. 그만큼 이 연설은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부시의 이번 연설은 이론상으로는 'State of Union' 연설이 아니었다. 대통령이 취임한 첫해에는 그 연설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고나서도 한달 가까이 지나서야, 그것도 대법원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이긴 부시로서는 자신의 선거 공약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이 연설을 통하여 다시금 국정수행 목표에 대한 국민의 지지와 확인을 얻어야할 정치적 필요성이 있었다.

이 연설에서 부시 행정부의 자신만만한 태도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내용은 부시가 취임연설에서 한 내용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부시는 "논쟁의 정치를 종식시키고 생산의 정치를 정착시키겠다"며 워싱턴에 입성했다.

취임하자마자 민주당 의원들을 백악관으로도 초대하고, 나아가 민주당의 연수회에까지 참석하여 의견을 들으면서 양당의 협조 하에 문제를 풀어나가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산안에 반영된 부시의 정책목표는 민주당의 의견이 전혀 고려되지 않아 민주당쪽의 불만이 크다.

부시 행정부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추진하는 정책목표는 조세 감면이다. 앞으로 10년 동안 총 1조6,000억 달러의 세금을 깎겠다는 것이다. 앞으로 엄청난 재정흑자가 예상되는데 재정에 흑자가 생기면 당연히 국민에게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논리다.

반면 민주당은 과연 재정흑자가 얼마나 날지 예측할 수 없을 뿐더러 만일 흑자가 생겼을 경우에는 빚부터 먼저 갚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그 뒤에는 공화당과 민주당의 근본적인 시각차이가 존재하면서 서로 '공룡정부를 위한 술책'이니 '부자들을 위한 감세정책'이니 하면서 논쟁을 벌이고 있다.

전임 대통령에 비하여 부시는 이번 연설에서 솔직담백함으로 많은 점수를 얻었다. 과연 부시가 개인적으로 얻은 호감을 정책에 대한 지지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을지가 그의 정치적 능력을 판가름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

나아가 그가 "다른 나라의 기대도 무척 크다"고 한 미국의 역할이 무엇을 마음속에 두고 한 말일까 하는 것이 궁금증을 더해준다. 미국의 대외정책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로서는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박해찬 미 HOWREY SIMON ARNOLD & WHITE 변호사

입력시간 2001/03/13 20:37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