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현의 영화세상] 부산과 '친구'

영화 '친구'(감독 곽경택)는 부산이 아니었으면 정말 나오지 못할 영화다. 마치 '모래시계'가 광주란 무대가 아니었다면 재미없는 드라마가 될뻔 했듯이.

'괘안타, 우린 친구 아이가'라는, 투박하고 함축적인 준석(유오성)의 한마디로 모든 것은 이해된다. 그와 단짝이던 주먹 동수(장동건)가 적이 돼 나타나 자기 부하들을 죽여도, 옆길로 빠지려는 것을 우정으로 막아준 범생인 상택(서태화)이 몇년 동안 소식을 끊었다 나타나서 "미안타"해도 준석은 서운한 마음을 이 한마디 말로 털어버린다.

그래서 '친구'는 남성영화가 됐고,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부산'이 됐으며, 한편의 가슴찡한 부산판 '모래시계'가 됐다.

영상산업이 21세기 전략산업이자 문화의 주체가 된다는 생각에 그동안 영상도시를 선언한 곳은 한둘이 아니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생색도 나고 '예술을 사랑한다'는 이미지도 높이는 일석이조를 노려 영화제를 개최하고, 영화사를 끌어들이는데 앞장섰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영상산업에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부천 판타스틱영화제, 전주 국제영화제, 춘천 애니메이션영화제, 수원 영상테마파크 등.

부산도 예외는 아니다. 가장 먼저 국제영화제를 열었고 영화도시로의 이미지를 심기에 노력했다. 사실 우리나라만큼 영화촬영을 하기 힘든 곳도 없다. 자국영화 시장점유율이 30%를 넘는 나라면서 영화촬영에 대한 정부나 기업, 국민의 협조의식은 수준 이하다.

서울의 경우 조그만 길도 통제하기 어렵고, 겨우 경찰의 허가를 받아도 주민에게 사정사정해야 겨우 촬영을 할 수 있다. 군부대를 찍으려면 보안을 이유로 거절당하고, 경찰서를 이용하려면 시나리오를 보고 "이미지가 나빠진다"며 손을 내젓는다.

오죽하면 '공동경비구역 JSA'를 찍기 위해 판문점 세트를 수억원을 들여 만들어야 했을까. 좁고 복잡한 홍콩은 영화촬영을 한다면 시민과 관계당국 모두 불편함을 감수하고 기꺼이 협조하고 통제에 따르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그러나 부산만은 다르다. 시 당국이 앞장서 '부산 영상위원회'를 조직해 영화제작에 관한 지원을 실천한다. 제작비 투자는 물론 촬영에 필요한 모든 편의를 제공한다.

'리베라메'는 낡은 아파트를 화재현장으로 쓰게 했고, '천사몽'은 부둣가를 활극장으로 허락했다. 촬영 헬기가 부산 상공을 자유로이 난다.

'친구' 역시 그랬다. 고교생이 된 4명의 친구가 복잡한 자갈치 시장, 범일동 뒷골목과 굴다리 시장, 영도공원을 마음대로 질주했다. 상인들과 부딪치고 수산물이 길에 나뒹굴었지만 부산시민은 참아주었다.

부산고등학교는 동수가 쇠파이프로 유리창을 마구 깨뜨리는 폭력을 허락했다. 감독의 모교란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친구'에서 부산은 중요한 주연이 됐고, 부산이란 도시가 가진 특성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

지금도 부산에서는 '나비',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부산이야기' 등이 촬영되고 있다. 수가 점점 늘어나 한국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그중에는 '친구'처럼 꼭 부산이 무대여야 하는 영화도 있지만 다른 곳에서 촬영하기 어렵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부산을 선택한 영화도 있다. 형편없는 실패작도 있고, 성공작도 나온다.

그런데 만약 정작 촬영할 곳에 제대로 가지 못해서 부산을 선택한 것이라면 서글픈 일이다. 영화는 감독과 배우들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이대현 문화부 차장

입력시간 2001/03/21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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