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종석된 '여성 性'에 대한 반론

■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

캐럴 페이트만/이충훈ㆍ유영근 옮김

인류가 원시사회에서 근대 시민사회로 진보하게 된 기저에는 구성원간의 원초적 계약(Original Contract)이라는 내부 규율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개인간의 계약에서 정치ㆍ국제기구에 이르기까지 한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 인류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의 전쟁터가 되지 않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사회적 계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런 계약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인 사회계약론에 최근 새롭게 부상하는 이슈가 있다. 바로 '성(性)적 계약'이다. 기존의 사회계약론은 정치ㆍ사회적인 공적 부분에 대해서만 논의 했다. 그것은 고용주와 피고용자와의 관계 같은 '남성 대 남성'간의 가부장적인 계약 관계에만 주목했다.

인류의 탄생과 함께 자연 발생한 남성과 여성간의 원초적 계약 문제는 그간 논외시 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여성 정치 이론가이자 급진적 페미니즘 학자인 캐럴 페이트만의 저서 '남과 여, 은폐된 성적 계약'(도서출판 이후 펴냄)은 남성 보다 오히려 여성들에게 더 신선한 충격을 던진다.

페이트만은 이 책에서 성적 계약이라는 독특한 개념을 통해 페미니즘의 이론적ㆍ 실천적 한계를 들춰냄으로써 페미니즘을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재구성 한다.

그는 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개인의 자율'이 실상은 여성이 누락된 '남성의 자율'에 지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는 '사회 계약은 자유에 관한 이야기지만, 성(性)적 계약은 예속의 이야기'라고 단정한다. 남성들은 그간 성적 계약을 통해 여성들을 지배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치 이론가들이 성적 계약에 침묵하고 있는 이유는 아직도 그들이 가부장제를 '아버지의 지배'로 인식하고, 공적 가부장제의 영역을 정치적인 것에만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정치 이론가들이 근대 시민사회에서 '아버지 지배'는 이미 형제적 가부장제로 변환됐고, 성적 계약도 결혼계약, 고용계약, 매춘계약, 대리모(인공수정)계약 등의 형태로 공적 계약의 영역에 진입한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결혼 계약은 남성은 가정을 대표하는 공적 영역으로 만드는 반면 여성은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 얽매이도록 한다. 이는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와 소유가 이뤄지도록 하는 또 다른 형태의 노예제라고 주장한다.

또 매춘 계약도 계약론자들은 '화폐'와 '성적 서비스'의 동등한 교환 계약이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남성이 여성의 신체와 분리될 수 없는 자아까지 소유하는 일종의 가부장적 권리 승인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성적 계약에 따른 남성과 여성의 정치적 지배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면 여성은 결코 남성과 동등한 계약 당사자가 될 수 없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 의한 예속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결론 맺는다.

송영웅 주간한국부기자

입력시간 2001/04/17 18:01


송영웅 주간한국부