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시, 잔치는 끝났나?

급격한 거품 소멸, 최악 불구 희망적 시각 많아

뉴욕 증시가 바로 눈 앞에서 급격하게 거품이 빠지고 있다. 얼마나 나쁜가는 우리의 태도에 달려있다.

우선 조금 좋은 뉴스쪽부터 보자. 폭락장세에도 일부 주식은 여전히 잘나간다.

언론의 호들갑과 속락의 두려움 속에서 각종 펀드는 평균적으로 지난해 13%가량 빠졌다. 그러나 그 기간 필립 모리스나 듀크 에너지와 같은 주식에 투자했다면 상당히 많은 돈을 벌었다.

물론 2년 전에 그 주식을 보유했다면 그야말로 죽음이다. 이같은 약세장이라면 투자가들이 모두 껍데기를 홀딱 벗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실수다.

경제여건은 아직 괜찮은 편이다. 올해 들어 일자리 창출은 2000년 12월보다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고, 인플레 징후도 없으며 금리는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가정의 부동산 및 자동차 대출금 부담은 줄어들었다.

수십만명의 투자가들은 여전히 하이테크 주식에 매달려있다. 하이테크주는 지난 수년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떼돈을 만들어준 '마술사'와 같았다. 주가는 최소한 3배 뛰었고 투자가들은 앞으로도 이런 장이 없을 것이라며 휘파람을 불었다.

1997년부터 2000년 3월까지 무려 1,120억 달러가 뮤추얼 펀드에 편입됐고, 그 돈은 야후 등으로 몰렸다. 같은 기간 개인 투자가들도 520억 달러로 585개 주식을 사들였다.

거래금액은 어림잡아 그전 8년동안 거래된 총액의 두배나 된다. 하이테크 주식(나스닥)의 시가총액은 최고조에 올랐던 1년 전에는 S&P500 지수 편입 주식의 35%에 달했다. 1995년만 해도 12%에 불과했다.


소비심리 회복이 경기회복의 지름길

대박을 터뜨렸던 투자가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잔치는 끝났고, 이제는 손을 털 때"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뉴저지의 에너지 분석가인 조세 아구아요씨도 그런 사람이다. 그는 루슨트와 월드콤에 투자해 수천 달러를 잃었다. 다시는 증권투자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한다. 보통 사람들은 대개 그렇다. 아구아요씨처럼 날려버린 증시의 돈은 약 4조 달러에 이른다.

그것이 경기둔화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지난해 봄 6%에 이르렀던 경제가 오늘날에는 제로 상태에 머물고 있다.

아구아요씨 같은 보통 사람은 이제 주식보다는 스타킹이나 신발, TV 등 소비재를 사는 게 중요하다. 증시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반 소비자의 소비는 미국 경제의 버팀목이다.

경기가 침체국면에 들어갔다는 것을 믿지는 않지만 경제란 하락국면에 더욱 취약하기 마련이어서 소비자의 소비는 때에 따라 경기추락을 막아주는 핵심요소가 된다.

스티브 영 아메리카 캐피탈 매니지먼트 뱅크의 자산국장은 "경기회복에 뭔가 도와주고 싶다면 무엇이든 사라. 그것도 두 가지, 세 가지를 사면 더욱 좋다"고 충고한다.

경기둔화와 증시의 하락장세에는 경제의 펀더멘틀(기초) 못지 않게 심리적인 요인도 중요하다. 언론들은 어느 정도 비관론에 기름을 끼얹기 마련이고, 지금도 그런 상태다. 정치권은 경제의 어려움을 놓고 서로 인기를 얻기 위해 투쟁중이다.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인 딕 아미 의원은 부시 행정부가 계획중인 감세의 규모를 1조6,000억 달러에서 더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증시 하락장에서는 그 재원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민주당측은 부시 행정부의 태도를 비난하고 있다. 톰 대슬 상원 원내총무는 부시와 그의 보좌관들이 지난해 11월부터 줄곧 "경제가 어렵다"는 발언을 일삼아 경기둔화를 부추겼다고 불평한다.

미국 경제가 침체기에 들어섰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증시가 수십년만에 최악의 상태이라는 것이다. 다우지수나 S&P500지수, 나스닥 지수 모두 1년전의 최고치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나스닥은 63%나 폭락했다.

최근에는 다우지수가 무려 821포인트(8%)나 빠졌다. 그 여파로 필립 모리스 등 안정적이던 주식까지 흔들렸다. 투자가들은 마지막 위닝 칩(승부수 주식)마저도 던져버리려고 한다.

그러나 뉴욕 증시가 1987년의 악몽을 재연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본다. 주식매도는 지금까지 점진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붕괴가 아니라 순환장세의 성격이 강하다. 앞으로의 상승장을 대비한 '바닥 다지기'의 성격이다.

1950년대만 해도 주식에 투자하는 미국 가정은 전체의 4%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절반 이상이다.

그리고 전체 자산의 20%가 주식에 들어있다. 주식이 떨어지면서 1945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 가정의 순자산이 줄어들었다. 지난 6개월간 일반인이 보유한 주식과 펀드 가치는 2조 달러나 줄어들었는데 그 규모는 임금 수입과 거의 같다.


바닥세에 가까운 증시

증시에서 허공으로 날아가버린 돈은 투자가들이 번 돈이다. 카지노판에 비유한다면 딜러의 돈이다. 나스닥이 2년6개월만에 최저치로 떨어졌으므로 딜러의 돈은 이제 바닥이 났다. 이제부터 잃는다면 투자가의 주머니 돈이고 개인적으로 일한 대가로 벌어들인 돈이다.

증시와 경기의 관계에서는 증시가 한발 앞서간다. 소득감소와 인원삭감, 나쁜 뉴스 등은 나올 만큼 나왔다. 더 나쁜 뉴스가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에 이르면 증시는 더 나빠질 수 없다는 바닥을 기대하게 된다.

바닥은 언제인가? 많은 사람은 바닥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분석가는 "경제 전체는 신경제 만큼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실제로 그런 징후도 있다. 소비심리가 살아나 자동차와 주택거래가 늘어나고 7년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집을 리파이낸싱하고 있다. 에너지 가격은 안정적이고 실업률은 4.2% 수준에 머물고 있다. 더욱이 주식펀드에는 2조 달러 정도가 증시가 되살아나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금리인하의 효과는 언제 나타날까. 1921년 이후 연속해서 3차례 금리를 인하한 것은 13번 있었다. 그중 12번은 마지막 금리인하 이후 1년 뒤 다우지수가 올랐다. 평균하면 25%정도 올랐다. 1971년 나스닥이 문을 연 뒤 3차례 연속 금리인하 이후 1년 뒤 주가가 꺾인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수익이 엄청났다.

올해 4/4분기에는 경제가 되살아날 것이라고 한다. 증시를 보면 많은 주식이 저평가돼 있다. 사람들은 아직도 기업의 분기 수익을 보면 하이테크 주식은 비싼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블루칩(초우량주)에 투자하려면 단기 수익에 집착할 게 아니라 5년 정도의 장기 성장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진희 주간한국부 차장

입력시간 2001/03/28 20:21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