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심기일전 오청원, 다시 바둑돌 들다

- 오청원의 치수고치기 10번기(15)

오청원은 종교에 빠져 들었다. 이른바 세광교였다. 한마디로 특이한 종교인데, 일본의 종전 직후 불안한 세상을 틈타 구원의 손길을 뻗친 종교는 참으로 많았다.

중국인이라 종전 말미엔 심적 갈등도 심했다. 오청원은 태평양전쟁 말기엔 후지사화 7단과 10번기를 마치고 기계를 은퇴한다. 약 2년이 지나도록 이체 바둑으 두지 않았는데 은퇴하고 할 것은 없고 굳이 말하자면 대국을 하지 않았다고 하겠다.

1946년 8월, 세광존에 요미우리 신문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하시모토 8단과 치수고치기로 화려하게 복귀하도록 종요하기 위함이다. 오청원은 당시 세광존과 행동을 같이 하고난 다음부터 바둑돌을 다시 잡게 될 까닭은 없다는 생각을 했고 신앙생활에 열중이었으므로 상당히 낯설었다.

2년동안 일본 기원 건물은 공습으로 다 타버렸고 세상사람도 기계의 향방에 관심을 둘 리 만무했다. 그러다가 전쟁이 끝다고 2년째로 접어들자 차차 관심이 부활하게 되고 '오청원은 왜 바둑을 두지 않았는가'가 세인의 의문이 되었다.

그러던 중 1946년 8월 심기일전한 오청원은 다시 바둑돌을 만지고 싶은 맘이 생기자 신문사가 기사를 선택하면 두겠다는 뜻을 요미우리 신문사에 전달한다. 오청원의 생각은 '전쟁이 끝났으므로 장래 중국으로 돌아가서 중국기사를 통합하고 바둑을 통하여 중국 일본 두 민족의 평화에 이바지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오청원 재기하다.' 기계와 신문사는 만천하의 팬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요미우리는 일본 기원과 상의하여 하시모토 우타로 8단을 내세우기로 한다.

하시모토 우타로는 제2기 본인방이 되었고 그해 봄 승단시헙에서 전승을 거두고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세광존의 명령으로 오청원은 바둑돌을 잡게 된다. 제한시간은 비상시니까 6시간으로 하자고 오청원이 제안했고 하시모토 8단도 흔쾌히 허락했다.

그러나 요미우리 신문사가 "6시간이면 너무 싱겁다"고 하여 각자 7시간으로 낙착되었고 하루에 종결하자는 입장을 전달했다.

당시의 대국료는 각자 1만엔이었으며 오청원의 대국료는 세광존의 자금이 되었다.

제1국. 시합 전날부터 세광존은 자기 일처럼 힘을 쓰고 오청원이 이기게 해달라고 신자 전원이기도를 계속했으나 2년간이 공백은 너무 길었던지 흑차례임에도 불구하고 질질 끌려다니다가 패하고 말았다.

2국은 1국이 끝난 후 3일째 두어졌다. 세광존은 제1국 때보다 더 극성스럽게 오청원을 위해 기도했다. 대국 전날 세광존은 바둑에 이길 법력을 오청원의 몸에 넣어준다고 하면서 오청원과 같은 방에서 자제 하였다.

신의 이웃에 누원 오청원은 실례되는 일이 일어나면 큰일이라고 돌아눕지도 못하고 한잠도 잘 수 없었다.

1국 이상으로 산뜻하지 못하여 둘 곳에 돌이 가지 않아 종반이 되자 절반쯤 죽어가는 백돌이 여기저기 산재한 상태여서 누가 봐도 오청원의 패국이 확실하였다. 그래도 "나는 져서는 안된다"는 일심으로 계속 두어갔다.

중반을 지날 무렵부터 절대 우세한 하시모토 8단의 착수가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여기저기기서 다 죽어가던 돌들이 살아나고 구면은 차츰 미세해지다 드디어 승패불명이 되었다.

그 바둑을 해설한 세고에 선생은 "하시모토는 아주 이상하다. 이런 바둑을 지다니 파문감"이라고 하탄했다고 한다. <계속>

[뉴스화제]



●신인왕전 4강 확정 제11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 4강이 결정되었다. 본선 연승전에 이어 6강 플레이오프까지 치러진 결선 토너먼트에서, 이희성 3단이 류재형 4단을, 박승철 2단이 최명훈 7단을 물리치고 4강에 합류했다. 이로써 4강전은 이희성-조한승 4단, 박승철-원성진 3단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조훈현 2연승, 공동선두

조훈현 9단이 '앙팡 테러블' 최철한 3단을 꺾고 2연승을 기록, 공동선두에 올랐다. 지난 3월27일 한국기원에서 벌어진 왕위전 리그 제8국에서 조훈현 9단은 152수만에 백불계승을 거두어 안영길 4단과 공동선두에 뛰어올랐다.

이번 35기 왕위전은 새내기 박정상 초단, 이희성 3단, 이세돌 3단 등 10대가 리그멤버의 절반을 차지하며 돌풍을 몰고 왔다.

/ 진재호 바둑평론가

입력시간 2001/04/06 19:19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