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의 세계] 인라인스케이트

식목일인 4월5일. 캡틴 인라인스케이트 동호회 회원들은 들뜬 마음으로 국립극장쪽 남산 순환도로 입구에 모였다.

이날은 한달에 한번씩 열리는 로드 모임이 올해 들어 처음있는 날. 지난 겨울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려 어쩔 수 없이 장기간 쉬었던 도로를 오랜만에 타는 날이다. 마침 바람은 좀 세지만 날도 맑고 기온도 포근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기에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입구에서 조금 올라간 평지에서 시작되었다. 야광의 밝은 노란색 점퍼를 맞춰 입은 이들은 머리에는 저마다 밝은 색깔의 헬멧을 쓰고 손목과 팔꿈치, 무릎에는 두툼한 보호대를 착용했다.

40대 남자를 비롯, 초등학생 자녀와 함께 온 주부, 20대 초반의 남녀 등 모임에 참가한 사람은 가지각색이었다. 하지만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는 모습은 하나같이 경쾌하고 즐거워보였다.

리더의 인도에 따라 힘차게 바퀴를 밀고나가는 것을 시작으로 뒤로 혹은 지그재그로 바닥을 지치는 사람, 조금 자신이 있는 듯 공중으로 점프하는 사람, 팔각정으로 이어지는 나지막한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도 있었다.

신나게 달리다 정지할 때는 뒷발을 앞발과 90도로 해 속도를 줄이거나 TV에서 보듯 갑자기 두 발의 방향을 획 틀었다.


"체력 좋아지고 자신감도 생겨요"

넘어질 듯 넘어질 듯 하면서도 용케 균형을 잃지 않는 모습. 얼마나 타면 저렇게 될까. 경력 3년인 주부 박명예(43)씨는 "4개월 정도면 어느 정도 기술은 다 배워요.

그 다음부터는 자기 몸에 익히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3년간 인라인스케이트 덕분에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해졌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일단 지구력이 늘었어요.

그리고 매사에 자신감이 생겼구요." 또 직장 때문에 평소에는 함께 놀아주기 힘든 초등학생 두 자녀도 주말마다 엄마와 같이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우고나서 순발력이 는 것은 물론, 식욕이 좋아지고 감기 같은 잔병치레가 없어졌다고 한다.

박씨처럼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기는 사람은 이제 봄 가을이면 웬만한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국내에 인라인스케이트가 소개된 것은 1986년.

인라인스케이트의 한 브랜드인 '롤러블레이드'라는 이름으로였다. 본격적인 보급은 1994년을 전후해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타는 신종 롤러스케이트로만 여겨졌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남녀노소에 관계없이 인구가 늘어 현재는 동호회 가입자만 100만명 이상을 헤아린다. 개인적으로 즐기는 사람까지 합하면 이보다 훨씬 많다.

인라인스케이트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은 피트니스(fitness). 일산 호수공원이나 여의도 한강시민공원, 남산 순환도로처럼 포장이 되어있는 도로에서 탄다.

반면 오프로드(off-road)는 비포장도로에서 즐긴다. 오프로드용 인라인 스케이트는 웬만한 자갈은 타고넘을 수 있도록 바퀴가 크고 충격흡수를 위한 장치가 부착되어 있다. 피트니스와 오프로드가 주변을 감상하며 적당히 달리는 것이라면 레이싱(racing)은 속도경주다. 다른 종류에 비해 바퀴가 한개 많은 다섯 개다.

어그레시브(aggressive)는 단순히 도로를 달리는 데서 벗어나 곡면으로 된 벽을 타고 내려오거나 공중에서 점프 또는 회전을 하는 등 각종 묘기를 부리는 것.

올림픽 공원 등에 전용구장이 있다. 이밖에 인라인스케이트에 아이스 하키를 결합한 하키(hockey)도 있다. 인라인스케이트 인구의 대부분은 피트니스이고 하키와 어그레시브를 즐기는 사람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다.


유산소운동으로 다이어트에 큰 효과

인라인스케이트가 단시간에 확산될 수 있었던 것은 건강에 좋고,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으며, 비교적 간단하게 배울 수 있는 종목이기 때문. 두 바퀴에 온몸을 실어야 하는 인라인스케이트는 서 있기만 해도 하체 발달에 도움이 된다.

또 쉬지 않고 운동을 하기 때문에 근지구력은 물론 빠른 속도로 달리므로 심폐지구력 증진에도 좋다. 유산소 운동이라 다이어트에도 효과가 있다. 캡틴 회원 중에는 20kg 가까이 몸무게가 준 사람도 있다.

조깅이나 마라톤과 운동효과는 비슷하지만 무릎 등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인라인 스케이트가 낫다. 또 스케이트라는 장비를 이용하므로 발로 뛰는 것에 비해 타는 재미가 있다.

잠시후 보다 고난도의 내리막 달리기, 일명 다운힐이 시작되었다. 눈으로 보기에는 채 5도가 안되는 경사인데도 인라인스케이트를 신은 동호회 회원들은 쌩 하는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간다.

"인라인스케이트는 보기와는 달리 경사가 조금만 있어도 제법 속도가 납니다. 10도 정도만 되어도 시속 60~70km까지는 나오죠." 회원들에게 인라인스케이트 지도를 해주는 박영철(29)씨의 설명이었다. 시속 60~70km 정도면 꽤 큰 용기가 필요할 듯 싶었다.

아직 활강에 자신이 없는 사람은 내리막 길을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며 속도를 죽인 채 내려왔다. 끝까지 내려오고나서는 다시 45도로 날을 밀며 별로 힘들이지 않고 언덕을 올라갔다.

꾸준히 운동을 하면 나이보다 젊어보이는 걸까. 재수생 아들과 함께 온 주부도, 48세인 초등학교 교사 강태웅씨도 모두 제 나이로 보이지 않았다.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다보면 나이를 잊습니다. 공기 좋은 곳에서 쌩쌩 달리면 스트레스도 없어지고 같이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면서 젊은 사람하고 어울리고 하니까요." 강씨의 말이다.

3년 전 인라인스케이트를 시작한 그는 이제 매주 토요일마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 학생들을 데리고 일산 호수공원에서 인라인스케이트를 가르친다. 학생들도 그렇고 자신도 날이라도 궂어 한주일 스케이트를 거르면 아쉽기 짝이 없다고.


약간의 긴장감은 생활의 활력

다운힐 과정을 지켜보다 한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혹시 위험하지는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마침 캡틴 회원중 초보급인 한명이 도로를 질주하다 넘어지는 바람에 바지 허벅지 부분이 찢어지는 작은 사고가 일어났다. "옷만 조금 찢어진 거예요. 다치지는 않았습니다"라고 씩 웃는 걸 보니 괜찮은 모양이었다.

캡틴 회원들에 따르면 처음부터 제대로 배워서 타기만 하면 절대 안전하다고 했다. 물론 헬멧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는 것은 스케이트 실력에 관계없이 필수적이라고도 입을 모았다.

대신 이들은 "재미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위험 가능성은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아마도 다른 모든 레포츠 마니아들이 그렇듯, 이들 인라인스케이터에게도 약간의 자발적인 위험은 그저그런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즐거운 긴장을 뜻하는 모양이었다.

김지영 주간한국부 기자

입력시간 2001/04/11 16:44


김지영 주간한국부 koshaq@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