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이야기(17)] 진돗개의 품성, 영감(ESP) (下)

헬뮤트 트리뷰츠(Helmut Tributsch) 교수는 지진이 발생하기 직전에 동물들이 특별나게 행동한다는 것이 학계에 보고되기 전에 지진에 관한 다른 일화들을 수집했다.

그가 수집한 일화를 소개하면, 1880년 도쿄에서 거대한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거대한 편자 자석이 일시적으로 그 힘을 잃었다. 1976년 이탈리아의 프리울리(Friuli) 지진 전에는 시계 수선인이 수선하고 있던 시계의 부속품이 상호반발작용, 즉 정전기 변화를 나타낸 것을 보았다.

현재 개가 제 6감을 지니고 있는가에 대한 결정적 증거가 나타났거나 학문적 결론이 났다고는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길 잃은 개가 따라갈 냄새도 없이 대륙을 지나 강을 건너고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집을 발견한다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몇몇 새들처럼 개도 태양광선의 각도를 이용할 수 있고 바다 포유동물처럼 알려지지 않은 길을 발견하는데 전자식 항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물론 이런 능력은 인간에게도 해당된다. 에스키모인은 눈에 보이는 어떠한 표적도 발견할 수 없고 모든 감각이 무감각해질 정도인 눈보라 속에서 집을 찾아낼 수 있는 특이한 능력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능력을 우리가 모른다고 무시해야할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 문제에 대한 답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감각능력과 관련된, 그리고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그 어떤 감각을 동물은 최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으로 대신할 수밖에 없다.

임박한 재난을 동물이 인식한다는 오랜 구전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백제가 망하기 전에 개들이 사비성을 보고 울었다던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 진도의 진돗개들이 일제히 일본쪽을 바라보고 짖어댔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진돗개에게서 아직까지는 초과학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런 현상을 너무도 많이 겪는다. 엄청나게 먼 곳으로 팔려간 진돗개가 집을 찾아 돌아왔다는 이야기는 너무도 많이 알려져 있다. 또 실제로 사냥을 나가본 사람은 노루사냥을 할 때 일어나는 신기한 일을 많이 겪는다.

여러 마리의 개가 노루를 쫓고 있는데 그중 한 마리가 노루가 도망간 쪽하고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갔는데 나중에 그 개가 노루의 앞을 가로막고 나타나더라는 이야기는 이제 차라리 고전이 되어버렸다.

십수년 전의 일로 기억된다. 우리 집에서 키우던 성견 암컷 한 마리를 판 적이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중량구 묵동이었고 개가 팔려 간 곳은 강동구 명일동이었다. 그런데 이 개가 한달여만에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놀라운 것은 그 개가 팔려갈 때 승용차 트렁크 속에 실려갔다는 사실이다.

그때 사간 사람이 하도 사정을 해서 팔긴 팔았으나 명견을 몰라보았구나 하고 깊이 후회를 한 기억이 난다.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정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주 잘 생긴 진돗개 백구 암캐를 잠시 가지고 있었던 적이 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이 개를 데리고 사냥겸 등산겸 해서 근처 불암산에 올라갔다가 그만 개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잃어버린 개를 찾아 산속을 한참 헤매던 필자는 낙담하여 집으로 돌아왔는데 삼일만에 이 개도 돌아왔다.

적어도 진돗개라면 개장사에게 잡히거나, 발정난 암캐를 좇아가다 남의 집에 갇히는 등 불가피한 사고를 당하지 않는 한 반드시 집을 찾아올 수 있다고 필자는 믿고 있다. 이런 일들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들이 어떤 표시를 따라 돌아오거나 방향감각에 의해서 돌아왔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진돗개의 이런 능력은 '영감'으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그러면 진돗개의 영감이 특별히 뛰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그 이유는 간명하다.

진돗개는 바로 자연의 선택에 의해 생성된 개이기 때문이다. 뛰어난 영감을 가지기 위해서는 강아지 시절부터 수많은 경험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젖먹이 강아지의 경우 아무 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이 시기의 경험은 영감과 지능의 발달에 무척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간의 선택 번식에 의해 그 견종이 확립되고 오랜 세월을 견사에서 번식되어 한정된 사육환경 속에서 자라나는 것이 서양 견종의 역사라면 진돗개는 인간이 어설프게 개입하기 전인 불과 몇십년 전까지만해도 거의 자연 속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강아지 때부터 어미를 따라 혹은 홀로, 농촌의 논과 밭, 들판으로 가까운 산자락으로 다니면서 수많은 풀과 나무들, 다양한 종의 곤충과 벌레 등을 만나며 장난도 하고 놀라기도 하며 끊임없는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며 영감과 지능을 키울 수가 있었다.

이런 사육환경 속에서 생겨난, 뛰어난 영감은 특유의 영리함과 함께 오랜 진돗개의 역사 속에서 고유의 특이유전자로 자리잡은 것이다.

윤희본 한국견협회 회장

입력시간 2001/04/1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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