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내공 쌓으며 '큰 정치' 준비

당 4역 중책, 리더그룹으로 정치적 성장 거듭

최근 한 여성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여성 네티즌은 여성 대통령 후보 1위로 민주당의 추미애 의원을 뽑았다.

한명숙 여성부 장관은 물론이고 지역적 기반과 대중적 파워를 지닌 한나라당의 박근혜 부총재마저 제친 결과여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뿐 아니다. 한 일간지의 여론조사에서 '다음 대통령감이 누구냐'는 질문에 그는 박근혜 부총재와 함께 10위권에 들었다. 15대 때만 해도 '똑똑하고 당찬 여성정치인'으로 평가에 그치던 그가 재선의원이 된 지금은 리더그룹으로 부상할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자치단체장으로 능력 인정받으면 대권 도전?

최근의 그의 행보를 보면 이 같은 조사결과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는 현재 민주당의 당 4역중 하나인 지방자치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같은 발탁은 단지 그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려를 받은 케이스라고 보긴 어렵다. 여성에게 당4역의 중책을 맡긴 전례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의 발탁은 국회 행자위에서 활약한 능력을 우선했고, 지방자치제도 개선에 대한 그의 열정을 높이샀기 때문이다. 그의 이전 당직은 김대중 대통령과 당을 잇는 총재 비서실장. 말 그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아가며 착실히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추 의원은 이 같은 주변의 평가에 대해 다소 부담감을 느끼는 듯했지만 피해가려 하지도 않는다. 여성 대통령 후보 1위로 뽑힌 것에 대해 묻자 "여성 대통령을 정치적 목표로 가지고 있다고 하기보다는 먼 안목으로 정치를 제대로 하는 정치인으로 크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이 정치 진입장벽을 깨뜨리고 활동하기는 어렵지만 여성을 내색하거나 애교를 떠는 것 없이 스스로를 배양시키고 내공을 쌓아가며 크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갑자기 여성 대통령이 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여성 정치인이 센세이셔날한 것으로 정치적 업그레이드가 되어선 안되고 국회의원으로서 좋은 자질로 평가 받도록 노력하고 이를 발판으로 또다른 도약을 하면서 '여성이니 의심스럽다'는 선입관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대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논리다.

추 의원은 이 같은 나름의 논리를 바탕으로 차분히 미래를 준비하며 야무진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는 "우선 광역자치단체장 정도는 도전하고 싶다"면서 "특히 서울시장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물론 내년 지방선거가 목표는 아니다. 차차기인 2006년 지방선거가 그의 머리 속에 있는 시간표다. "그런 기회를 통해 외부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는다면 여성이라고 대통령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의 대처 수상은 그가 벤치마킹할 대상이다. 그는 "당수 자리를 스스로 개척한 것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내각제 국가에서 여성 당수가 된 것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순간적인 대중적 인기로 표를 얻는 것보다도 더욱 의미가 크다는 것.

유능한 인재들이 대처 수상을 따르고 동료도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박근혜 부총재와 비교급으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는 듯했다. "신뢰감을 주면서 정치적 폭과 넓이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여성 정치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간 박 부총재에 대해 높게 평가해오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둘밖에 없는 여성 지역구 의원이라는 점이 경쟁심을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

지난해 최고위원 경선 때 추 의원은 "나는 대구 세탁소집 둘째 딸로 태어나 여성으로서는 16번째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판사로 일해왔다"면서 "나는 어느 당의 여성 부총재처럼 과거의 후광을 업고 나서지 않겠다"고 노골적으로 비교우위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이 같은 생각이 조금씩 바뀌고 있는 듯하다. 추 의원은 "(박 부총재를)처음 본 느낌하고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최근 박 부총재가 부쩍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데 정치적 타이밍이 잘 맞는 등 정치감각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의 부시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방미할 때 비행기 안에서 만났지만 깊은 속이야기는 하지 못했다고 전하는 추 의원은 "차차 기회가 되면 박 부총재와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막강 재선파워그룹의 한 축 담당

추 의원의 뒤에는 '무서운 재선의원 그룹'이 존재한다. 정동영 최고위원을 필두로 정세균 천정배 신기남 정동채 김영환 김민석 의원 등을 지칭한다. 이들은 지금 민주당에서 중요 직책에 포진해 막강한 '재선파워'를 과시한다.

추 의원 역시 이 그룹의 한 축을 담당한다. 서로간에 동지이자 협력자 관계로 민주당에서 미래의 꿈을 키우는 의원들이다.

정동영-김민석- 추미애 3인이 최고위원선거에 출마해 '재선바람'을 일으켰고, 나아가 최근 민주당 총무경선에서 천정배 의원을 적극 지원해 당선시키지는 못했지만 당초 예상을 깨고 돌풍을 일으켰다.

추 의원은 "재선그룹은 야당 시절인 15대 때 들어왔기 때문에 정치적 신념이 확고한 사람"이라며 "실천적 자세를 가지고 사회를 변혁하기 위해 모인만큼 꽤 괜찮은 사람의 집합체"라고 평가했다.

추 의원은 "최고위원 경선에도 이런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뛰어들었다"면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지만 당내에 상당한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재선 그룹이 선의의 실력경쟁을 하고 협력관계를 강화해나갈 때 자신과 당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추 의원은 "비록 그런 것이 기반이 되어서 당4역인 지방자치위원장이 되었지만 그런 신선한 이미지 가지고서만은 계속 버틸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의정활동 등을 통해 실력(그의 표현에 따르면 '내공'이다)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추 의원이 정치적으로 성장하기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벽이 많다. 우선 두터운 남성정치의 장벽을 넘기도 쉽지 않다. 그가 고개를 젓더라도 지금까지 정치적 성장과정에서 여성이라는 프리미엄이 작용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

또 지금까지 그는 유능한 참모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러나 참모가 아닌 정치적 리더로서의 여성은 현실정치에서 장점보다는 단점이 될 가능성이 많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오는 인지도 등은 지역구 여성의원이라는 희소성과 함께 그가 수년간 땀을 흘린 의정활동에 대해 나름의 평가를 받은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그가 '머리'와 '능력'을 인정 받았다고 해도 정치적 포용력에 대해선 스스로 검증을 해내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이다. 종종 느껴지는 여성 특유의 날카로움도 그가 다듬어야 할 부분으로 꼽힌다.

추 의원은 홈페이지에서 자신을 '당당함이 아름다운 정치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 '세상을 바꾸자'고 제안한다. 그가 바꾸고자 하는 세상의 한 부분에는 아마도 남성 주도의 정치권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는 "여성이니까 여성 정치인이라고 보는 것은 기분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능력은 보지 않고 여성이라는 껍데기만 보는 것은 단연코 거부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표현처럼 그는 지금 '세상을 바꾸는 힘찬 발걸음'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그는 한국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박근혜 부총재와 함께 가장 근접해있는 위치에 서 있다.

이태희 정치부 기자

입력시간 2001/03/28 15:33


이태희 정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