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어디로?] MH는 무엇으로 사는가

5대 주력업종 모두 계열 분리, 껍데기만 남은 현대그룹

지난 해 여름부터 시작된 현대그룹의 핵분열로 정몽헌 회장에게 남은 것은 그동안 그룹의 비주력계열사로 여겨졌던 것들 뿐이다.

4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30대 기업집단 지정현황을 살펴보면 현대자동차를 제외한 현대그룹의 자산규모는 53조원에 달하지만 자산규모 7조원의 현대건설과 자산규모 12조원의 현대중공업이 계열분리되고, 현대전자와 금융 계열사들의 매각이 이뤄질 경우 현대그룹의 자산규모는 크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현대건설은 3월 29일 주주총회를 앞두고 영화회계법인의 실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사실상 현대그룹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은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판정난 현대건설을 살리기 위해 2조9,000억원의 출자전환을 포함, 6조원 가량의 지원을 결정한 상태다.

이에 따라 정몽헌 회장은 현대건설의 보유지분을 완전소각하고 경영권에서도 손을 떼야 한다. 현대그룹의 모기업이었던 현대건설은 이제 현대그룹의 일원이 아닌 사실상의 공기업으로 변신할 전망이다.


전자 금융계열사 독립 움직임

현대전자는 현대건설과 달리 회생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올 6월말까지 현대에서 분리한다는 계획아래 현재 시티은행을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주간사로 삼고 환골탈태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

현대전자는 올해의 자금부족 규모가 1조5,000억원을 넘고 있어 이를 메우기 위한 외자유치 및 증자를 고려하고 있다.

박종섭 사장도 정몽헌 회장과의 '정'보다는 '회사 살리기'에 주력하고 있는 만큼 현대전자의 계열분리는 시간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회사이름을 현대전자에서 현대하이닉스로 바꾼 것도 이러한 '독립'움직임의 하나로 해석되고 있다.

금융계열사의 경우도 현대전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자금난으로 홍역을 치렀던 현대투자신탁증권과 현대증권, 현대투신운용 등 금융계열사는 미국의 투자그룹인 AIG로부터 10억달러의 외자유치 방식으로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AIG가 정부에 공동출자 이외의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해 지루한 협상이 계속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현대그룹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전자 금융 건설 등 현대의 주력이 공기업화 또는 매각될 운영에 처하면서 결국 정몽헌 회장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계열사는 현대상선,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종합상사, 현대택배 뿐이다. 그나마도 수익성을 따져보면 재미가 없는 분야들이다.

이들 대부분이 자동차, 중공업, 전자로 분류되는 예전 현대그룹 주력사업들의 지원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자동차가 떨어져 나가고 중공업도 올해중 계열분리가 완료되면 이들의 수익성은 크게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먼저 가장 타격을 입는 곳은 다름아닌 현대종합상사. 최근 대기업들이 무역관련 업무를 사내에서 처리하면서 종합상사의 위상이 크게 흔들리고 있는 가운데 안정적인 물량을 공급했던 자동차, 중공업과의 결별은 현대종합상사의 수익원을 고갈시킬 정도의 엄청난 파급효과를 몰고 올 전망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의 경우 현대종합상사 매출액의 40%를 차지했지만 이미 지난해부터 현대자동차 내부적으로 수출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중공업의 경우도 매출의 20~30%를 차지하고 있다.

중공업의 경우 계열분리 이후에도 현대종합상사를 통해 수출업무를 맡길 가능성이 있지만 비용 및 효율측면을 강조할 경우, 자체적으로 이를 처리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최악의 경우 현대종합상사의 수익은 예전에 비해 70%이상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현대종합상사가 잇단 금광발견 소식을 내놓기는 하지만 이는 '몸부림'차원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궁극적인 이유가 금광개발을 통한 수익창출보다는 '주가 띄우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올 연말에 돌아올 약 8,00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를 돈이 아닌 주식으로 갈음하기 위해서는 현재 주당 2,000원선인 주가를 최소 8,000원이상으로 끌어올려야 투자자들이 환매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남은 계열사 경영도 불투명

13년 연속흑자를 기록하며 탄탄한 재무구조를 자랑했던 현대상선도 최근 금강산 관광사업의 막대한 적자로 인해 자금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상선이 최소한의 영업수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간 5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실어 날라야 하지만 지난해 금강산 관광객 수는 30만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유람선을 운영하면 운영할수록 상선의 적자는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 현대자동차와의 계약이 지속되고 자동차 수출량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현재의 대북사업에서 손을 떼지 않는 이상 상선의 자금난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상선도 이러한 위기를 의식, 최근 약 2척의 선박을 7,000만달러에 외국회사에 팔기로 하는 등 자구노력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밖에 현대아산의 경우 대북사업에 따른 적자누적으로 자본금을 전부 까먹은 상태이며 현대석유화학도 어려움 속에 해외매각이나 빅딜(사업교환)을 추진하고 있지만 전망은 불투명한 실정이다. 대주주인 현대중공업도 최근 현대석유화학에 대한 지분을 포기하고 손실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나마 현대택배와 현대엘리베이터만이 매년 수백억원씩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견기업으로 정몽헌 회장의 걱정을 달래줄 뿐이다.

결국 정주영 전 명예회장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그룹경영을 장악하는 듯했던 정몽헌 회장은 이제 껍데기뿐인 현대를 가질 수 밖에 없게 됐다. 현대그룹의 5대 주력사업이었던 건설, 중공업, 자동차, 금융, 전자 중 어느 한 곳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 해 형제간 경영권 다툼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진 정몽구 현대차 회장, 정몽준 의원 등의 도움 없이는 그나마 남은 계열사들의 경영도 극히 불투명한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다.

연매출 100조원에 20만명의 종업원, 1만6,000개의 협력업체를 자랑하던 대그룹 현대를 한 손에 움켜쥐려 했던 정몽헌 회장, 그러나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거의 없다.

오히려 그동안 경영권 후계구도에서 멀어졌던 정몽근 현대백화점 회장, 정몽일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보다도 입지가 좁아들게 되버렸다.

고 정 명예회장의 빈소에서 굳게 입을 다물고 영정 앞을 떠나지 않았던 정몽헌 회장의 침울한 얼굴만큼이나 남은 현대그룹 회사들의 앞날에도 먹구름만 가득하다.

홍길용 내외경제 산업부 기자

입력시간 2001/04/0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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