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결혼풍속도] "내 배필은 내가 찾는다"

인터넷 이용 '짝 찾기' 적극적으로 바뀐 결혼관

서울의대를 나온 정상천(33ㆍ가명)씨는 자타가 인정하는 이 시대 최고의 신랑감중 한명이다. 180cm의 훤칠한 키에 귀공자풍의 시원스런 용모. 거기에 아버지는 고위 공무원이고 2남2녀의 형제들도 모두 서울대를 나온 집안이다.

신세대 여성이 선호하는 명문가 신랑감이다.

하지만 정씨는 최근 30여번의 맞선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이렇다할 성과를 낸 적이 없다. 원인은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성격 때문이다. 정씨는 자신만의 여성상을 정해놓고 거기서 조금만 모자라도 퇴짜를 놓는다.

한번은 모든 조건이 거의 맞은 여성을 만났는데 단지 키가 164cm로 1cm가 작다는 이유로 헤어졌다. 정씨는 이상향을 찾기 위해 최근 결혼정보사 VIP 클럽 회원에 가입했다.


인터넷 사교클럽에 가입

이화여대 공대를 나온 주미선(29ㆍ여)씨는 나의 능력을 인정해줄 수 있는 짝을 찾고자 스스로 팔을 걷어 붙인 케이스.

주씨는 대학원을 마치고 현재 대기업 연구원으로 재직중이다. 워낙 실력이 출중해 현재 회사의 지원으로 KIST에서 전자계산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주씨의 어머니는 이화여대를 나왔고, 아버지를 비롯한 나머지 식구들은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주씨는 "집안 배경이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나의 능력과 일을 존중해주고 이해하는 남자면 언제든지 결혼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주씨는 결혼정보회사에 등록을 마쳤으며 인터넷 미팅 사이트에도 자주 들어간다.

신세대의 결혼관이 보다 적극적인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불과 10년여전만 해도 중매결혼 하면 주로 부모님을 통해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결혼정보회사의 활성화와 각종 인터넷 중매 사이트의 등장, 그리고 개방적인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젊은이 사이에서 '내 배필은 스스로가 찾는다'는 풍조가 확산되고 있다.

결혼정보사의 한 관계자는 "불과 2~3년 전만 해도 주로 부모님의 강권으로 회원가입을 했으나 최근에는 문의전화를 한 뒤 혼자 당당하게 찾아오는 젊은이가 크게 늘었다"며 "특히 배우자의 직업이나 학벌 등의 선택에 있어서도 예전과 달리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임한다"고 설명했다.

젊은이들이 이처럼 자신의 배필찾기에 능동적인 것은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도 관련이 깊다.

과거 신부감의 조건은 단순히 학벌, 외모, 가문이 전부였다. 그래서 여성은 좋은 신부의 조건을 갖추기 위해 대학졸업후 요리강습이나 자수학원에서 신부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 남성은 이런 외적 조건 외에도 평생 직장생활을 할 수 있는 전문기술 보유 여부나 취미 활동, 외국어 구사 능력 등 각 방면의 조건을 고려한다.

따라서 여성도 이제는 자신의 지적ㆍ경제적 능력을 개발함과 동시에 이를 적극 홍보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앉아서 짝 기다리는 시대는 지났다"

헤드헌터로 일하며 6,000만원이 넘는 연봉을 받고 있는 강모(28ㆍ여)씨는 "각 직종마다 그 일에 적합한 사람이 있듯 자신에 맞는 배우자가 분명 존재한다.

따라서 선택에 앞서 충분한 만남과 철저한 분석을 해볼 필요가 있다"며 "이제는 여성도 인터넷 교제 사이트나 결혼정보사에 배우자 의뢰를 하는 게 자연스런 일이다. 앉아서 자신의 짝을 기다리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인터넷 결혼 정보 포털사이트인 아이러브웨딩닷컴(www.ilovewedding.com)이 결혼 날짜를 잡은 전국 404쌍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5.8%인 387쌍이 미팅 소개팅 채팅을 통해 부모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배우자를 결정했다고 답했다. 이중 행여 기쁜 나쁠까 봐 궁합도 안 봤다는 커플이 43.8%인 177쌍이나 됐다.

이처럼 젊은이들이 배우자 선택에 적극적인 것은 인터넷 등 다양한 접근매체의 등장 영향이 크다. 얼마전까지도 영화 '접속'스타일의 만남도 신선한 것이었지만 지금 PC통신은 그야말로 골동품이다. 자신만의 캐릭터를 이용하는 아바타 채팅, 얼굴을 보면서 하는 화상 채팅, 인터넷 결혼 중매 사이트 등 다양한 중매 채널이 있다.

지난해 변호사, 회계사, 의사, 컴퓨터 디자이너, 금융전문가 등 각계 남녀 전문직 종사자들과 해외 유학파들이 주축이 돼 결성된 인터넷 사교모임 클럽 프렌즈(www.clubfriends.co.kr)에는 1년 남짓한 기간에 1만명의 회원이 몰려드는 성황을 이뤘다.

이 클럽에 가입하려면 일정한 자격을 갖춰야 하며 인터뷰도 통과해야 한다. 이 사교클럽에서 만나 결혼까지 골인한 커플도 상당수 있다.


경기변화에 따라 남녀회원수도 달라져

경기변화도 배우자 찾기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결혼정보회사 피어리가 지난해 조사한 월별 가입 회원 분석에 따르면 벤처붐이 일고 주가가 급등하던 1~6월 상반기에는 남자회원 가입자 수가 2,834명으로 여성(2,433명)회원보다 많았다.

그러다 3/4분기부터 증시침체와 불황이 시작되면서 7~12월 하반기 남자회원 가입자 수는 2,254명으로 줄어 여성 가입자 수(2,752명)에 역전당했다.

경기가 좋으면 남성 지원자 수가 증가하고 불황이 되면 반대로 여성 가입자들이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피어리의 장성근 홍보팀장은 "호경기 때는 경제력에 자신이 생긴 남성의 지원이 늘고 불경기 때가 되면 '결혼은 평생 취직'이라는 생각을 가진 여성이 경제적 안정을 위해 결혼 상대자 물색에 적극 나서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듀오의 문성훈 팀장도 "국내 경기가 매우 불투명했던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에는 졸업을 앞둔 여대 4학년생이 대거 회원으로 가입했다"며 "이들 중 상당수가 소위 말하는 전문직종을 가진 남성과의 결혼을 원했다"고 전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39) 교수는 "다양한 만남의 채널이 늘어나고 개성이 강조되는 현대의 흐름에 비춰볼 때 적극적으로 배우자를 찾는 경향은 더욱 더 늘어날 것"이라며 "최근 하루 3명이 결혼하고 1명이 이혼하는 최근 추세에 비춰 볼 때 어울리는 짝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가 더 많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영웅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21 19:48


송영웅 주간한국부 herosong@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