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장쩌민의 중국

하이난다오(海南島) 상공에서 미국 EP-3 정찰기와 중국 F-8 전투기가 충돌한 사건은 발생 8일에 접어들었다.

중국 부총리 콴귀첸(전 외무부장관)은 포웰 미 국무장관이 보낸 '유감'(regret)을 담은 편지초안에 대해 4월7일 "충분하지 않다. 미국은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캠프 데이비드에 간 부시 미 대통령의 대변인은 "아직도 협상은 잘 진행되고 있다. 억류된 승무원은 곧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미국도, 중국도 두 나라 관계가 '사과'(apology)냐 '유감'이냐의 말싸움보다는 우호적 관계가 중요하고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미국에는 적어도 2,500명에서 3,000명 가량의 중국 전문가가 있다. 이들이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각종 미디어를 통해 쏟아낸 '중국의 오늘'에 대한 인식은 갖가지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기까지 러시아에 대해 너무 미국과 서방이 봉쇄적이지 않았느냐"는 진보적 자성론 같은 인식은 별로 없었다. 미국이 중국의 영공을 사찰하고 전투기와 충돌해 불법으로 하이난도에 착륙한 것은 중국의 오랜 '제국주의 피해의식'를 불러일으켰다는 동정적인 자유주의적 시각은 드물었다.

오히려 CNN이 960명의 네티즌을 대상으로 여론조사한 바로는 미국인의 85%가 중국을 적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지난해 9월 조사에서는 27%만이 적으로 봤다.

또한 워싱턴포스트의 여론조사에서는 부시의 이번 사건 대처방법에 64%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54%가 사과하지 말라고 했고 40%가 사과해야 한다고 답했다. 74%가 경제봉쇄, 무력사용으로 승무원을 데려와야 한다는 강경 반응을 보였다.

이런 미국민의 중국인식에 대한 워싱턴포스트의 논설주간 프레드 히야트와 국제문제 담당 컬럼니스트 짐 호그란드의 해석은 날카롭다. 지난 3월24일 베이징의에서 장쩌민 주석을 인터뷰한 히야트는 그에 대해 결론내리고 있다.

"그는 공산주의에 대해 중국에서 마지막까지 신념을 버리지 않을 사람이다. 비록 공산주의가 목표대로 빠르게 성장하지 못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 이념을 믿고 있다'고 영어로 말할 정도였다."

장 주석은 "나는 클린턴이 말한 '전략적 동맹자'라는 뜻을 봉쇄와 투쟁을 배제시킨 그런 낭만적인 것이나 천진스런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또한 부시 대통령이 말하는 '경쟁적 동반자'의 '경쟁적'이란 말이 서로 협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님도 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히야트는 다섯살난 아들과 남편을 연금시킨 채 구속된, 미국 국적을 가진 뉴욕시립대 고잔 교수에 대한 질문에 답변하는 장 주석의 모습에서 그도 스탈린식 공산독재주의의 한 지도자임을 느꼈다고 밝혔다.

"나는 항상 미국과 같은 큰 나라가 왜 그런 조그마한 문제(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는지 의문이다. 대만문제만 해도 미국이 관여하지 않으면 언제고 해방할 수 있다. 대만이 통일되는 게 왜 미국에 해가 되는가.

아시아의 안정을 부추기게 할 것이다." 히야트 주간이 느끼기에는 장 주석은 자유 및 시장경제, 민주주의 제도 아래에서는 살 수 없는 공룡같이 느껴졌다.

히야트 주간은 인터뷰후 중칭 등지을 둘러보고 정치적 개혁이 가장 큰 숙제로 남아있음을 실감 할 수 있었다. 경제개발을 앞에 두고 정치개혁을 마지막에 둔 '중국의 오늘'은 그의 눈에는 농촌의 피폐, 만연된 산업인구의 불안, 부패관료에 대한 분발 등 3대 난제와 함께 민주화의 길을 여전히 공산주의 일당독재가 막아서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선지 컬럼니스트 호그란드는 이번 사건을 장쩌민 주석의 '개인적 야망'을 위한 '사과'강요 정치행위로 봤다. 앞으로 2년 후에 은퇴할 것이 확실한 장 주석은 '지는 해'로써 '대만 통합'이란 역사의 유산을 남기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로의 잘못이 가려지지 않은 '사고'(accident)인 이번 사건을 중국의 전통적 외교 숫법인 '사과요구'로 자존심을 찾고 대만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막아보려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장 주석은 러시아에서 잠수함과 구축함을 구입하면서 미국이 대만에 이지스 구축함 판매를 막으려 하는 것으로 봤다.

중국은 미국에 400억 달러를 수출하고 있고, 5만4,000명의 학생이 유학중이며 또 미국은 중국의 WTO 가입 보증인이기도 하다. 장 주석은 칠레에서 "차를 몰다 접촉사고를 내도 서로 'Excuse me'하지 않는가. 미국은 이번 사건에 'Excuse me'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익스큐즈 미'가 "용서하세요", '너그러이 봐주세요"를 넘어 "사과합니다"가 되면 미국은 정말 중국과의 우호관계를 재고할지 모른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4/10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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