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신·구갈등이 아니다

원로 영화평론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감독인 홍파씨가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지난 3월1일자 '주간한국'의 '이대현의 영화세상'에 실린 '공짜 돈 서로 차지하기'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적은 글이었다.

3년전. 홍파씨는 '영화속으로 떠나는 문화여행'이란 책을 냈다. 한국 영화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을 담은 것이었다. 그중 공감이 가는 내용을 가지고 '실패를 두려워하는 한석규에게'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모두가 스타가 된 한석규를 칭찬하고 영화사가 그에게 목매달고 있을 때 그는 "한석규가 실패가 두려워 안일에 연연할 뿐 진정한 영화의 고통에 동참하려들지 않는다"며 "실패없는 성공이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다"고 했다.

그런 그가 "평소 이대현 기자의 글을 유심히, 그리고 공감을 갖고 읽고 있다"는 인사말과 함께 글을 보내온 이유는 '신ㆍ구 갈등'에 관한 그의 생각을 전하고 싶어서였다.

사실 영화진흥위원회의 구성에서부터 극영화 제작지원 선정과정에서의 말썽까지 영화계에 갈등이 일어나면 언론은 쉽게 그것을 "신ㆍ구 또는 보수와 개혁세력의 갈등"이라고 말한다.

홍파씨는 "그 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먼저 "과연 영화계에 신ㆍ구세대간의 갈등이 실질적으로 존재하기나 한 것인가"라고 반문하다.

그러면서 현재 영화계에는 현장인(신세대)과 비현장인(구세대)이 존재하고, 정권교체와 함께 젊은 영화인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해 그들의 주도로 영화진흥위원회가 만들어졌고 '보이지 않은 손'이랄 음성적 영화권력이 한국 영화를 쥐락펴락하고 있으며 쏟아져들어오는 영화자본은 거의 현장인에게 집중됐다는 것이다.

그들은 선배들을 영화발전의 걸림돌로 보았고 개혁의 적으로 몰았으며 시대에 뒤떨어진 낙오자로 본다는 것이다.

홍파씨는 "설사 이런 부정적 측면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일생을 통하여 어렵사리 영화의 연륜을 쌓아온 사람을 세대구분법으로 민주화한 영화물결에서 소외시키려는 의도는 그 자체로 비문화적 폭거"라고 주장했다. "상업주의적 세대교체론의 또다른 횡포"라고 했다.

현장인들의 영화에 대한 시각에도 비판을 가했다. "영화는 젊음이라는 기백과 힘, 자금의 만용으로 만들어지는, 예술정책에 좌지우지되는 단순한 산업체가 아니라 총체적 문화행위의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인들은 문화적 전통의 세대간의 가교를 스스로 무너뜨린 채 마치 영화진흥법과 거대한 자본력만이 영화진흥을 보장해줄 것처럼 의존적 과대망상을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라고 했다.

그가 진단한 현장인들의 주의주장이 받아들여진 오늘의 영화현실은 낭비적이며, 할리우드의 횡포를 규탄하면서 할리우드를 모방하기에 급급하고, 배우는 대형 상업주의자의 노예가 됐으며, 민족문화와 정서로서 보편적이며 인간적인 영화를 잃어버린 모습이다.

그리고 현장인들은 영화진흥기금을 마치 제 쌈지돈처럼 사용하며 진흥기금으로써 영화진흥에 실패했음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이어령 비어령'의 시나리오 심사를 통해 비현장인을 밀어젖힌 채 현장인끼리 번갈아가며 진흥기금을 독식한다.

영화축제를 빙자해 진흥기금을 축내며 개인적인 거드름을 떨거나 제 스스로 한국영화 대표를 자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극영화제작지원금을 포함한 영화진흥기금에 따른 잡음은 신ㆍ구세대간 갈등의 소산이 아니라 권력화한 현장인의 일탈에서 그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홍파씨는 나름대로 미래도 예견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권력을 등에 업은 현장인의 영화진흥은 불발에 그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자칫 이 정권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상당히 비관적이다. 그리고 부정적이다. 홍파씨 역시 구세대요, 자신이 정의한 비현장인이어서 일방적일 수도, 감정적일 수도, 편협할 수도 있다. 때문에 현장인들은 이런 쓴소리를 비웃음으로 흘러보낼 것이다. 그러나 공자도 그랬다.

"삼인행이면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고.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1/03/1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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