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전망대] 4월 경기 여전히 불투명

꽃피는 4월이다. 영국의 시인 T S 엘리오트는 '황무지'에서 잔인한 4월을 노래했고 요절한 저항시인 신동엽은 '껍데기는 가라'에서 "4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고 외쳤다.

열정과 희망, 민주와 자유, 혁명과 변화를 꿈꾸게하는 계절이다. 하지만 경제여건은 봄날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아직 아침이면 짙은 서리가 내리고 난데없이 눈발이 날리는 요즘의 괴팍한 날씨마냥 '경기 지형(地形)'은 울퉁불퉁하기만 하다.

우선 대외환경의 호전조짐이 없다. 미국의 경우 소비자 신뢰지수가 예상보다 좋게 나오는 등 '굿 뉴스'도 적지않지만 세계 최대의 광통신 장비업체 노텔 네트웍스를 비롯한 대표적 기술주의 실적악화 우려가 현실화하고 인텔을 비롯한 대표적 성장엔진이 잇따라 수천명에서 수만명까지 감원하는 '배드 뉴스'가 홍수를 이룬다.

지난해 4/4분기 성장률이 1%에 그치는 등 앨런 그린스펀 FRB의장이 우려한 제로성장도 현실화하고 있다.


미 일 경기침체, 한국에 깊은 상처

일본발 '3월 경제위기설'은 일단 기우로 끝났지만 10년동안 이어진 장기불황의 그림자는 여전히 걷히지 않고 있다. 제로금리에도 불구하고 국민과 기업이 주머니를 열지않아 내수는 찬바람이다.

일본 정부의 해법은 수출을 통한 경기부양, 곧 엔화의 평가절하를 통한 제조업 가동율 제고로 고용을 확대하고 소비를 진작시키는 것이지만 정치적 리더십의 결여로 정책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의 경기 둔화ㆍ침체로 한국 경제만 멍들고 있다. 30개월만에 달러당 125엔을 훌쩍 넘어선 엔ㆍ달러 환율의 급등으로 인해 원ㆍ달러 환율이 마침내 심정적 마지노선인 1,350원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엔ㆍ달러 환율이 130엔을 뛰어넘는다는 경고도 많아 원ㆍ달러 환율도 1,400원대에 접어드는 것도 대비해야할 시점이다. 특히 역외선물환 시장에선 투기세력까지 가세, 환율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수출 측면에서는 환율이 오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3개월째 억제선(4%)을 넘어선 물가엔 치명적이다.

특히 물가인상 요인이 민간소비나 투자 등 수요부문이 아니라 공공요금 인상, 등록금 등 교육비 상승, 농축산물 가격 인상 등에 따른 것이어서 정책수단을 동원하기가 한층 어렵다. 원화가치의 하락은 한달의 시차를 두고 물가에 반영된다.

2월 이후 환율이 줄곧 오르는데도 서로 눈치를 살펴왔던 정유사가 4월1일부터 기름값을 올린 것은 한 예다.

재경부는 성장률이 4% 아래로 떨어질 것을 우려, 재정ㆍ금융ㆍ환율 등 모든 정책수단을 총동원해 경기를 부양해야한다는 입장이지만 통화안정을 책임진 한국은행은 물가불안을 이유로 콜금리 인하에 난색를 표시하고 있다.

얼마전만 해도 6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에서 콜금리가 최소한 0.25% 포인트 떨어질 것으로 예상됐으나 지금은 상황이 180도 바뀌었다.

안전핀이 뽑힌 최대의 뇌관, 현대건설도 금주의 핫이슈다. 1조4,000억을 출자전환하고 1조5,000억원을 증자 등으로 추가지원한다는 채권단의 입장은 결정됐지만 채권회수방안이나 정확한 부실규모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정부와 채권단은 현대건설을 청산할 경우 13조6,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천문학적 지원의 불가피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현대건설의 수익구조에 대한 검토나 경영진의 책임에 대한 언급이 없어 뭔가 찜찜하다.

정부와 채권단은 자신이 이미 '양치기 소년'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번 지원으로 현대건설이 확실한 회생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는 이들의 주장이 다시금 식언으로 끝난다면 시장의 인내의 한계에 도달할 수밖에 없다.


이번 주에는 재계에도 새로운 변화가 많다. 현대차 그룹이 5위 그룹으로 새롭게 등장했고, LG는 지주회사 체제를 위한 첫 걸음으로 LG화학을 세 토막으로 나눈다.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에 이어 큰 이권사업으로 꼽히던 TV홈쇼핑 신규사업자 3곳이 선정되면서 유통업계에도 새 바람이 예상된다. 탈락한 '유통 공룡' 롯데의 진로설정도 지켜볼 대목이다.

사상 첫 금융지주회사인 우리금융지주회사도 2일 출범했다. 이 회사는 자본금이 3조6,373억원인 대형 금융기관으로써 한빛은행 78.8%, 평화은행 6.8%, 경남은행 6.8%, 광주은행 4.7%, 하나로은행 2.9%의 지분으로 구성됐다.

차관급 인사까지 단행돼 경제팀이 새로운 진용을 정비했다. 새 사람들은 일단 적극성과 전문성면에서 모두 평가받는 사람이다. 수출과 수입이 함께 줄어들고 설비투자가 제자리 걸음을 하는 등 국내 경제가 일본식 불황으로 접어들고 있는 요즘, 이들의 어떤 활약을 할지 기대와 우려가 교차된다.

이유식 경제부 차장

입력시간 2001/04/04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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