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파리에서 마지막 키스

■ 파리에서 마지막 키스

프랑스에는 자기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는, 작고 아기자기한 영화를 만드는 여성감독이 드물지 않다. 배우 출신으로 시나리오까지 직접 쓰는 다이앤 퀴리도 그중 한명이다.

국내에는 촬영중인 영화와 현실의 자신을 동일시하며 아내와 갈등을 겪는 유명 스타와 사랑에 빠진 신인 여배우의 내적 성장을 그린 <어 맨 인 러브>,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해 서로에게 비이성적으로 집착하는 자매를 그린 <씩스 데이 씩스 나잇>, 단 두편만 수입되었다.

퀴리의 성공적 데뷔작 <페퍼민트 소다>, 자전적 요소가 반영된 <칵테일 몰로토프>와 <사랑후에>, 가족관계에서 발생하는 정서를 여성적 입장에서 그린 <세라비>, 동성애적 우정으로 확대되는 <벼락 일격> 등은 프랑스 문화원을 통해서 볼 수 있었다.

최근 비디오로 직행한 <파리에서의 마지막 키스:Les Enfants du Siecle>(18세 관람가 등급, SKC 출시)는 조르주 상드와 알프레드 뮈세의 격정적이며 비극적 사랑을 그린 시대극.

조르주 상드(1804-1876)는 '콘수엘로'를 대표작으로 하여 '앵디아나', '렐리아', '마의 늪', '사랑의 요정' 등의 소설을 쓴, 프랑스의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여성작가.

그러나 루소풍의 연애소설, 인도주의적 사회소설, 전원소설, 회상록과 파리 상류사회 연애를 다룬 소설의 4기를 지나온 문학적 성과보다는 남장을 하고 여성의 권리를 부르짖었던 선각적 여성 해방운동가, 당대를 주름잡던 예술가들과의 연애로 더 유명하다. 그녀의 연애 목록 전면에는 뮈세와 쇼팽이, 후면에는 리스트와 들라크로와가 등재되어 있다.

알프레드 뮈쎄(1810-1857)는 '프랑스의 바이런'으로 불리는 낭만파 시인, 극작가, 소설가. 어릴 때부터 시를 써 18살 때 이미 우아하고 재기 넘치는 작품을 쓰는 조숙한 천재로 이름을 날린다.

그러나 1833년 두 아이를 둔 연상의 이혼녀였던 상드와 사랑에 빠져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났다가 자제력을 상실한 바람기와 아편중독, 상드의 사랑에 대한 의심 등으로 둘의 관계가 파탄에 이른 후, 급격히 창작력을 잃고 고독 속에 생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파리에서 마지막 키스>는 조르주 상드(줄리엣 비노쉬)와 알프레드 뮈쎄(브느와 마지멜)의 만남에서부터 뮈쎄 집안의 반대를 무릅쓴 이탈리아로의 여행, 심신이 쇠약해진 상드와 뇌염에 걸린 뮈쎄를 돌봐준 이탈리아 의사 빠젤로(스테파노 디오니시)의 등장, 상드와 빠젤로와의 관계를 의심한 뮈쎄의 자학으로 인한 파탄을 그리고 있다.

상드와 뮈쎄는 자신의 관계를 작품으로 남겼는데 그 접근법에 있어 차이를 보인다. 뮈쎄는 이별 직후 상드와 주고받은 편지에서 둘의 관계를 소설로 쓸 것이라고 알린 후 1836년 '세기아(世紀兒)의 고백'을 내놓는다.

이 소설은 19세기 초 유럽 청년들을 사로잡았던 세기병, 즉 막연한 우울증과 염세적 고독감을 잘 드러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 어찌 우리 관계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며 사랑의 파탄을 안타까워했던 상드는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뮈쎄에게 보냈던 편지를 되돌려받고서야 둘의 관계를 글로 써볼 생각을 한다. 역시 상드의 사랑이 더 깊고 진실했던 것 아닐까.

상드의 전원 소설기와 뮈쎄의 죽음까지를 다룬 영화는 "일생에 단 한번 영혼을 바쳐 사랑하는 것을 우린 모르고 헤어졌다"는 상드의 회한에 찬 나레이션으로 끝난다.

이 통절한 고백이 그대로 와닿지는 않지만 자기애가 지나쳤던 두 예술가가 파탄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상드와 쇼팽의 사랑이 궁금하다면 안드레이 줄라웁스키의 '쇼팽의 푸른 노트'를 찾아보면 된다.

옥선희 비디오칼럼니스트

입력시간 2001/04/05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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