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현의 길따라 멋따라] 태백시 통리협곡

로키산맥에서 발원해 미국의 중서부를 적시고 캘리포니아만으로 흘러드는 콜로라도강. 그 강의 허리에는 거대한 자연의 역사(役事)가 있다. 그랜드 캐니언이다.

총길이 450㎞, 평균 깊이 1,600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협곡(峽谷)이다. 한국에는 그와 같은 협곡은 없을까. 물론 있다.

강원 백두대간의 한 가운데에 있는 통리협곡이다. 그랜드 캐니언 처럼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생성과정이나 지질학적 특성이 비슷하다.

삼척시 오십천의 상류 물줄기가 1만여 평의 고원을 지나가며 깊은 골을 파 놓았다. 길이는 약 10㎞, 가장 깊은 골은 270m에 이른다. 이름은 태백시 통리에서 따왔지만 행정구역상 위치는 삼척시 도계읍 심포리 일대이다.

찾아가는 길은 아주 쉽다. 태백시 통리역 앞 삼거리에서 원덕 쪽 427번 지방도로를 타고 약 600m쯤 진행하면 왼쪽으로 미인폭포라는 입간판이 나온다. 이 미인폭포가 협곡의 시발점이다.

일반적인 산행은 오르막길이지만 협곡 탐방은 내리막으로 시작된다. 몸이 쏟아질 듯 가파른 비탈에 지그재그로 길을 냈다. 직선으로 200여m에 불과한 거리이지만 굽은 길을 가느라 10여 분이 걸린다. 폭포의 우람한 낙수소리가 들릴 즈음 혜성사라는 자그마한 암자가 나타난다. 혜성사를 돌아 언덕을 조금 내려가면 미인폭포이다.

폭포 앞에 서면 흔히 볼 수 없는 예사롭지 않은 풍광이 앞을 막는다. 물줄기 아래쪽으로 펼쳐진 산기슭은 수직의 붉은 바위 벽. 나무는커녕 이끼조차 끼지 않은 발가벗은 바위벽은 시루떡을 잘라 놓은 것처럼 지층의 구분이 선명하다. 학자들은 중생대 백악기(약 1억3,500만~6,500만년 전)에 만들어진 퇴적암으로 분석하고 있다.

삼척의 도계 지역은 대표적인 무연탄 산지. 남한에서 유일한 고생대 지층이다.

그러나 미인폭포 일대는 단단한 고생대 지층에 둘러싸인 퇴적층. 그래서 다른 곳보다 덜 단단해 풍화와 침식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미인폭포의 풍취도 남다르다. 이름만으로 작고 아담한 폭포를 상상했을 터. 그러나 미인폭포는 30m 높이에서 거의 수직으로 내리 꽂히는 우람한 폭포이다. 두 번이나 결혼을 했지만 두 남편을 모두 저 세상에 먼저 보낸 여인이 비관해 몸을 던졌다는 전설을 갖고 있다.

폭포 아래쪽으로 흩어져 있는 바위 덩어리들도 신기하다. 누군가 철거된 건물에서 나온 콘크리트 덩어리를 몰래 버린 것 같다. 굵고 잔 자갈이 잔모래와 함께 굳어 있다.

퇴적암의 한 종류인 역암이다. 자갈이 해안이나 강바닥에 쌓여 있다가 점토질이나 석회질과 뒤엉켜 굳어진 것이다.

본격적으로 협곡에 들어가는 것은 암벽등반에 능한 전문가들만 가능하다. 일반여행객은 미인폭포 근처의 모습에 만족해야 한다. 협곡의 시원한 조망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가 또 한 곳 있기는 하다. 혜성사를 지나면 작은 철다리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왼편 계곡으로 빠지는 소로가 나 있다. 10여 m를 내려가면 커다란 너럭바위가 있는데, 그 위에서 협곡의 모습을 멀리까지 바라볼 수 있다. 그러나 그 바위 바깥은 까마득한 낭떠러지. 허약자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절대 불가이다.

통리협곡은 오래 쉴 수 있는 관광지가 아니다. 승용차 5대 정도를 세울 수 있는 작은 주차장, 쓰레기 컨테이너박스 1개가 이 곳 편의시설의 전부이다. 흔한 커피 자판기조차 찾아볼 수 없다. 지나는 길에 한 번 들르는 여행지로 제격이다.

권오현 생활과학부차장

입력시간 2001/04/0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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