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LP여행] 한대수(上)

미국에서 수의학을 전공한 히피 스타일의 기인. 한국 모던포크의 창시자 한대수는 1968년 홀연 기타 하나를 메고 이 땅에 나타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늘 '열외인생'이었다.

동시대 젊은 엘리트의 상징으로 추앙받던 김민기와는 달리 지나친 자유분방함으로 삐딱하게만 비쳐졌다.

사랑, 자유, 평화를 갈망하는 히피문화 중독환자인 그가 유교적 군사독재국가의 지독한 보수적 사회 분위기로부터 철저하게 배척당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미국에서 '빠나나 보이스'라는 이름의 듀엣 활동, 그리고 서울대, 이대, 드라마센터 등에서 톱을 켜는 연주 등 수많은 전위적 공연.

그러나 가수보다는 <김민기 1집>(1971년)의 '바람과 나', <양희은 3집>(1974년)의 '행복의 나라'의 작곡자로 그는 겨우 대중 속으로 비집고들어온다.

3년간의 군(해군)복무를 마친뒤 1974년에 데뷔, 6년만에 1집인 <한대수 멀고먼-길>을 발표한다. 사진작가인 자신이 촬영한, 거친 흑백사진 속의 자화상이 삐딱하게 클로즈업되어있는 앨범 자켓. 아마도 앨범사진과 타이틀곡은 자신이 가게 될 길에 대한 예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1975년 2집 <한대수/고무신>은 한대수의 기나긴 방랑생활을 알리는 장례미사곡.

김민기와 신중현처럼 그도 유신정권의 '마녀사냥감'으로 사지가 절단당한다. 2집 <고무신>의 마스터테이프는 강제회수되어 완전 파기되었다. 자신의 분신인 1, 2집의 능지처참은 곧 한대수의 정신적 사망을 의미한다. 견딜수 없는 유신군사정권의 숨막힘은 그를 미국으로 내몬다. 사실상 음악적 도피였다.

1집은 허름한 차림의 청년이 힘없이 멀고먼 길을 힘겹게 걸어가는 변형자켓으로 1977년 1월15일, 그리고 해금된 뒤인 1989년 5월30일 오리지널 포맷과 똑같은 자켓으로 빛을 본다.

1989년에 나온 재판엔 보너스로 3집 <무한대>의 녹음 때 작업한 '하루아침'의 오리지널편곡이 들어있다. 2집 역시 해금이후인 1989년 7월1일 서울음반에서 다시 출시되었다. 오리지널 마스터가 폐기되어 초판LP로 재생할 수밖에 없었던, '저주받은 음반'이지만 실망스런 녹음상태는 아니다.

1집 <멀고먼-길>에 수록된 노래는 8곡. 이중 소홀히 넘길 곡은 없지만 '물 좀 주소', '바람과 나', '행복의 나라'는 언제 들어도 놀랍고도 신선한 명곡이다.

불협화음의 연속인 '물 좀 주소'는 대표곡. 한대수가 연주하는 생소한 전자리듬 카주(전자 풀피리소리의 느낌)와 '엽전들'의 드러머 권용남의 드럼, 임용환의 리드기타가 어우러지는, 전혀 새로운 연주시도.

한번 들어본 사람은 뇌리에 강력한 충격으로 지금까지도 봉인되어있다. 방랑하는 보헤미안이 자유와 사랑을 타는 목마름으로 호소하지만 끝내 탄압과 금지라는 현실로 절망하는 절규의 목소리. 아마도 이 기괴한 멜로디 속에 담겨진 노랫말은 한대수의 인생 그 자체가 아닐까?

1971년 김민기가 먼저 취입했던 '바람과 나'의 한대수 오리지널버전은 정겨운 하모니카 소리가 어루러진 서정적 멜로디 라인을 선보인다. 촉촉하고 한스런 그것은 같은 노래를 비교하여 듣는 재미를 선사한다.

'옥이의 슬픔'에서 정성조의 격조있는 플롯 선율과 투박한 한대수의 경상도 억양이 빛어내는 소리의 향연도 들을 거리. 17세 때 이미 작사ㆍ작곡한 '행복의 나라'도 양희은이 아닌 원작자 한대수식 창법으로 번 들어보시길.

철조망에 걸려있는 흰 고무신 한짝이 의미심장한 2집 <고무신>의 자켓 사진과 뒷면의 톱연주 사진. 자켓 사진만으로도 기존의 가요 LP와는 널찍한 간극을 둔다. 기타 이정선, 타악기 류복성, 첼로 최동휘의 세션 라인업.

이들이 빚어대는 타이틀곡 '고무신'은 가히 파격적이다. 노랫말에 대사를 넣은 이 곡은 경쾌한 리듬속에 녹아있는 온갖 악기들 소리로 귀를 간지럽힌다. 실험적 컨셉으로 2집은 중무장되어 있다.

한대수는 한국 모던포크의 대부라는 역사적 중요성과 시대를 앞서가는 음악적 실험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건만 걸맞는 평가에는 본인과 대중 모두 인색했다. 오로지 유신정권만이 그를 금지와 탄압으로 대접했을 뿐이다. 1990년 이후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풍토가 형성되면서 그의 모든 작업이 재평가되는 움직임은 환영할 일이다.

최규성 가요컬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03/1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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