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복제 SW 단속] '원칙과 현실' 조화시킬 묘수는?

무차별 단속 불만, "유예기간 줘야" 의견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단속을 둘러싸고 전국이 들썩인다.

특히 상대적으로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여유가 없는 테헤란로의 일부 닷컴 기업들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해가 지면 업무를 시작하는 '부엉이 생활'을 시작했다.

반면 외국 소프트웨어 기업과 유통 업체들은 밀려드는 주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이렇듯 극과 극을 치닫는 현실 속에서 일각에서는 이번 단속이 편향적이고 위법의 소지마저 있다는 소리마저 들린다.

소프트웨어를 불법복제해 사용하는 것은 분명히 범죄행위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 수많은 개발자들은 밤을 하얗게 지새며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를 불법복제하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들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이며, 더 나아가 생존을 가로막는 짓이다. 좀더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면 불법복제로 인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의 개발 의욕이 꺾일 경우 정보통신 산업의 미래는 없으며 더욱 편리한 사회도 기대하기 어렵다.

국내의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인 안철수연구소는 작년 전체 매출액 가운데 15%를 연구개발에 투입하고 있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는 25억달러 이상을 신제품 개발에 사용했다.

만일 불법복제가 더욱 심해져 이같은 소프트웨어 개발 기업이 하나 둘 문을 닫게 된다면 우리는 바이러스의 침입에 속수무책이 될 것이며 방대한 고객의 데이터베이스를 다시 종이에 옮겨 적어야 할지도 모른다.


불법복제율 54%로 OCED국가중 8위

우리 나라의 경우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는 90년대 초반에 비해 현저히 줄어들었다.

1994년 75%에 달했던 불법복제율은 지난해 54%로 크게 낮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 나라의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율은 세계 평균인 38%를 웃돌며 OECD 가입국 중 8위다.

비단 OECD 가입국이기 때문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불법복제는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일부 외국계 소프트웨어 기업은 국내의 대규모 입찰에 참가할 때 미국 대사관을 통해 정부 해당 부처로 공문을 보내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일이다.

또 미국비즈니스소프트웨어연합(BSA) 등의 이익단체도 미국 정부를 등에 업고 우리 정부에 통상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러나 강도 높은 정부의 이번 단속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우선 이번 단속이 지나치게 일부 외국 기업의 이해를 대변했다는 것.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와 어도비(adobe) 등 외국 업체는 단속 시기에 맞춰 정품 가격을 대폭 인상하는 바람에 '시체에 못질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단속 직전인 3월1일부터 윈도2000 어드벤스서버(사용자 25명 기준)의 소비자 가격을 512만 5,000원에서 569만 5,000원으로, 오피스2000 프로와 오피스 2000 스탠다드의 가격을 각각 69만 3,000원에서 76만 3,000원, 43만 4,000원에서 47만 8,000원으로 인상했다.

또 어도비는 그래픽 소프트웨어의 대명사인 포토샵을 단속 직후 85만 2,000원에서 90만 4,000원으로 올렸다.

게다가 외산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는 몇몇 대리점은 가격인상을 노리고 사재기에 들어가 돈을 주고도 제품을 살 수 없는 진풍경이 빚어지고 있기도 하다.

마이크로소프트측은 그러나 "이번 가격 인상은 국내 제품 가격이 다른 나라에 비해 낮기 때문에 전세계적으로 동일한 가격을 적용한다는 본사의 방침에 따라 작년 말부터 계획된 것으로 불법복제 단속과는 무관하다"고 강변했다.


"법집행절차에 문제있다" 이의 제기

단속의 법적 근거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단속을 당하는 기업의 컴퓨터에는 회사의 기밀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아무리 수사기관이라지만 법원의 영장이 발부되지 않으면 컴퓨터를 수색할 권리가 없다. 하지만 단속반은 간단한 통보만 한 후 기업의 컴퓨터를 이 잡듯이 뒤지고 있다.

이러한 무차별 단속 방식에 대해 YMCA,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3월 15일 "이번 단속에 임한 검찰과 정통부의 법 집행 절차에 문제가 있다"면서 "변호사들의 법적 검토가 끝나는 대로 소송 등 강력한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민간단체인 소프트웨어저작권협의회(SPC)의 월권행위는 많은 기업의 비난을 샀고, 급기야 정통부는 12일 "단속권한이 없는 SPC가 자체 단속을 벌여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업계에서는 갑작스런 불법 소프트웨어 단속에 당황하면서도 그 배경에 주목하고 있다. 여러 추측 중 가장 설득력이 있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앞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근절에 대한 의지를 보임으로써 통상 외교에 활용하고자 했다는 주장이다.

미국비즈니스소프트웨어연합(BSA)의 로비설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무역 대표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익단체인 BSA가 로비를 통해 한국 정부에 압력을 가했다는 것으로, 마이크로소프트 등이 조지 부시 새 정권의 탄생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주장은 힘을 받고 있다.

문제는 무엇이 단속의 배경이 됐느냐가 아니다.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의 위법성이라는 '원칙론'과 많은 국내 기업의 피해라는 '현실론' 사이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찾는 일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토끼몰이'식 단속보다는 지속적인 대국민 홍보를 통해 의식의 전환을 이끌어내는 것이지만, 이번 단속으로 적발된 기업에 대해서도 일정 기간의 유예 기간을 주고 그 기간 내에 정품 소프트웨어를 구입하도록 유도하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테헤란 밸리의 한 벤처기업 사장은 "경기 침체가 계속되는 현 시점에서 당장 소프트웨어를 구입할 자금이 없기 때문에 1년 정도 유예 기간을 준다면 많은 기업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프트웨어의 불법복제를 막는 현행 프로그램 보호법은 친고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저작권을 침해받은 기업의 제소가 있어야 수사와 처벌이 이뤄진다.


국내 SW산업 기술자립 시급

업계에서는 또 이번 단속을 계기로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기술 자립이 시급하다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된다. 대안으로 급부상하는 것이 리눅스 프로그램이다.

3월 15일 정통부 주최로 열린 리눅스 활성화를 위한 세미나에서 소프트웨어 불법복제 해소 방안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고려대학교 유혁 교수는 소프트웨어 불법복제의 원인에 대해 "독과점적으로 형성된 소프트웨어의 높은 가격과 실효성이 없고 사후 대책이 부족한 정부의 단속"을 지적하면서 "공개 소스인 리눅스를 통해 이 문제를 상당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안 소프트웨어는 속속 나오고 있다. 블법복제 비율과 기술 종속 도가 가장 심한 사무용 응용 소프트웨어의 경우, 리눅스뿐 아니라 윈도, 솔라리스 등 대부분의 운용체계에서 실행되면서 파일 호환성까지 갖춘 제품이 곧 출시된다. 올해 가을 첫 선을 보일 썬마이크로시스템즈의 스타오피스가 그것이다.

이 제품도 대부분의 소스코드가 공개돼 누구나 유사한 제품을 만들 수 있다. 국내에서 이를 응용한 제품을 준비하고 있는 미지리서치의 조준 부사장은 "아직까지 리눅스를 이용한 애플리케이션(프로그램)이 부족하고 한글화 문제가 걸려 있지만 스타오피스 한글판의 출현으로 상황이 반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동준 전자신문 기자

입력시간 2001/03/2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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