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흑번필승' 후지사와, 원치않은 겨루기

- 오청원의 치수고치기 10번기(13)

제4국은 1942년 2월25일부터 27일까지 두어졌다. 이 대국 직전인 2월7일에 오청원은 결혼식을 올렸다. 부인은 나카하라 가즈꼬 였다. 결혼 후 지금까지 회로하고 있는 오청원 부부는 8세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제결혼이라는 낯선 상황을 잘 극복했다.

오청원에게는 이 대국이 결혼 후 첫 시합이었다. 오청원은 흑차례였으므로 이 바둑을 이기면 아주 우위에 서게 되지만 지면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시합이었다. 큰 자리를 선점한 오청원은 3일째 오후에는 우세를 굳혀 3집을 남겼다. 제4국을 이김으로 해서 3승1패로 앞서나갔다.

제5국은 5월2일부터 시작되었는데, 오청원이 중국대륙에서 돌아온 것은 대국 3일전이었다.

오청원은 피로가 가시지 않은 채 대국에 임했으며 3일간의 격전을 이겨낼 수 있을 지가 근심거리였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5국은 오청원으로 쉽게 기울었다. 다섯판 중 가장 회심의 작품이었다. 오청원은 백을 잡고 완승을 거두었다.

이 무렵 오청원은 신앙에 열중하고 있었다. 시합보다도 오히려 신앙을 더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는 하지만 1938년 요양소에서 퇴원한 이래 병후임에도 불구하고 시합이다, 종교다 하면서 뻔질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병이 재발하지 않은 것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가리가네 8단과의 치수고치기 10번기는 4승1패가 되었다. 만일 6국을 오청원이 이기면 치수를 고치게 되었으나 관계자가 가리가네 선생의 몸과 마음을 염려해서 6국 이후는 중지하였다.

치수고치기의 백미는 무엇보다도 치수가 고쳐지는 것이다. 그러나 잘 된 일이었다. 이미 5승1패만해도 사람들은 오청원이 이긴 것이라 믿고 있을 것이고, 굳이 치수를 바꾸지 않더라도 가리가네 8단이 호선으로 대국을 해준 것 만 해도 고마운 일이었다. 5국까지의 결과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국(1941년 8월5일~7일. 요미우리 바다의 도장) 백불계승

제2국(1941년 10월1일~3일. 요미우리 바다의 도장) 흑6집승

제3국(1941년 12월27일~29일. 요미우리 바다의 도장) 백4집패

제4국(1942년 2월25일~27일. 요미우리 바다의 도장) 흑3집승

재5국(1942년 5월2일~4일. 요미우리 바다의 도장) 백불계승

가리가네 8단과 치수고치기가 끝난 후 1943년 가을 오청원은 기다니와 더불어 8단으로 승단하였다. 오청원의 치수고치기 상대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8단진 중에서는 더 이상 적당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파죽지세로 승단하고 있는 후지사와 쿠라노스케 6단이 뽑히게 되었다.

후지사와 6단은 우리가 알고있는 괴물 후지사와 슈코와는 다른 인물이다. 흉내내기의 명수가 되는 후지사와는 일본기원 최초의 9단이 된다.

후지사와 6단은 당시 흑번필승의 신화를 창조하는 기대주였는데 당시 오청원도 정기 승단대회에서 2번을 싸워 한번도 이기지 못한 강자였다.

치수고치기는 후지사와가 6단 그리고 오청원이 8단이어서 2단차가 나서 문제가 되었다.

후지사와와는 정선의 치수였다. 오청원도 후지사와에게 백을 들고 이긴다는 건 아주 힘든 일이라 썩 두고싶은 마음이 없었다.

후지사와도 7단 승단을 목전에 두고 있었던 관계로 7단이 된 다음 선정선으로 두고싶다고 말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결국 관계자를 설득하지 못하고 선으로 두게 되었다.

당시는 일본의 전황이 불리해 신문의 바둑란도 크게 축소되었다. 여간 인기가 아니고선 신문에 실리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두 승리자의 대결은 몹시 흥미를 끌었다. 두 승리자란 오청원과 비슷한 번기에서 후지사와도 완승을 거두고 있었다는 얘기.


[뉴스화제]



●조훈현 선두권 합류

바둑황제 조훈현이 명인전 리그에서 2연승을 구가하며 선두권을 내달았다. 3월12일 벌어진 제32기 명인전에서 전기시드자인 조훈현 9단은 이 6단에게 196수만에 백불계승을 거두었다. 명인전 리그는 최명훈, 유창혁 등이 공동 2승으로 선두권을 질주하고 있다.


●신예 안영길 2승으로 단독선두

안영길 4단이 제35기 왕위전 본선리그에서 선두로 뛰어올랐다. 안영길 4단은 똑같이 1승으로 선두를 달리던 서봉수 9단을 맞아 백으로 111수만에 불계승을 거두고 2승으로 단독선두에 올랐다. 안영길 4단은 입단직후 19연승을 기록한 뒤 매년 승률이 높아지고 있는 기사이며 작년성적이 57승13패로 다승6위 승률5위를 기록한 신예다.

입력시간 2001/03/20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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