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카페(50)] 미르호의 마지막 소망

발사 직후 공중폭발한 미국의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건이 있은지 꼭 3주일 뒤인 1986년 2월20일 소련이 우주정거장 미르호 발사에 성공한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미ㆍ소 우주경쟁사에 상징적인 획을 긋는 일이었다. 더구나 미국의 라이벌 우주정거장 스카이랩이 1979년 호주에 추락한 것과는 달리 미르호는 무려 15년 동안이나 지구궤도를 맴돌았다.

축구장 크기의 반만한, 길이 45m, 넓이 29m, 무게 130t의 미르호는 그동안 러시아 우주비행사 42명과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사 7명 및 영국ㆍ프랑스ㆍ독일 등 104명의 우주인이 방문해서 미세중력연구, 생명과학연구 및 지구관측, 희귀물질 생산 등 자그마치 1만6,500건 이상의 실험을 수행했다.

우주비행사 세르게이 아브데예프는 1992-1999년 사이 747일 동안 최장기 우주비행 시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래서 미르호는 사실상 소련 우주과학의 총아요, 하늘에 떠있는 러시아의 자존심이었다.

그러기에 미르호의 폐기에 대하여 러시아 국민의 아픔이 크고, 상대적으로 미국에는 많은 긍정적인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당초 5년간 운용할 계획으로 발사됐으나 최근까지 사용하는 바람에 예정된 수명을 넘겨서 선체의 70% 이상이 부식된데다 산소공급 중단, 가스누출, 우주화물선과의 충돌 등 1,500번 이상 고장을 일으켰다.

또 러시아는 재정악화로 연간 운영비 2억5,000만 달러의 확보가 어렵기 때문에 폐기한다는 최종 결론을 지난 1월에 내리게 되었다.

이로서 러시아는, 미국과 러시아를 포함 16개국이 참여하는 국제우주정거장(ISSㆍ2005년 완공)의 일원으로 전락했다.

미르의 마지막 승무원 세르게이 잘요틴이 "15년 간의 영광의 막을 내렸다"고 슬퍼한 것처럼 이제 우주과학의 중심은 NASA로 넘어간 셈이다.

그런데 미르호에 대한 러시아의 마지막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르호에 최초의 우주관광객을 보내서 실질적인 우주관광시대의 신호탄을 날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인 백만장자 데니스 티토(60)씨는 미르호 관광을 위해 지난해 러시아측과 2,000만 달러에 10일간의 미르호 관광계약 맺었다. 예정했던 출발일은 4월30일.

그런데 한달을 견디지 못하고 미르호는 운명을 달리해야 했다. 러시아인의 아픔이 큰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기도 하다.

그래서 러시아는 티토씨의 관광지를 그와의 합의아래 부득이 ISS로 변경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NASA가 최근 제동을 걸고나서 문제가 되고 있다.

NASA가 주장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티토씨가 충분한 위기훈련을 거치지 않은 미숙련 승무원이므로 돌발사건에 대응할 능력을 없고 지속적인 감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뿐만 아니라 ISS의 전반적인 보안체제를 흩트리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최초의 우주관광객 유치에 대한 미국의 강한 질투가 근본적인 이유일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감히 한국이 흉내낼 수도 없는, 그래서 얄밉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 짝이 없는 경쟁심이다.

미국은 계약이 체결된 뒤에야 불만을 표출했고, 현재 ISS는 러시아의 '즈베즈다'와 '자랴', 그리고 미국의 '유니티'등 3개의 주요 부분만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러시아가 만든 부분에 누구를 보낼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미국의 허가를 필요치 않는다는 것이 러시아의 주장이다.

여하튼 인간이 달나라에 착륙한지 40년이 넘은 지금, 한국인으로서는 아직 우주시대를 실감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분명 우주관광시대는 눈 앞에 열리고 있다. 그래서 전직 NASA 엔지니어였던 티토가 과연 최초의 우주관광객이 될 것인지, 그 기다림이 흥분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이원근 과학커뮤니케이션연구소장

입력시간 2001/03/29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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