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인식의 차이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인식 차이의 확인 여행이었다. 그의 민주화 역정의 우방기지였던 워싱턴에는 많은 그의 지지자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외로운 여행이었다.

그가 3년간 쏟았던 햇볕정책에 그림자가 드리우지 않을까 걱정스런 여행이었다. 물론 여전히 인식이 올바른 친구도 미국에는 적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조지 부시 대통령과 회담이 끝난 뒤 역시 그 답게 말을 굴렸다. "미국과 한국은 대북정책에서 속도의 차이는 있지만 시각의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대북관계 의 최고 정책결정권자인 그가 정책 실현을 위한 소재(素材) 확인인 인식(Perception)을 '시각'이라 어물쩡거린 것이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는 물론 네덜란드 방송까지 두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평양 보기의 차원을 넘어 평양 느끼기에서 명백한 '기본인식의 차이'를 드러냈다"고 썼다.

북한을 생각할 때 언제나 맨 먼저 인식의 대상이 되는 것은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이다.

부시는 "북한의 지도자에 대해 '약간의 회의감(some skepticism)'을 갖고 있다"고 했다. 어느 신문은 '약간'을 '조금은'으로 해석했지만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문맥상 '상당한'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중 두 대통령간에 의식의 흐름을 나타내는 언어의 사용에 미국 언론들은 무척 신경을 썼다. 뉴욕타임스의 국무부 출입기자인 데이비드 생거는 부시가 서울의 평양 접근방식에 '분명한 거절'의사를 표시한 것을 김 대통령은 둘러댔다고 지적했다.

생거 기자는 김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Frank)말했다.

매우 중요한 참고의 말씀이 됐다"고 말한 점을 들었다. 김 대통령의 이 말은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다는 뜻이 아니고 의견교환중 '실질적인 불일치'가 있을 때 쓰는 외교적 어투를 써서 불일치를 둘러댔다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부시와의 회담에서 속도의 차이를 지나 '미지근한 결과'를 낸 것을 인식하고도 이를 감췄다고 분석한 것이다,

왜 두 대통령의 첫 만남이 '미지근한 결과', '인식의 차이'의 확인에 지나지 않게 되었을까. 뉴욕타임스의 세계문제담당 컬럼니스트인 토머스 프리드먼('렉서스와 올리브나무-세계화의 이해'의 저자)은 "부시 대통령은 텍사스 전주지사로서의 사나이다움을 북한에 보여주겠다는 의식, 인식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해석했다.

프리드먼에 의하면 아직도 부시의 대북 및 대외정책의 기틀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는 것. 부시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부시는 클린턴 전대통령보다 '거칠고 강한' 외교 정책을 펴겠다는 몸짓과 어투 뿐이었다는 것이다.

부시의 대외정책은 우아하면서도 강하고, 실용적이면서도 강한 대외정책을 추구하려 하지만 이번 회담을 보면 강하지만 효과없는 결과를 낳았지 않았느냐는 분석이다.

프리드먼은 김 대통령의 방문을 전후해 날마다 강경으로 변해간 파월 국무장관의 발언에서 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파월은 김 대통령 방미 전날인 3월6일 "클린턴 정권의 토대 위에서 대북정책을 펴겠다"고 했다가 7일에는 돌변, "북한은 적대국. 회담 서두르지 않겠다.

제네바 합의 재검토, 김정일은 지독한 독재자"등의 발언을 했다. 프리드먼에 의하면 만약 클린턴 시대였다면 그의 반대자인 대중지 뉴욕포스트는 "혼란에 빠진 백악관, 누가 장악하고 있나"라는 통단 제목을 달았을 정도로 부시의 외교팀이 삐걱거렸다고 보고 있다.

김 대통령이 70년대 말부터 가택 연금중일 때, 또 구속중일 때 워싱턴 포스트의 동북아 특파원으로 그를 취재 했던 돈 오버도퍼('두개의 한국-한국 현대사'의 저자)는 이번에도 워싱턴에 온 김 대통령을 하루 3시간 이상 추적 취재했다. 그는 J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대통령은 부시 정부의 준비부족 탓에 어려움을 겪었다. 아직도 부시의 북한팀이 이뤄지지 않았다. 대외정책팀도 구성되지 않았다. 한번도 합동회의가 없었다.

물론 파월은 국방부측에서 견책을 받고 그의 소신을 접은 흔적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제 부시는 거의 즉흥적인 발언도 중대한 정책선언으로 해석되는 워싱턴의 정치와 언론환경에 익숙해져야 한다. 김 대통령은 그 피해자다. 북한이 그의 발언을 확대 해석할 위험이 있는 게 걱정이다. 이번 발언을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의 선언으로 받아 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김 대통령이 먼저 서울과 평양사이, 서울과 워싱턴 사이에는 인식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박용배 언론인, 세종대 겸임교수

입력시간 2001/03/13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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