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미·일경제] 미국경제 먹구름 언제 걷힐까

경제성장률 크게 저하, 하반기 회복 점치기도

지난해 중반 이후 하강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미국 경제가 여전히 활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작년 3/4분기 미국 경제의 성장률은 이전의 절반에도 못 미친 2.2%로 떨어지더니 4/4분기에는 1.4%로 크게 떨어졌다.

올해 1/4분기에는 제로성장에 그치거나 마이너스 성장을 할 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1991년 이래 신경제 장기호황을 누려온 미국경제의 침체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에 만만찮은 파장을 던지고 있다.

미국 경제의 성장둔화에 대해서는 장기호황에 따른 불가피한 조정국면이란 주장과 경착륙(hard- landing) 조짐이란 주장이 맞서고 있다. 연착륙(soft-landing)을 강조하는 전자는 장기호황 과정에서 경제 전반에 거품이 형성됐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기업과 가계의 부채가 급증, 가계 저축률이 마이너스가 된데다 경상수지 적자 역시 국내총생산(GDP)의 4% 수준으로 확대됐다는 것. 주식 가격이 내재가치를 훨씬 웃돌고 있는 것도 조정을 필요로 하는 요소로 거론된다.

이에 반해 경착륙을 우려하는 후자는 미국 경제가 자칫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최근의 경기둔화 속에 물가까지 올라 만성적인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특히 소비가 아닌 에너지 가격 상승이 인플레를 주도할 조짐이 있어 문제는 더 심각하다. 폴 새뮤얼슨 MIT공대 경제학교수는 뉴욕 증시에서 기술주와 굴뚝주가 동시에 폭락하는 최악의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이 25%나 된다고 말했다.


회복세로 돌아서도 성장률은 낮아질 듯

새뮤얼슨 교수의 이야기를 역으로 보면 최악이 아닐 가능성은 75%가 된다. 다수의 경제 전문가들은 여기에 동의한다.

한때 우려됐던 미국 경제의 경착륙 가능성을 배제하거나 낮게 보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지속돼 온 침체의 파장에서 벗어날 모멘텀을 찾기까지는 다소간 시간이 필요하다는 데는 이론이 없다. 아울러 회복세로 전환되더라도 성장률이 지난 10년간의 실적에는 못미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3월1일 올해 미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지난해 11월의 3.5%에서 2%로 하향조정했다.

하지만 OECD는 "미국 경제에 대한 전문가들의 시각이 아직은 긍정적"이라며 내년에는 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OECD는 "현재 미국이 직면한 주요 과제 중 하나는 경제성장 둔화에 과잉반응하지 않음으로써 불안을 가중시키지 않는 것"이라고 권고했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올들어 잇달아 금리를 인하했다는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FRB는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 1월 한달동안 0.5%포인트씩 두차례나 금리인하를 단행한 바 있다.

FRB의 견해는 OECD와 대체로 일치하는 인상이다. 앨런 그린스펀 FRB 의장은 2월28일 하원 금융위원회 연설에서 "금리인하 시기를 앞당길 정도로 경기가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에 나타났던 경기감속 현상이 1~2월에는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그 이유다. 자동차와 주택판매감소세의 완화는 경기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감이 유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증시의 시각은 그린스펀의 해석과는 달랐다. 그린스펀의 발언은 금리 추가 인하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을 무너뜨려 주가폭락을 초래했다. 그린스펀의 발언과 함께 뉴욕증시의 나스닥 지수는 전날대비 55.9포인트(2.54%) 떨어져 2년만에 최저치로 곤두박질쳤다.

다우지수와 S&P500도 연초 상승분위기에서 롤백, 지난해 말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영향을 받아 도쿄 증시도 15년 만에 최저치인 1만2,261.80엔으로 급전직하했다.

이르면 3월 초, 늦어도 3월20까지 금리가 추가 인하될 것이란 증시의 기대가 꺾였기 때문이다.


소비자 신뢰도 하락, 소비급감 가능성

증시의 급작스런 커브는 일단 태생적인 변덕으로 보자. 그러면 다른 성적표와 전망은 어떨까. 한 마디로 갈지(之)자 걸음이다.

우선 소비자 신뢰도. 2월27일 발표된 미국 경제에 대한 2월중 소비자 신뢰지수는 1996년 6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3월1일 전미구매관리협회(NAPM)가 발표한 제조업지수와 개인소득, 지출은 전달에 비해 소폭 상승했다. 소비자 신뢰도는 떨어지는데 소비지출은 줄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소비가 급감할 가능성을 남겨두고 있다는 점에서 좋지않은 징후다.

신규 실업자수 역시 줄어드는 기미가 별로 없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3월3일까지 일주일간 실업보험금 신규 신청자는 37만명으로 전주에 비해 4,000명이 줄긴 했다. 그러나 구직자가 여전히 늘고 있다는 점에서 소비가 쉽게 확대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기업의 구매동향을 나타내는 전미구매자관리지수도 큰 폭으로 하강했다. 상무부에 따르면 1월중 기업구매는 3.8% 하락해 14개월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항공기와 자동차 등에 대한 구매가 감소하면서 기업활동을 위축시킨 것이다. 지난해 12월 0.6% 소폭 상승했던 기업구매가 오히려 줄면서 경기저점 논쟁이 재연되는 상황이다.

이같이 좋지 않은 징후에도 불구하고 연착륙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미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미국 기업들은 10여년간의 신경제 호황기에 제조업, 금융, 유통 분야에서 정보통신(IT)투자를 늘려 생산성을 크게 높였다.

IT투자의 급증은 1995년 이후 미국 경제의 생산성 향상 추세를 1% 정도 상승시켰다. 이러한 IT기술혁명이 수년내 종식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낙관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경기부양보다는 거품제거에 무게

FRB가 최근 금리를 추가 인하하지 않은 것은 부시 새 행정부의 감세정책에 호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인위적인 경기부양보다는 거품 정리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된 상황에서는 금리 인하보다 감세를 통한 소비역량 강화가 효율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미 하원은 3월8일 10년간 1조달러의 재정수입을 줄이는 감세안을 통과시켰다.

미 부르킹스 연구소 경제연구소장 로버트 라이튼 박사는 올 1/4분기가 경기저점이라며 하반기에는 미국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반기 동안 기업 재고조정이 마무리되고, 나아가 금리인하와 감세정책의 효과가 가시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회복세로 돌아서더라도 2002년의 경제성장률은 과거보다 훨씬 낮은 2%대에 머물 것으로 그는 예측했다.

미국 경제의 침체는 한국에도 상당한 부담을 안기고 있다. 우선 수출에서는 반도체와 함께 효자상품으로 떠올랐던 통신기기, 휴대전화 단말기, PC 및 부품 등 IT분야의 시장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달러약세가 용인돼 수출채산성이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미국측의 개방ㆍ구매압력 역시 강화될 게 확실하다. 최근의 군수품 구매 압력과 한국 철강제품에 대한 수입규제 강화가 이같은 우려를 실증하고 있다.

배연해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14 21:04


배연해 주간한국부 seapower@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