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역사교수와 역사가이드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의 파고가 높다. 전격 소환된 최상용 주일대사는 일본정부측에 교과서의 재수정을 끝까지 요구하겠다면서 아키히토 일왕이 관람키로 한 '황진이'공연(4월16일)이후에 귀임할 뜻을 비쳤다.

그러나 교과서 문제를 촉발시킨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주동자 겸 집필자인 사카모토 다까오 학습원대학 교수는 "전지 위안부 제도라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성(性)처리에 관한 사항을 중학교 역사 교과서 등에 기술하는 것은 문제"라는 망언을 계속했다.

그는 군대 위안부 강제동원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화장실 역사'에 빗대 "일본 화장실 구조의 변화와 전시 범죄사 같은 것을 정통 일본사로 다루어서는 안된다"고 극언했다.

사카모토 교수의 이런 발언에 접하면 일본을 40여년간 연구한 뒤에 '히로히토와 근대 일본 만들기'(2000년 9월)를 쓴 히토쓰바시 대학의 허버트 빅스(하버드대 일본학 박사.

전 하버드대 교수)교수를 떠올리게 된다. 히로히토 일왕의 탄생(1901년)에서 죽음(1981)에 이르기까지를 사실(史實)에 근거해 쓴 딱딱한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일생을 바친 일본 황도(皇道) 연구의 결실이다. 그 열매는 사카모토류의 우익 민족주의 사관으로 깨뜨릴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느껴진다.

빅스 박사는 출판후 뉴욕타임스와 가진 회견에서 보스턴 사투리로 "아직도 일본어 번역 출판사를 찾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히로히토와 그를 둘러싼 일단의 귀족들이 한국, 중국의 침략과 식민화에서 벌인 전횡과 미국과의 전쟁 발발은 일본 국민의 머리속에 들어 있는 일왕의 이미지와 도저히 맞지 않기에, 또한 새로운 사실이기에 번역자를 찾거나 자발적으로 판매에 나설 출판사를 구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빅스 박사는 1933년 히로히토가 중일전쟁에 앞장서는 연설과 기동연습에 참관한 낡은 필름에 대한 논평을 담은 자신의 저서 출판을 우익세력들이 막은 것을 보면 이번 책도 번역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비관적으로 내다봤다.

사실 일본인들이 '황제'라고 부르는 일왕에 관한 비판적인 책은 우익단체 확성기 방송의 비난대상이요, 정정요구 대상이 되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자주 보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을 썼느냐"는 질문에 대해 빅스 박사는 간단하게 대답했다. "나는 일본인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 위해 이 책을 쓴 게 아닙니다. 나는 일본 사람들이 이 책에 탐닉하기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일본 뒤에는 이런 히로히토가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라는 것입니다. 나는 도끼를 휘두르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역사적 사실을 캐내자는 것이고, 앞으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선지 일본엔 사카모토 같은 역사학자만 있는 게 아니다. 교과서 문제가 터졌던 3월19일 워싱턴포스트는 도쿄지국장이었던 시게히코의 서울발 기사를 실었다. "일본인 여행 가이드가 고국에 관한 어두운 진실을 한국에서 느끼고 있다"는 게 기사의 내용이다.

기사의 주인공은 야마다 이쿠요라는 한 일본 상사 서울 주재원의 부인이다.

옛 서대문 형무소에 있는 감옥 기념관에 찾아오는 일본인 관광객에게 일제 경찰의 고문과 잔학상, 유관순 열사 등에 대해 설명하는데, 연간 8,000여명(연간 총 관람자 40만명)의 일본인 관람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것이다.

야마다씨는 "일본의 한 대학 직원으로 일할 때 아시아에서 온 유학생들이 일본에 대해 부정적인 것을 느꼈다. 나는 두 나라가 역사를 공유해야만 서로 이웃을 믿게 된다고 생각해 가이드를 자청했다"고 말했다.

"이곳에 온 일본 대학생들로부터 그들이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역사를 느꼈다고 실토할 때 제일 기쁩니다. 역사라는 게 과거에 속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오늘의 문제입니다.

'이런 잔혹한 행위를 한 것은 일본만이 아니지않느냐. 왜 일본만 비난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을 때 당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는 '물론 일본만이 만행을 저지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 행위가 정당하지는 않다. 여기서 보는 것은 진실이다. 똑바로 그 역사를 보아라'라고 답변합니다."

기사를 쓴 도쿄 특파원은 일본이 태평양 전쟁에서 패할 때 외무대신을 지냈던 도고 시게노리의 외손자다.

도고는 임진왜란때 남원에서 끌려간 한국 도공의 후예. 한국명은 박수덕이다. 이 특파원은 시게노리의 회고록 '격동의 세계사를 말한다'의 말미에 "할아버지의 소원은 전세계의 항구적인 평화건설이다"라고 썼다. '평화건설'에는 역시 올바른 역사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박용배 언론인

입력시간 2001/04/1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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